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new year!
1) 아득히 오랜만에 그곳을 가보았다. 청춘의 한 시절은 해가 바뀔 때마다 이 교회에서 카운트다운을 했다. 송구영신 예배가 끝나면,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어깨를 부데끼면서 연장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중간에 어디 차가운 동대문 길바닥 같은 곳에서 밤을 새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귀갓길을 걱정하며, 바삐 막차 시간을 검색하면서 고생하며 집으로 오곤 했는데.
해가 바뀌고 새해가 시작되는 그 시간들의 기분은 늘 상기되어 있었다. 이 땅, 이 교회는 늘 그런 느낌을 주었다. 오늘, 지금 내가 살아있는 기분 같은 것. 그런 기분은 나의 꿈과 청춘, 그 자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분이었다면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도 그곳과 그 사람이 나에게 살아있음의 기억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2) 자정까지는 아직 십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잘하면 예배당에 들어가서 가여운 성도들 사이에 껴앉아, 목사님의 새해 카운트다운은 들으며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안도하며 성큼성큼 버스에 올라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차창 밖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어? 왜 한강이 나오지? 또 마포대교로 우회전하는 버스를 탔다. 교회를 다니며 열 번도 넘게 했던 실수를 또 하다니. 그대로 마포역 정류장에 내려서 신호등을 건너다 무심코 핸드폰을 보았다. 때마침 이제 막 열두 시가 되고 있던 찰나였다. 그 순간 길 건너 캄캄한 곳 어디에서, 누군가 열두 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외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하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십대일 것으로 짐작되는 남자 청년들의 목소리다.
길거리에서 해피뉴이어를 외치는 청춘의 등장이 자못 싱그러웠다. 우렁차게 외치는 목소리의 에너지가 아련히 전해졌다. 뭉클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괜히 내 가슴속에까지도, 잠잠히 싱숭생숭해지는 파장이 일었다.
아기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이야기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방의 점쟁이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탄생한 것과도 같이 참 엉뚱한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2026년이 시작되었다. 찬 길거리 위로 매섭게 부는 강바람을 맞으며 나지막이 화답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 캐리어에 끼워 넣고서 큰 숄더백 안에 넣어둔 아이스 라떼 테이크 아웃 잔이 내내 좀 거슬렸다. 컵이 흔들리지 않도록 빈 안경집을 캐리어와 컵 사이 작은 틈에 살짝 끼워넣고 버스 정류장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온 신경과 시선은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향하고 있었는데. ‘툭’ 소리가 난다. 짐이 별로 없는 큰 숄더백이 의자 위에서 쓰러지면서, 컵만 덩그러니 땅바닥으로 떨어진것이다. 역시 멀티플레이가 전혀 되지 않는 나다.
테이크아웃 컵이 바닥에 부딪치며 뚜껑이 살짝 열렸는지, 엎지러지지 않기를 바라며 단속해서 주워 담으려 할수록 커피가 더 많이 엎지러진다. 주섬주섬 휴지를 찾아서 커피를 닦으려 하던 참, 마침 버스가 온다. 잠시 치열하게 갈등하다, 굳은 결심을 하듯 버스를 타기로 한다. 원래 내 성격이라면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민폐 끼치기를 두려워하는 것에 있어서는 일본인이 울고 갈 정도인데. 엎질러진 라떼를 내버려두고 그냥 그대로 타버렸다.
시간이 꼭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흐르고, 엎질러지고, 덮쳐온다. 주워담을 수도 붙잡을 수도 끌어당겨올 수도 없는 시간은 나에게, 늘 질문과 숙제를 준다.
4) 월말이자 연말인 그 시간, 나는 지하철 안에서 각종 서점의 포인트를 소진하여 책을 사고 연말 이벤트에 응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작고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 의미없는 것들에 몰두하는 사이 웅장한 새해가 덮쳐왔다. 너무나 우습고, 또 슬프기도 한 부조리였다.
언젠가부터 이처럼 우스운 풍경으로 새해를 맞곤 했다. 신비로울 정도로, 결정적으로, 간발의 차로, 쌓여있는 무수한 포인트들을 쓸 기회를 놓치며 그랜드 뉴 이어를 맞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빈곤했다. 까뮈가 20세기 후반에 한국에서 태어나 나를 알았다면 틀림없이 나를 좋아했을 것이다.
이런 자신의 부조리한 시간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관념보다 미시적인 공감의 감각이 필요했다. 접촉이 없으면 우울감에 빠져버린다. 그렇게 보면 신학에서 문학으로 가파르게 시선이 옮겨가게 된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배교적 행위이기보다 그에게서 멀어지지 않은 채 그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넒은 의미의 신학이라고, 기도라고 핑계 삼았다. 나는 무엇이든 매만져야 했다. 모든 것들을 깨물어 먹지 않고, 뱉지 않고, 입안에 넣고 굴려도 괜찮다고 말해줄 구실이, 나긋한 어깨가 간절했다.
한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새해 축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