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졸린 몸을 일으켜 비몽사몽 학교에 오곤 했다. 밥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오거나 조금 일찍 일어나면 우격다짐으로 입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허락했다. 예컨대 조미김에 꾹꾹 눌러 싸서 입으로 배달되어 들어오는 엄마표 오물조물 김밥을 목이 메이도록 먹고, 현관 앞에서 서주우유 오백 밀리를 투샷, 쓰리샷에 드링킹하다시피 하는 식이었다.
아무런 여유도 없었다. 단 1초도, 아니 0.5초도 여유가 없었다. 마지막 1초까지 자고 일어나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정문의 finish tape를 향해 달려가곤 했다. 층고가 높은 3층의 교실 뒷문을 밀고 들어오는 나의 허벅지는 터질 것처럼 아팠고 맥박은 언제나 정수리에서 끝에서 뛰었다. 숨은 없었다. 어딘가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없었다.
청색 이스트팩 가방의 끈 두 개를 의자 뒤에 걸어두고 숨을 돌리고 나면 0교시에 영어회화1이 있곤 했다. 아직 숨이 가쁘고 상기되어 있는 채 반 친구들과 터덜터덜 회화실로 들어가면 조금 전에 중앙 난방으로 튼 듯한 스팀의 열기가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공기에는 아직 서늘함이 남아 있었다.
어떤 정서적 여유도 없이 책임감, 두려움, 어떤 추상적인 열망만으로 회화실에 도달했다. 모두들 맹수에게 쫓기는 어린 사슴들 같았다. 좐 백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우리 회화 선생님이었는데 캐나다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는 잊어버렸다. 어쨌든 그는 온몸으로 북미의 문화를 둘러 안고 교실로 들어왔다. 늘 아메리칸 스타일의 큰 머그컵에 김이 솔솔 나는 커피를 들고 느릿느릿, 유유히 작은 회화실습실로 들어왔다.
옷차림의 형식은 늘 비슷했다. 거친 질감의 청색 진에 캐주얼 남방. 불룩 나온 배를 혁대로 꽉 조이고 남방은 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당시 남자애들은 남방을 바지 안으로 넣는 걸 금기로 여겼다. 그렇게 사소한 낯섬조차 충격적이었고, 한편으로 설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아주 여유롭고 느린 그의 태도였다. 그야말로 느린-보다 느려터진-이 더 어울렸다. 불어 터질듯한 입술과 처진 눈 끝매 안으로 빛나는 지중해 바다색 망채로 우리를 천천히 훑어보며 구웃 모올니이잉, 하우와유 투데이. 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런 인사말조차 우리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발음이어서 신선했다. 목소리의 음은 너무 낮아 땅으로 꺼질 것 같았다. 콘트라베이스의 제일 낮은 음에서 세 번째 위 음 정도 음의 느낌이었다.
나는 그래도 집이 좀 가까운 편이었지만 다른 애들은 캄캄할 때 일어나서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온 참이었다. 허겁지겁 허둥지둥 자기만 알 수 있는 스릴과 아슬아슬함을 거쳐, 7시 20분까지 오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가령 그는 옆 교실에서 초저녁부터 시몬스 매트리스를 깔고 한 열두 시간쯤 자고는 방금 막 교사 화장실에서 미국 비누로 세수를 하고 필립스 커피 머신에 아주 신선한 원두로 커피를 내려서 가지고 들어온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그의 그런 모습들이 이토록 오래 내 영혼에 남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무렵 흠모하던 에세이집에 나오는 이야기와 같은 것들, 그러니까 화장실 변기칸에 앉아 밤새도록 영어 단어를 외웠다는 청춘의 치열함 같은 걸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아무 여유도 없이 달리고 또 달리다 지쳐 잠에 들고, 다시 눈을 뜨고. 그런 시간을 매일 보내는 게 청춘의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유는 곧 죄책감을 의미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우리와 좐 백, 이름도 철철 흘러내리는 좌완 뵈에엑, 사이의 거리감을 나는 무엇으로 메워야 할 지 몰랐다. 우리에게 영어란 억척스럽게 달려들어 어떻게든 익혀야 하는 묵직한 절대 숙제 같았는데, 그에게는 마치 그것이 음악인 것 같았다. 빨리 문법과 핵심 비법 좀 알려주지. 수업 때마다 우리와 핀트가 맞지 않는 그의 여유가 속도 터지고 화딱지도 났다. 얄밉기도, 얄궂기도, 부럽기도 했다. 우리가 영영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아름다운 선, 그 선 위에서 노는 그의 언어의 세계가 신비로웠는데. 그게 절망이 되기보다, 이상하게 나에게는 희망이 되었다. 점심 시간마다 줄지어 있을 때 저 멀리서 보이는 영어과의 그 예쁜 애처럼 설렜다.
영어회화1 수업을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고, 고등학교를 열 번은 졸업했을 만큼 세월이 지났지만 나의 회화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수업과 John Beck이 내게 남긴 것은 가시지 않는 커피향과, 어떤 여운이었다. 나는 지금도 영어회화1 교실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