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오로라

아시안컵

by jungsin




지인의 집에서 아시안컵 축구를 봤다. 여덟 시 반. 커다란 테레비 앞에 앉은 나와 지인 부부. 세 사람의 어른이 나란히 모여 앉았다.


문득 초등학교의 어느 날 아침 같았다. 우리는, 볼이 찰 만큼 춥고 시릴 정도로 맑은 어느 날 아침 실내화 주머니를 툴툴 차며 학교를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났고, 우연한 만남이 대수롭지 않은 듯 이내 함께 걷다가 나란히 교문을 지나고 운동장을 지나, 마침내 네모난 교실 안의 자기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아직도 두근거리다니. 반가움이기도 했고 슬픔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나를 아직도 두근거리게 한다는 것은. 드르륵,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처럼 선수들이 입장했다.


세 사람은 처음으로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편하게 느끼면서도 또 적당한 예의를 지키며 어떤 선을 넘지 않는 사이였는데. 오늘은 이따금 자기 안의 괴성이 터져 나왔다. 아, 쏘니! 오 이강인! 오 됐다! 어! 와! 아 모세스! 이래서 중동하고 할 때는 조심해야 돼. 아 중국 심판! 너무 한국 여자 관중만 비춰 주는데? 왜 그래 정말 쿠팡플레이!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에 열중했다.




옆에 앉아 있는 남자. 한 소녀의 남편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의 아빠이자 무거운 짐을 진 가장으로서 살고 있는 그는 이따금 과하게 소리를 질렀다. 때때로 그것은 옆에서 헤드폰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놀랄 만큼 복식의 비명이곤 했다. 축구는 핑계일 뿐, 정녕 그는 억압돼 있는 프로 스크리머(screamer)였던 것일까. 축구를 좀 아는 내가 보기엔 별 것 아닌 듯한 찬스에서도 계속 그렇게 소리 지르고 있다고 느껴질 때쯤에야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바랐던 것이 그냥 골이었던 것만은 아님을.


우리는 무엇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을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은 찬스만 와도 깊은 소년의 괴성을 지르던 남편에게나, 아주 확실한 찬스에서만 알은체 하며 차갑고도 뜨겁게 한 마디씩 하던 나에게나, 이래서 남편이 전도사님하고 축구를 같이 보려고 했구나- 티키타카 계속 떠들며 축구를 보는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말하던 아내분에게나, 헤드폰을 끼고라도 그런 우리 곁에 붙어 게임을 하기를 바라던 아이들에게나. 축구만도 텔레비전만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꽃향기를 잃어버린 꼬마 자동차 붕붕의 슬픔이나 아득한 우주의 오로라 쇼 같은 것이었다.




어느새 아내분은 함께 몰입해 축구를 보며 이따금 돌고래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남편분은 마지막까지 손흥민의 골에 목말라했다. 한국이 이미 삼 대 일로 이기고 있음에도 정말 손흥민이 마지막으로 한 골을 넣기를 간절히 바랐다(고기 뷔페를 먹고 가게 입구 옆의 냉동실 안에 한가득 담긴 샤베트 하드로 입가심하듯). 나에게도 손흥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그러나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힘이 빠져 그의 골을 특별히 더 원하지는 않았다. 나는 생이 무력하고 불안해서 침묵했는데. 조용히 숨죽이듯 내 안의 무게중심을 짓누르며 축구를 봤는데. 외향적인 그는 후반 끝까지 쏘니의 골을 기다리며, 소리 지르고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열중할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티비 앞에 나란히 앉아 목을 빼고 축구를 보는 일은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선명하게 열중하게 하는, 근사하고도 이상한 매개였다. 두 시간 동안만큼은 그래도 된다고 허락하는 속삭임이었다. 행복감과 책임감 사이 어딘가에 있는 짐의 무게감에 자기도 모르게 짓눌리거나, 하루종일 아이에게 시달리며 집안일을 하거나, 그 무엇도 하지 못할 만큼의 무력감과 우울감에 시달리거나. 우리 모두에게는 소리 지를 것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만의 고유한 소년과 소녀처럼 반짝이며 웃고 울 것이.


이태리 월드컵 스페인 전에서 황보관의 캐논슛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소년이었던 나는 동네가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안방을 뛰쳐나와 옥상까지 괜히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한참 깊은 새벽, 축구를 보던 내 등 뒤에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깊이 잠든 엄마 아빠는 별안간 내가 지르는 비명 소리에 잠이 다 깨셨다. 하지만 그리고도 내 흥분이 달콤하셨는지, 그날따라 조금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규범에 관한 한 철두철미해서 무섭고 사납게 느껴지기만 했던 아빠마저 어딘지 따스했다. 잠결에 깨어나신 아빠의 두터운 얼굴 피부에, 말없이 은근한 미소가 만연하게 번지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말과 표정이 달랐다. 단잠에서 깬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한참 자다가 막 깬 엄마의 얼굴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말은 얘가 왜 이려어- 동네 이웃 다 깨에- 라고 말렸지만, 말과 눈빛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나의 꿈결은 정확히 그런 곳이다. 난 엄마 아빠가 덮고 있던 무거운 솜이불보의 꽃무늬에서,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한 사랑의 울렁거림에서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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