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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생각

by jungsin

갈곳이 있는데 갈곳이 없는 느낌. 사람이 이러다 끝을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한참을 자다 깨서 곧 버스에서 내렸다. 새벽 한 시. 공허함과 막막함과 쓸쓸함이 밀려왔다.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짙게 났다. 부활절이 막 끝난 새벽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덩그러니, 새벽 찻길에 남겨진 나. 온 세상이 고요했다. 이 지겨운 거리의 분위기가 권태롭고도 낯설었다. 한 동생의 말처럼 누구나 겪는 일이었지만 나만 겪는 고유한 감각과 생각들이었다. 그것의 고유함을 생각하면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슬픔과 고통이었다.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라도 적어 두어야지. 나의 이 슬픔과 그리움과 버거움을 다 묘사하지는 않더라도. 오늘, 나에게 이런 감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주에 혼자인 것만 같은 새까만 외로움과 두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적어두어야겠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생의 그늘에 새까만 슬픔과 쓸쓸함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는 것은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끝나도 좋겠다. 아니. 꼭 지금 끝나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하는 생각.


빳빳하게 늘어트려진 반짝이는 곤색 넥타이 아래로 헤어진 아빠의 속옷. 최악의 봄밤. 이십분 쯤 터덜터덜 걷다가 화장실에 앉아 쓴다. 열린 화장실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누가 가져가는 소리가 난다. 굳이 주인이 있다고 소리치지 않았다. 어차피 내것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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