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서울 모처의 스타벅스에 있다. 사역에 치이며 지내는 동안 나를 구백구십구번째 우선순위에 두고도 우정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기로 정했으면 그만인, 다행히 푸대접일랑 아랑곳하지 않는 자존감 타노스고 말이다.
이곳은 처음 방문하는 매장인데, 위로는 오피스텔이, 저층에는 카페와 편의시설이 있는 주상복합 건물이다. 높은 오피스텔 건물 일층 카페의 특성상 여유롭기도 하고 약간은 싸늘하기도 한 도시인들의 분위기가 풍긴다. 젊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고 가족 단위의 중산층이 여가餘暇를 즐기고 있다.
일요일 오후 시간대여서 그런지 자리는 거의 만석이다. 이제 막 들어온 듯한 건강한 체격의 젊은 여자가 자리를 찾아 헤메고 있다. '저기 자리 하나 있어요.' 마침 내가 작은 테이블에서 충전이 가능한 큰 공동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이어서 내가 비운 자리가 있다고 여자에게 나지막이 말해주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평범한 여자인 줄 알았다.
이내 여자는 내가 말해준 곳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유모차를 밀고 온 날쌘 젊은 남자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고. 마침 그 사이 내가 막 자리를 잡고 있던 긴 공용 나무 테이블 맞은편의 사인석 소파에 자리가 났다. 여자는 두 개의 뚱뚱한 짐을 의자 위에 올려두고, 테이블 위에 세 개나 되는 텀블러를 올려 놓았다.
일단 짐이 많다. 사회적으로는 자본 취약계층이며 정신적으로는 난민적 정체성을 가진(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늘 방랑하는) 사회 구성원이다. 많은 짐은 그런 사람의 특징 중 하나이다.
중산층은 손을 가볍게 하고 다닌다. 패션은 가볍고 산듯해 보이면서 세련된 것을 선호한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있거나 가벼운 가방 하나 정도만 가지고 다닌다. 홀가분한 차림은 멋스러움이자 과시의 기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다녀도 언제든 먹고 싶은 것과 마시고 싶은 것 정도는 뒷주머니에 무심하게 꼽아놓은 카드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짐이 많은 것은 물질적, 정신적 풍성함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고유한 특성이다. 중산층 이미지와 대비되는, 정신적 난민의 상징적 오브제 같은 것. 도시 밀림속 약자의 슬픈 풍경이다.
여자는 시종일관 약간 정신사납게 통화를 하며 서성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튀는 말씨와 목소리 크기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나의 사소한 친절조차 달콤했는지 계속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중간 중간 티 안나게/너무 티나게 나를 쳐다본다.
여자는 그런 행동을 꽤 오래 반복했다. 좁은 통로를 왔다갔다 하며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나를 바라보거나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곧장 무언의 제지가 시작된다. 여자가 자리를 잡은 바로 뒤 사인석 소파에 가족과 함께 앉아있던 중년의 아저씨가 여자를 째려본다. 여자는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남자는 맞은편에 아들과 아내와 함께 앉아있음에도 눈살을 찌푸리며 빤히 여자를 바라본다. 아들과 아내는 각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그로태스크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내것이라고 여겨졌던 매너의 감각이 건드려진 것이다. 여자의 행동이 좀 부산스럽긴 했지만 우리가 신경을 좀 덜 쓰고 관대하게 바라보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여자가 다른 손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것은 없었다. 중산층의 교양있는 가정의 가장은 자기 오피스텔 일층의 카페에 이런 여자가 드나든다는 사실에 신경이 건드려졌다. 그냥 싫은 것이다.
그것은 아주 유치한 것으로 내것이라고 생각한 어떤 감각이 건드려졌고, 그걸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것이라고 여겼던, 안락한 감각을 주는 매너가 훼손되었고 내것이라고 생각한 오피스텔 건물 일층의 여유로운 카페 공간과, 한가로웠던 일요일 오후가 침해당한 것이다. 실상 그 모든 것이 자기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저 아저씨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타인에게 관대하고 친절할 것 같지만, 나도 '내것'에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가. 실상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고, 그러니까 원천적으로는 내것이 아님에도 다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수준이 얼마나 유치한가. 감사할 줄은 모르고 잃어버린, 어차피 다 사라져버릴 것들만 잊지 못하는 나는 저 여자처럼 얼마나 가난한가. 우리는 구별된 성정의 다른 사람인가, 아니면 약간씩 비틀어진 하나의 몸체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친구가 왔다. 나는 미지의 경험을 향해 나간다. 슬쩍 돌아보는데 등뒤의 여자는 아직도 하얀색 중국산 유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부산스럽게 왔다갔다 하며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중산층 가정은 불편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소파에 앉아 각자의 휴대폰을 하고, 젊은 사람들은 외롭게 각자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