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중간계에 관해.

by jungsin


직설법밖에 몰랐던 나의 주라기 공원


기생충은 가족과 볼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15세 관람가가 정말 열다섯 살과 함께 봐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십 대의 누나와도, 칠십 대의 부모님과도 함께 볼 수 없었다. 거실에서 가족과 기생충을 보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얼마나 화끈거리고 쿵쾅쿵쾅 하며 혼란스러워지던지. 적어도 우리 가족 문화와, 내 가치관으로는 낯 뜨겁고 난처했다. 나는 ‘오 분 뒤로’ 버튼을 일곱여덟 번쯤 눌렀다. 정말 아끼고 아껴서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첫인상을 망쳐버렸다. 처음부터 은밀히 내 작은 옥탑방에서 혼자 볼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직설적인 사람이다. 분명히 맥락상으로 영화적인 장면임을 알 수 있지만, 조금만 관능적인 장면이 나와도 한없이 자극적으로 느낀다. 나의 느낌과 상상은 금방 암흑 같은 우주를 향해 발사한다. 관제탑의 통제를 벗어난 우주 미아 탐사선처럼 아득해진다. 지독히도 직설적이다. 나라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어쩌면 이토록 변함없이 직설적이고 펄펄한지 모르겠다. 도무지 철이 안 든다.


직설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렇듯 철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그보다 은유에 약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정말 은유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십수 년 전 강남의 모 학원을 다닐 때, 논술 수업에서 간통죄를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우리나라에 아직 간통죄가 현행법으로 존재하던 때였지만 이미 간통죄 폐지 쪽으로 사회 분위기나 법 논리가 기울어가던 무렵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약 7대 3 정도로 폐지 쪽이 우세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난 강경한 존치 사이드였다. 50대의 여자 논술 선생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를 두고는 “저 아저씨 좀 어떻게 해봐요.”라고 말했다. 내가 ’간통죄의 폐지를 찬성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유롭게 간통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토론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존경해마지 않던 기독교학과 교수님께서는 간혹 강의시간에 특유의 언변으로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열변을 토하시곤 했다. 어느 날엔가도 넋을 잃고 침을 흘리며 들을 정도의 화려한 수사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강론을 들었다. 그날따라 교수님의 수사와 논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설득력이 강했다. 자연스레 너무 심각하게 고민이 되어 교수님 방에 찾아갔다. 나름대로 선교를 비전으로 삼고 있었는데,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꼭 교수님의 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일선에서 사역하는 선교단체들은 지금이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라고 믿으며 헌신하고 있는데, 이 세계에서는 선교가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까, 교수님은 (한가하게) 공부를 너무 강조하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신학자인 교수님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가 내 물음이었다. 물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말이다. 당시 난 편입하고 이제 막 한두 학기의 수업을 들은 학부생이었고, 교수님은 신학박사였고, 명망 있는 교수이자 설교자였다.



명사와 직설법의 세계를 떠나


이제 나는 변했다. 지금도 매일, 열심히, 열심히 변하고 있다. 내가 있는 이 곳은 무척 음습하다. 풍요롭지도 않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지도 않는다. 축축하고 찝찝하고 슬프고 아프다. 중앙과 주변, 제도권과 제도권 밖과 같은 구조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가치관과, 만나는 사람, 읽는 책, 선택해 듣는 강의나 설교, 영화, 눈빛과 같은 이야기다.


무엇보다 쾌적하지 않다. 내가 머물러있는 자리는 강원도 고산길처럼 온몸을 적시는 찝찝한 이슬방울이 가득한 곳이다. 이 지점에서 난 한동안 머물렀다. 누군가에게는 타락이고, 누군가에게는 열린 사람이 되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지점에서. 어떤 목사님에게는 당장 쓸 수 없는 썩어빠진 전도사감이고, 누군가에게는 신학계의 어떤 도시 하수구 같은 곳에서 봉준호의 괴물처럼 은신해있는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보일 수 있는 지점에서.


자기 효용이나 어떤 진정성에 관해 주장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은유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특별하고 탁월한 신앙인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직설의 세계에서 은유의 세계로 건너가다 넘어져있는 시간들에는, 고민에 고민, 생각에 생각, 경험에 경험을 거듭하던 그 낀 시간들 속에는 새로운 언어가 너무나 많았다. 그것들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소화하고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아마 과거처럼 삶의 모든 면들이 풍요롭고, 또렷했다면. 자기 확신과 자신감과 명사로만 가득했다면 결코 이 느낌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언어들을 떠올릴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의도치 않게 희망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모호함과, 숨죽임과, 둔하고 지저분한 형용사와 부사들과 끼임의 자리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러다가 어렴풋이나마 이러한 느낌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그것들을 통칭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하다가 이즈음에 이르러서야 ‘은유’라는 단어 안에 숨덩숨덩 담을 수 있게 됐다.



은유의 중간계로


한 친구에 따르면, 나는 글을 쓰면 흥미롭게 필치를 펼쳐가다가 어떤 글이든지 결말 무렵에 이르면 급격히 커브를 틀어, 꼭 신앙적인 교훈으로 귀결 짓고는 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의 직설적인 사고와 패러다임은 내가 쓰는 글에도 일정한 패턴을 그려 넣고는 했다. 내 글은 어떤 감상에 잠잠히 머무를 줄 몰랐다. 사색이나 이야기로 시작해 교훈으로 맺었다. 넓게 써나가다가 좁게 맺었다. 전형성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그 친구는 ‘망쳤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내가 글을 망쳐버리고는 했단다. 신앙적 언어로 귀결 짓는 깔때기적인 방식이 기꺼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읽는 이의 자유로운 감상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전형적인 형식이 반복되는 것이 읽히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느껴지던 글의 매력을 곧장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글이 불친절하거나 자기중심적이라고까지 느끼게 되고, 결국 내 글이나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지독히 종교적인 사람의 종교적이고 따분한 글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 글이 후반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정도가 이전만큼은 아니라고 느낀다. 지금 나는 프랑스식 자유연애에 호기심이 많다. 선교에 대해서는 그때만큼 강박적으로 임박한 종말론적 소명을 느끼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요즘 교회는 잘 다니시죠? “라는 안부 인사를 들을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변했다. 과거에 비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덜 직설적인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0.1초 만에 직설적으로 에로틱한 느낌과 상상이 들기도 하고, 0.2초가 지나며 죄책감에 직설적인 기도를 하곤 하지만, 점점 삶의 은유법에 물들어가고 있다. 난 확실히 인간적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되돌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은유는 아이들의 세계다. 아이들은 이야기와 은유로 하루를 보낸다. 나도 어릴 적에는 이야기와 은유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이였다. 날이 셀 때까지 구슬치기를 하며 놀았고,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수련회의 밤을 보냈다. 추운 겨울날,에도 테니스공과 각목으로 야구를 했다. 비 오는 날에 집에서 친구들과 뻥튀기를 먹으며 수다를 떨거나 여자아이들과 섞어 앉아 이불에 손을 넣고 전기 게임을 했다. 밖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붙잡고 있는 내 손과 여자애의 손에서 미끈거리는 땀을 느끼며 생의 감각을 알았다. 놀이터에서 다방구를 했다. 둔탁하게 덜그덕 소리가 나던 책장의 유리문을 열고 금성출판사 주니어 추리소설 전집을 무작위로 뽑아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여자아이들이 수줍게 써준 편지를 읽거나, 혹은 읽지도 않고 버리면서, 얕게는 나의 이상형과, 깊게는 어떤 아름다움의 세계를 가늠해갔다.


또다시 신앙적 교훈과 뻔한 결론으로 글을 서둘러 맺으려 하는 직설적 성급함을 내 안에서 느끼고 있다. 아직도 나는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을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과 나긋하게 공감을 나누는 일에 서툴다. 영혼의 마디마디 스며들어있는 직설법의 독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디톡스가 필요하다. 더디게 진화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요즘도 여자들의 은유적인 감성과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 어려워 연애도 요원하다.


하지만 이제 은유가 직설법보다 훨씬 더 신학적이고, 무한히 더 하나님과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있다. 직설적인 당위가 아니라 이야기와 은유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낼 때 청중에게 더욱 짙은 여운을 남길 수 있으리라고 느끼고 있다. 직설적으로 내 신앙과 신념을 말하기보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자유를 주고, 이야기하고, 미끈거리는 땀을 느끼며 손을 붙잡고, 웃고, 바라보는 일로써 신앙을 말하고 싶다. 정돈된 조직이 아니라 흐트러진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텍스트뿐 아니라 콘텍스트에, 신학뿐 아니라 문학에,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프랑스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타성에 젖어있는 신앙인 아무개는 이런 변화를 보고 세속적이라거나 다원주의적이라는 둥, 부정적 인상으로 나를 규정할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은유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거스를 수 없다. 저벅저벅, 눈물과 땀과 피에 젖은 발걸음으로 은유와 공감의 세계를 향해 걸어 들어가고 싶다. 경건과 경직이 아니라, 웃음과 눈물로써 살고 싶다. 지금보다 더 생생히 살아있고 싶다. 다른 언어와 문법으로 신앙을 말하고 싶다. 은유와 이야기로 사랑하고 싶다. 이제 섣불리 15금 영화를 가족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기생충을 옥탑방에서 불을 끄고 은유로써 만끽해보고 싶다. 경직과 긴장이 짓누르고 잡아당기는 답답한 직설법의 대기권을 벗어나, 위트와 공감과 사랑으로 가득한 은유의 중간계를 향해 가는 것이다. 멀리멀리 날아가는 것이다. 신앙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날개로 날개짓 해 날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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