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여기까지만

by jungsin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멍하니 있기만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손가락이 마비된 것처럼 안 움직이는데, 써야 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지금이 그런 순간이다. 그래서 이렇게 태블릿을 켜고 키보드를 연결하고 브런치를 열고 흐느적거리는 마음과 힘없는 손가락으로 아무 글이든지 쓴다.


사람이 어떤 감당하기 힘든 일속에 빠지면 마음의 초점이 나가버리곤 한다. 본체가 꺼진 모니터처럼 순간적으로 자기를 잃어버리고, 눈에 초점이 사라지며, 시선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럴 때 글을 쓰면 속이 텅 빈 마음으로 *흥얼거리며, 불안한 연주를 하듯 쓰게 된다. 흠흠~ 나나라라라. 지금처럼 말이다.


이런 상태로 쓰는 글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지, 나 자신도 의문이다. 일말의 의미라도 있는 것일지조차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이럴 땐 동물적인 상태가 되어 쓴다. 무엇이라도 써야만 할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혀, 정말 무엇이라도 새겨 두는 것이다. 가령 신나서 집을 뛰쳐나가 이제 막 산책을 시작한 작은 강아지가 대뜸 골목 끝의 전봇대에 다리를 들고 찔끔, 영역을 표시하듯이 말이다. 어차피 야생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거의 대부분의 일생을 반려인의 집에서만 살 그 작은 강아지에게, 골목 끝의 전봇대에 찔끔 오줌을 싸두는 일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다만 그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전봇대를 보는 순간 다리를 들고 몇 방울의 오줌이라도 싸두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아주 잠시라도,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만 한 듯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가령 광대한 자연 속의 치와와가 된 듯한 일말의 뿌듯함을 느끼며, 작은 산들바람을 맞으며 다시 혀를 내밀고 촐랑촐랑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글쓰기는 어쩌면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며 촐랑촐랑 앞으로 걷기 위한 다리 들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어떤 글자든 새기기 시작하면 한 뜸쯤은 불안과 슬픔이 누그러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난 ㄱr끔 눈물을 흘린다-부터 시작했던 나에게, 해가 뜨면 금새 다 녹아버리곤 했던 이런 작은 행위는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오후 내 굴린 눈사람의 몸처럼 점점 불어나 이제 해가 떠도 녹지 않는 일이 되었다. 내게 그만한 위로를 줄 수 없다면, 감히 누구라도 이런 작은 행위를 작은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되어 가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느 정도의 위로를 받는다. 당장 화장실에 가야만 했는데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당장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뛰어들어갔는데, 차가운 변기에 앉아보니까 괜찮아졌다. 이런 문장들의 근원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가장 깊은 단계의 글쓰기는 마음속에 새겨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더라도, 왜인지 지금은 쓰고 싶지 않다. 그보다 다 쓸 자신이 없다고 해야겠다. 아니. 쓸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남김없이 다 쓸 수 있지만. 그러고 싶어 할 자신이 없다. 이럴 때는 부담이 덜한 소재라든지, 아예 노는 것이, 놀이가 될 만한 글쓰기를 하는 편을 택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놀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커피가 떠오른다. 전에 마저 쓰지 못한, 나의 첫 영어회화 선생님 John Beck의 커피에 대해 써야겠다. 우선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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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uld도 그래서 흥얼거리며 연주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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