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또는 비난, 또는 혐오.
얕고, 작고, 재빠른 태도들은 순간을 나아지게 하지만 깊고, 크고, 느린 태도들은 커다란 인생 전체의 틀을 나아지게 한다. 바람은 파도를 일으키지만, 지진은 해일을 일으킨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비, 바람은 눈에 보이지만 땅 아래의 일들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딛고 선 지면의 밑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사람의 지각 능력으로써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작은 지진들이 일어날지. 하물며 지질의 판이 틀어지고 있는 것이야.
언제부턴가 전반적인 인생의 태도를 느리고 깊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재빠름이 아니라, 깊이, 천천히, 진지하게- 말이다. '생각하고 듣고 멈추기'를, '느끼고 말하고 움직이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험들이 반복적으로 축적되었다. 이즈음은 그러나, 그런 생각이 더 짙어지고 있기만 할 뿐 나는 시도 읽지 않고, 문학도 펼쳐보지 않고, 글도 쓰지 않으며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타락과 나락으로 소실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긴 호흡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다 읽은 사람의 매력과 캐주얼한 웹소설만 보는 사람의 매력은 같은 것일 수 없었다. 많은 SNS 콘텐츠들은 내게 지금 재빨리 열고 넘길 것을 요구했지만, 긴 고전을 읽는 일은 시간의 숙성을 거칠 것을 요구했다. 고전 문학 시리즈를 향한 나의 과감함과 진지함은 검지 손가락까지만이었다. 뜨겁게 검지손가락을 펼쳐 책등을 향해 돌진해 기어코 뽑아 들지만, 그 귀한 책을 펼쳐서 잠깐 보고 다시 집어넣을 뿐. 나는 진정하지 않은 것들은 그토록 탐색하면서, 진정한 어떤 것들을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하곤 했다.
기계의 자동화 공정으로 만든 악기와 사람이 손으로 만든 악기는 같은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이 만든 악기 중에도,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장인이 만든 악기와 돈벌이에 쫓겨 충열된 눈과 뚝딱거리는 손을 가진 공예가가 만든 악기의 소리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근원적인 목마름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작가들이 오래된 브랜드의 타자기를 사랑하는 이유도.
독특한 클래식 카 매니아가 포니와 프라이드, 프레스토, 콘코드, 캐피탈, 심지어 이제는 사고 싶어도 사기 어려운 티코까지 탐색하는 이유도.
일단의 클래식 카 매니아들에게 80-90년대 한국과 일본의 클래식 자동차가 인기가 많은 이유도.
깊이 생각해보면 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어떤 진정성의 냄새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진정한 것들이 소외되는 풍조가 심화될수록, 우린 진정한 것을 더 간절히 찾고 그리워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20세기의 기계였던 LP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90년대를 살아본 적도 없는 MZ 세대 사이에서 레트로 문화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왜 다시 X 세대의 통이 넓은 바지를 사 입기를 즐겨 하고, 90년대의 유행을 탐닉하고, 당시의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일까. 제대로 밥도 잘 챙겨먹지 못하면서 포인트를 긁어 모아 글렌 구드의 CD를 집어드는 나의 결기는 무엇인가. 결기가 객기가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원목 책상이 비싼 이유도. 명품 소파 브랜드의 검은색 가죽 소파가 서민들은 평생 소파 세트에 딸려 있는 스툴 하나 조차 장만하기 어려울 법한 가격에 거래되는 이유도. 우리가 몇 백 원 차이 때문에 올리브 식빵을 내려놓고 이내 우유 식빵에 손이 가곤 하지만, 가구를 살 때는 기꺼이 수십, 수백만 원의 돈을 지불하는 이유도 진정함의 냄새를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명화가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다른 어떤 재산보다 끔찍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과르네리 바이올린 한 대의 가치가 수십 억의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 반짝이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수긍하는 이유도 다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글이나 내뱉는 말들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정말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쓴 글과, 인정 욕구나 조회수나 얼마의 푼 돈에 급급해 글을 쓰는 사람의 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나 자신은.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즐겨 쓰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를 만들지 못하면서 내 글이 특별하다고 여긴다면, 글이라는 예술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얼마나 자기 기만적이고 부도덕한 것인가. 자기 글은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글들만 전전하면서 별로 가치도 없는 글에 읽지도 않고 좋아요를 누르고. 형식적인 댓글을 뿌려대며 sns 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패턴으로 글쓰기 플랫폼을 사용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수두룩한가. 나의 모습은 다른가. 삶의 작은 것들도 이렇게 대하는데, 인생 전체는 또 어떻게 살겠는가. 커피는 또 얼마나 대충 내리겠으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약속을 잡으면서 시간을 얼마나 가볍게 사용하며 살아가겠는가.
꿈을 꾸는 사람은 눈빛이 다르지 않던가. 절망은 절망이고, 인생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듯한 눈빛이 서려 있지 않았나. 나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 나는 생을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떠나려는가. 묻지 않을 수 없는, 나의 한심한 글쓰기 태도들. 또 읽기의 마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