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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소비와 생산

by jungsin




https://youtu.be/nHxvOwq2VtQ?si=JH90sPk8FJP8sI3u

겨울에는 재즈니까.



다시 한번 J 선생님을 생각한다. 그분의 눈빛과 생기와 내 글에 대한 칭찬을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글이 좋다고. 특이하고 재밌다고. 일어나야 한다. 써야 한다. 소비만 하지 말고. 읽기만 하지 말고.



읽는 것은 중요하다. 읽기가 물론 소비일 수만은 없다. 아니. 전혀 소비가 아니라고 해야겠다. 생산과 소비의 경제적 프레임으로 볼 때에도 읽기는 더욱 생산에 속하는 행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읽지 않고 쓰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쓰는 것을 멈추고 읽는 것이 생산의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반대의 경우에 봉착한다. 쓰기가 없는 읽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가는 기분이다. 필자는 지금 경제적 관점에서 꼭 써야만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를 정도로 경제적 임박의 때에 도달해 있다. 그런 내게 쓰기가 없는 읽기는 하나의 소비일 수밖에 없다.





나는 크게 세 가지의 ‘쓰기’가 있다고 믿는다. 손가락으로 쓰는 것과, 머리로 쓰는 것. 그리고 가슴으로 쓰는 것. 그것들은 다 다른 쓰기이다. 손가락으로 쓰는 것은 아무리 많이 써도 하나의 소비이다. 손가락으로 쓰는 사람들은, 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쓰지 않고 싸는 사람들이다.



싸면 안을 수 없다. 나는 안으로 사랑이 많아 좋은 글을 보면 꼭 안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손가락으로 쓰면 치워야 할 뿐이다. 가슴으로 써야 안고 싶어 진다. 사랑하는 사람처럼 안고 싶어 진다. 좋은 글은 포옹하고 입 맞추고 싶다. 손가락으로 쓰거나 싸면 그것들은 모나미 볼펜의 똥과 같아서 치워버려야 한다. 화마저 난다.





근래 즐겨 읽는 저자들, 젊은 여성 작가 두 명이 있다. 한 사람은 브런치에서 알게 된 J이고, 한 사람은 시인이자 수필가, 소설가이기도 한 M이다. J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마도 그녀의 독서가 그렇게 폭넓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직 너무 어리고, 또 한 가지 일에 몰입되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행을 입 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리듯 글을 쓰는 사람이다. 어딘가로 훌쩍 여행을 다녀와, 집에 돌아와서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 시간들을 나노 단위로 더듬어 보며 자기만 쓸 수 있는 독창적인 표현을, 조각하듯 새겨 넣는다. 그녀의 특이하고 독특한 표현들은, 어느덧 필자의 멍들고 얼은 가슴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느끼며 문학의 힘, 글의 힘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M 저자 역시 굉장히 독특한 글을 쓴다. 한 추천사에 의하면 ‘그녀의 글은 선율이 아니라 리듬이 주인공인 것만 같다’는 것이다.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다 보면 정말 그렇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반쯤 미친 여자가 자기 안의 리듬을 따라 춤을 추는 것 같은데, 어느덧 그녀의 춤사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기를 보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나의 춤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춤의 기억을 복원하는 동안 소년의 자유도 복원된다. 어느덧 죽었던 내가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마약처럼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그런 지류에서 M의 글도 필자에게는 은밀한 쉼이 되어가고 있다. M 작가의 글을 그렇다고 필자가 아주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사실 필자는 다독가가 아닐 뿐 아니라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양의 독서를 한다. 조금씩 조금씩, M도 J도 깔때기 모양의 달력에 담긴 소라와 번데기처럼 소량씩 삼켰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듯 읽었을 뿐이다. 닳을까 봐. 내가 다 닳아 없어질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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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면 혼잣말을 한다. 움직이지는 않고 가만히 혼잣말로써 움직이는 것이다. 소화되지 않는 불안과 압박감을 삼키고는 울렁거림을 조금씩 토하는 것이다. 시람들은 자꾸 마음이 어두워지고 혼잣말을 할 때는,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땐 밖이 아니라 안으로 나가야 한다. 기분의 상쾌함이 진보는 아니다. 그럴 때 도망치듯 자기 밖으로 나가는 일은 진보인 체하는 보류일 수도 것이다. 얼핏 진전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실은 얼마든지 우직한 자기 보전의 한 모습일 수 있을 것이다.


혼잣말을 할 땐 안으로 나가야 한다. 자꾸 혼잣말을 할 땐 안으로-가 앞으로-다. 안으로 달려가 자기를 찾고, 그리고 밖으로 나가야 정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된다. 안으로써 앞으로, 밖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나를, 청룡열차의 벨트처럼 꼭 붙들고는, 안으로 내달려야 한다. 안으로 앞으로 밖으로.


원래 축구를 사랑했지만, 공을 뻥 차고 한 명 두 명 세 명 제치며 달려 나가 센터링을 하는 일을 사랑했지만. 나는 이제 글로나마 앞으로 나가야 한다. 아니, 글로-만큼은. 글로써만은. 다른 모든 일이 보류되어 있을지라도 글로써 앞으로 나가는 일만은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쓰는 일은 외출이며 여행이다. 안으로, 앞으로, 밖으로 달려 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