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생각을 알고 싶은 거지, 당신을 보고 싶은 게 아니야.
1
모르는 사람들과의 모임은 유익하고 외로웠다.
주제 영화를 본 당신의 소감을 말해줘. 당신 말고. 그런 건 무겁고, 궁금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적당한 길이로 들려줘. 조리 있고 센스 있게 해주면 이런 모임의 티피오에는 딱 제격이지. 제발 그것만 잘해주고, 다른 건 다 당신의 기억 속에 넣어두어 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모두 그랬다.
그런데다 대고 바보 같이.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영혼 은밀한 곳에 고인 진한 쓸개즙 같은 얘기를 순진무구하게 꺼내놓고 말았다. 사람들은 부담스럽다. 지금 여기서는 호기심으로 집중하지만, 돌아서면 다 잊어버릴 말을 굳이 우리에게.
숨겨두었던 이야기, 중요한 이야기는 아껴두었어야 했는데. 달떠서 그만. 나도 참... 저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 없어. 자기 필요와 성장 같은 것이 중요한 거지. 아… 또 이렇게 요즘 세상에 대해 하나를 배우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돌아서는 내 자아가 뱀이나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처럼 가볍게 느껴지고 까슬거렸다. 이래서 자기 얘기를 아끼는 거구나.
아아, 그러세요. 버스 타고 가시는구나. 저는 이쪽으로 가야 해서. 에서의 ‘저는 이쪽으로 가야 해서’는 참 묘한 말이었다. 나는 이쪽 너는 저쪽 그는 그쪽. 그녀 1은 해외여행 중이고, 그 3은 이번 주말은 등산 모임.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함께 밥까지 먹은 사람들은 식당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그런 모습은 정말이지 기괴했다. 뭐가 두렵고, 뭐가 욕망되어서 그렇게 허둥지둥 허겁지겁 흩어져야 했을까. 마치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었던 것이었기라도 하다는 듯이. 바닥에 떨어진 쿠키를 몰래 야금거리다가 나른해져, 긴 더듬이 털을 그루밍하며 졸던 바퀴벌레가 주인이 방에 들어와 형광불이 환하게 켜지자 혼비백산에서 장롱 밑으로 달려들어 가듯. 각자 바삐 어디론가 가던 그들 누구도 어디에도 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느껴진 것은 무엇보다 아마 내가 어디로도 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전거의 킥 스탠드를 습관적으로 힘차게 발로 차는 나의 발이 공허했다. 마치 힘이 가득한듯, 젊은듯, 꿈이 가득한듯, 그렇게 찰 필요가 전혀 없었다.
사람들은 닉네임을 사용했다. 실명을 알 수 있는 때는 누군가가 실수를 할 때였다. 가령 밥을 먹고 이름을 고치지 않은 채 N분의 1 입금을 할 때. 원래의 운명이라면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필요를 따라 만나는 일은 허무하고 난처한 감각을 주었다.
궁금한 정보는 AI에게 얻는다. 전화보다 문자, 문자보다 카톡, 카톡보다 디엠을 선호한다. 고요하게 혼밥을 하고, 정기 모임 한두 개를 나간다. 너무 많은 것은 좋지 않다. 삼 주에서 사 주에 한 번 정도 인간에 대한 허기를 달래는 것으로 충분하다. 북극곰이 한번씩 물에 들어가 생선을 잡아먹듯이 말이다.
2
동대문을 지나다 밀리오레 앞에 멈춰섰다. 추운데 서서 차갑고 높다란 빌딩을 한참 올려다 보았다. 사양이 좋지 않은 오래된 컴퓨터가 잘 안 쓰는 D 드라이브의 디스크 조각 모음하기를 하듯, 기억이 굉음을 내며 편린을 수집하고 있었다.
# 땀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폴리에스테르 100 퍼센트 소재에 독특한 디자인의 검은색 남방을 삼만 원, 사만 원씩 주고 사서 입음.
# 기질이나 성격, 취향이 전혀 다른 남녀의 친구들과 사흘이 멀다하고 하염없이 마주 앉아 있음. 그럴 때 지분거리던 느낌이 무엇이었지.
# 으레 2차, 4차까지 가고 웃기고, 놀리며 어울려 놂. 그러다 누군가를 끙끙 앓으며 좋아하거나, 그 안에서 누구라도 만나 사귀기도 함. 온통 서로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 뿐, 진지한 얘기에는 관심도 없고 주제 대화는커녕 진지한 생각 같은 걸 누구도 하지 않음. 그래도 서로에게 치대고 치댐을 받으며 어울려 놀던.
눈망울에 아주 잠깐 아주 약간의 촉촉함이 스쳐지나갔다. 무엇이 지나간 것인지는 몰랐다. 그때 그 친구들은 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지. 현금은 오천 원 할인해준다는 말에 빌딩 계단을 오르내리며 ATM기를 찾아 돈 뽑아서 산 그 검은색 남방은 또 어디 갔지.
그 찰랑거리던 무거운 옷감. 그때의 검은색 남방이 그리워졌다. 그런 옷을 입고 나는 충만하게 돌아다녔다. 나는 이미 옛날 사람이었다. 하긴. 내 안의 그도 지금의 나에게 옛날 사람이니까. 타인에게 스무 살, 스물한 살의 나는 얼마나 옛날 사람일까. 당시의 내가 이제는 다 사라져가는 자개장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와 새삼 다시 자개장을 찾는 걸까. 어떤 시대의 그리움의 매질로서, 자개 무늬 같은 것을 더듬는 걸까. 자꾸 삼켜야 하는 것만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