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다가 다다다닥 뒤늦게 뛰기 시작했는데, 3초쯤 차이로 막차를 놓쳤다. 눈앞에서 스크린 도어가 닫힌다. 저걸 타야 집에 가는데. 나의 인생은 언제부턴가,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흘러가는지. 드라마가 식상해서 재미없을 정도다. 조금 전 스크린 도어 앞에서처럼, 조커처럼 웃는 날들이 숱하게 많았다.
여의나루역 승강장의 익숙한 긴 의자에 앉아, 그옛날 Y 교회 뒷편의 드롭탑 카페에서 밤을 샐까 순간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허기짐을 해결하려면 집으로 가야간다는 생각이 51:49 정도로 이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끌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대학로까지 갈 수 있는 마지막 열차였다.
그러고보니 한성대입구행 4호선 막차를 타는 것은 도대체 또 얼마만인지. 아니, 그보다 Y에 온 게 몇 년만인지.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오래되었다. 2교육관 로비는 예전과 달리 밤에는 앉아있지도 못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 옛날에는 2교육관 앞에서 청년들이 워십 연습도 하고 밤새도록 로비 의자에 앉아 있거나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자도 좋은 공간이 아니었던가. 나처럼 노숙인의 신세에 처한 청년이나 진정한 노숙인 분들에게 대성전과 바울성전, 교육관 등을 일제히 개방하는 이 교회가 나는 사랑스러웠는데.
어쨌든 오늘부터 벚꽃이 질 때까지 거의 매일처럼 갈까 생각중이다. 벚꽃 시즌은 물론이고 몇 해 동안 거의 발걸음도 들이지 않은 땅, 여의도. 이곳에 올때만 느껴지는 고유한 감각이 있다.
막차에 몸을 싣고도 마음은 여의나루와 드롭탑과 윤중로에 있었다. 마포를 지나 공덕을 지나 서대문에 다다를 때까지도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 막차가 있는지 검색하며 미련을 못 버렸다. 그 정도로 내가 그땅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구나, 여의나루역에서 점점 멀어지는 지하철 안에서 새삼 깨닫고 있었다. 그 시기가 그랬고, 또 그 공간이 그랬다. 나의 인생에서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는 그런 때였고 여의나루는 그런 곳이었다. 이상하게도 늘 그 땅을 밟을 때마다 떨림과 설렘이 있었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그 땅이 그랬는지도, 그 시간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나는 무엇인지도 모를 그 무언가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
이삽십대 구간의 십수 년 세월 동안, 적어도 그 모든 날들의 주말의 삼분의 이는 이 땅에서, 그러니까 여의나루역과, 여의나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더 가면 있는 Y교회 일대에서 보냈다. 길게는 주말 평일 할것없이 선교훈련을 받고, 밤을 새며 캐리어를 꾹꾹 눌러 짐을 싸고, 안되는 워십 동작을 꾸역꾸역 따라하고, 목이 쉬어라 이부 철야 기도를 하곤 했다. 짤막하게는 출근해서 일을 하기도 했다. 첫출근 당일 새벽 동대문에서 급히 산 양복을 입고 새벽같이 뛰어나가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허드렛일을 하기도 하다가 점심시간이면 비싼 점심을 얻어먹으며 다른 직장인들과 뒤섞여 여의도 직장인 놀이를 하기도 했었다.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으며 무겁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나이 어린 선임 전도사가 사주는 아이스 라떼를 쪽쪽 빨며 여의도 공원을 노닐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무척 독특한 가득참과 공허함의 시간을 보냈다. 토일, 주말 내내 그렇게 가득찬 마음이었다가 집에 돌아갈 때는 이기기 힘들만큼 공허함이 찾아오는데, 끙끙거리며 참으며 귀가를 하곤 했다. 마포대교 위의 263번 버스 안에서 머리와 속이 울렁거려 눈을 질끈 감으며 집을 향하곤 했다. 왜 그렇게까지 공허해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내 영혼을 그 시간과 공간에 던지며 무언가를 희구했구나, 짐작될 뿐이다.
그랬던 곳에 이렇게 오래만에 오니,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무언가 혼탁했던 진흙물의 층위가 맑게 나눠지는 것 같았다.
여의나루역에 도착했을 때가 밤 열한 시 오 분 경이었다. 어떻게 내가 이곳을 다 왔지. 멍하니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려놓았다. 귀가를 재촉하는 사람들의 물결을 고요히 거꾸로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잔뜩 흑화된 연어가 대학생 커플과 두서너 명의 여학생 그룹 등으로 이뤄진 싱그러운 끝물 벚꽃 소풍단 무리 한 무더기와 교차하며 어떤 세계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지겨울 정도로 깊은 여의나루역의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다 오르자 마침내 여의나루역 앞의 보도블록이 밟히고, 십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서있는 벚나무들이 거짓말처럼 시야에 들아온다. 아직 벚꽃잎들 사이로 푸릇한 잎이 듬성듬성 보인다. 벚꽃스타팅이다.
십수 년 전 어떤 작은 교회 사역을 그만두기 전 섰던 세계선교센터 남자화장실 거울 앞에 또 한 번 서보았다. 마음 고생이 심했구나. 떨어져 밟히고 짓이겨진 벚꽃잎처럼 많이 늙었다. 영혼속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벚꽃잎들이 흩날리고 교차한다. 거짓말같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