안녕 우리의 소년, 소녀.
https://www.youtube.com/watch?v=ZFBcnlPJHgU&t=2518s
스타벅스.
맞은편 4인석 소파 자리에 고등학생 아이들이 자리를 잡는다. 여학생 둘, 남학생 둘이다.
내가 앉은자리 바로 앞에 등을 돌리고 앉은 여학생이 증명사진이 붙은 수험표 비슷한 것을 손에 들고 흔들며 활기 있게 떠든다.
활기, 생, 삶.
며칠 전에 막 수능을 보고는 이제 응시할 대학을 준비하는 시기에 있는 학생들인 것 같다. 여덟 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카페를 찾은 것으로 보아, 수업을 다 마치고 아마 자율학습을 반 정도(?) 하고 왔거나 학원을 다녀왔나 보다.
이들은 나와 너무 다르다. 정말 꿈이 많아 보인다. 쾌활하게 떠들어대며 자리에 가방을 내려두더니, 음료를 주문하러 간다. 음료를 하나씩 들고 돌아와서는 마주 앉아 보드게임을 한다.
살아있다는 것.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나의 과거를 더듬으며 어떤 생각에 잠긴다.
마음의 부유함. 감성의 꽉 참. 살아있음.
지금 저 아이들에게 있는 내면의 꿈과 같았던 과거의 나의 꿈과, 지금의 나의 꿈은 어떻게 다른지. 만일
달라져야만 했던 것이라면 어떻게 달라져 있어야 하는 것인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올드 빌리지에서 즐겨 가던 한 야채 가게가 문을 닫았다. 오며 가며 무심코 보다가 한동안 비어있던 그 집 유리창을 무심코 흘려 보았는데, 임대 문의를 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꽤 널찍한 공간에 옆으로 여는 유리문. 내가 바라던 빈 공간의 모습에 가까웠다. 임대료가 얼마나 비쌀 것인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실은 아무에게도 이토록 구체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지만 생각해 둔 컨셉이 있었다. 약간 그로테스크(grotesque)하고 시크(chic)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일전에 관심을 갖고 찾아가 보았던 합정동의 한 작은 에스프레소 바가 가진 느낌이기도 했다.
본질, 쉼, (쉼과 모순되지만, 나에게는 그것과 정확히 포개어지는 것이기도 한) 설렘, 꿈, 깊이, 첼로, 재즈, 집, 향기, 문학, 언어, 햇볕, 수다와 토론. 나는 이런 것을 사랑했다. 그것들을 한 공간에 다 구현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세 개 정도는 느낄 수 있는 곳(매우 구체적이지 않은가). 나는 그런 공간을 언젠가부터 그리게 되고 있었다. 합정동의 에스프레소 바는 그중 최소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어 보였다. 본질(에스프레소의 맛과 품질)과 설렘(그곳을 향해 찾아가는 골목길의 인상과, 좁은 가게의 외벽에서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밤 7-8시 정도에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카페는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옆으로 여는 문. 주택가에 꼭꼭 숨어있는 위치. 무심한 듯 드라이해 보이지만, 어딘지 스타일리시한 분위기. 밖으로 드러난 은색의 알루미늄 문이나 벽면의 미학적 인상만 보아도 주인의 센스에는 믿음이 갈 정도로, 작고 작은 외관이 달콤했다.
에스프레소는 보나 마나 엄청 맛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외연에서부터 이미 내뿜고 있었다. 들어가 보았다면 더 풍부하게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에서 멈추어도 훌륭한 경험일 수 있었다. 한 카드사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매거진 리뷰를 보고 찾아갔던 차라, 에스프레소의 진정성에 관한 것은 어느 정도 훌륭하리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찾아가는 길도 카페의 한 요소였다. 어떻게 이런 곳에 카페를 할 생각을 했지. 지도앱을 보면서 찾아가던 꼬불꼬불한 밤길조차 너무 낭만적이었다. 그런 골목길 경험도 카페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철학이자, 이미지일 수 있겠다는 인상만을 받고, 다소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더랬다.
하는 수 없이 지인과 함께 합정역 주변의 대로변으로 걸어 내려왔다. 적당히 깔끔한 카페의 선에서 타협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물망에 오른 한 베이커리 카페. 아마 다른 공간에서 빵도 직접 만들어서 내놓는 곳인 것 같았다. 핫 플레이스 시가지의 대로변에 있어, 자본주의 논법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울 듯한 큰 통유리 카페. 빵은 적당히 맛있고 비쌀 법했다. 커피 맛에는 개성이 탈색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 도시는 밤에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특성을 가진 곳이었다. 따라서 그 일대의 많은 카페들이 인파의 빠져나감을 따라 저녁 즈음 문을 닫는 것 같았다. 어느덧 늦은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대에 나의 바람을 충족시킬 카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대단한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저 프랜차이즈와 같은 통속적 카페가 아닌, 일말의 개성을 갖고 있는 곳 말이다.
단 두 사람으로 이뤄진 우리 일행은 별 수 없다는 듯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 깨끗한 통유리창 카페에 들어갔다. 나의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커피도 괜찮았고, 빵도(시나몬 허니브레드 같은 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괜찮았다. 깨끗하고-괜찮고-괜찮은 것. 나는 그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나오면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곳. 카페 업계의 구 할은 그렇게 싱겁고 지겨운 곳이란 현실에 어느덧 익숙해져, 나의 카페 환타지아는 거의 지워져 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임대인을 기다리는 그 올드 빌리지의 가게는 높은 연령대의 행인이 많은 곳에 있었다. 숨겨진 듯 깊숙한 곳에 있거나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서민적인 한 골목의 끝자락 모서리에 위치해 있는 밋밋한 자리. 아무래도 지리적 조건상 합정동의 그 에스프레소 바 정도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었다.
다만 내부의 구조가 탐스러웠다. 안으로 들어간 별도의 공간까지 있고, 야채가게일 때 여러 번 들어가서 느껴본 바, 어딘지 정감이 드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대목이 왜인지 나에게는 정말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인데. 가령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들이 그러하곤 하다. 그러니까 나의 이상에 의하면-비록 공간이 두 개의 테이블만 들어갈 정도로 좁다고 하더라도- 들어갔을 때 정감과 함께 어떤 들뜸, 살아있다는 감각이 각성되는 듯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상업적 위치로써도 괜찮았다. 코너에 있어서 하나의 큰 거리와 또 하나의 작은 거리를 함께 품고 있었다. 내 눈에는 여러 가지로 여건이 좋은 것 같았는데, 오래도록 나가지 않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옆 식당의 아주머니에게 들었다). 이 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지금 화자는 마치 그곳에서 당장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하려고 결정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실은 적어도 몇 달간 그런 여유가 생길 리는 만무하다. 여유가 생겨도 장소를 이곳으로 결정한 것도 물론 아니고 말이다. 어둡기만 한 필자의 현실에 대해 스스로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그저 알아본 것이었다. 내 형편이 나아질 무렵이면 이곳에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을 법하다. 그냥.. 이 정도의 조건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지 않을까 생각되었고, 이렇게라도 글을 써나가며 기록해 보고 싶었다.
바로 옆집 가게에서 된장찌개를 먹으며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누며 알게 된 대략적 예상 가격은 보증금 일이천만 원에 월 임대료 팔십만 원 정도였다.
카페에 대해 이렇게 투박한 연재를 시작한다. 나의 에너지는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응축되었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