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둑의 구멍가게 _ 4

길에서 길을 묻다 _ 호이안

by 시간도둑


비가 내리는 아침은

다음 여정을 가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꾸이년에서 호이안으로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한

교통편이 없다.

다낭행 슬리핑버스를 타고 6시간을 가야 하는데

빗길 정체에 2시간이 더 늦은 8시간 만에

다낭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다.

그리고 다시 40여분 택시를 타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야

호이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제나 여행지의 첫날은

숙소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무작정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이안 시골마을의 평범한 일상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온다.

마을과 마을로 이어지는 길들은

바다가 있는 해변으로 강물이 흐르는 강변으로

차량들이 질주하는 큰 도로를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발길은 바다로 향한다.

처음 마주하는 안방비치는

이질감이 없는 포근함으로

사람과 바다가 참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렌트한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따라 달렸다.

낡은 자전거의 페달 밟는 소리와

이따금 들리는 수탉의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깨울 뿐

호수 같은 강가의 아침은 여전히 침묵 중이었다.

모양이 제 각각인 배들과 고기잡이를 위한 죽방

그리고 노동에 지친 어부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수상 방갈로가 강물 위 곳곳에 잠들어 있다.

앞서 달리는 아내의 뒷모습과 한 무리의

아이들 웃음소리에

한참을 달려 되돌아오는 길이 마냥 정겨웠다.

















다시 찾은 안방비치에서

한나절의 시간을

비치파라솔 밑 썬베드 위에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이

살아가는 중에 얼마나 될까.

익숙하지 않은 시간들로 채워지는 하루

스스로에게 주는

게으름의 여유가 조금은 부담스럽다.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바람에게

' 나 지금 괜찮은 거지 '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때마다 바람은 대답 대신

따뜻함이 묻어나는 손길로 안아주며 토닥여준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가는 도로의 양 옆으로

농촌마을 집들 사이사이는

더 좁은 길들이 경계를 이룬다.

일 년에 삼모작이 가능하다는 논농사의

막바지 모내기 작업 중인 마을 아낙들과

노지에 방목되어 길러지는 소와 닭들이

오래전 우리의 시골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소소한 산책길처럼 걷다 보니

코코넛배를 타는 선착장이 보인다.

물속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니파야자나무 숲에는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둥근 바구니배가

여행자들의 요람이 되어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베트남 전통방식의 배인

바구니 모양의 퉁버이는 대나무를 엮어 만들어진다.

가벼워 물 위에서 조정하기가 쉽고

안전성과 기동성이 뛰어나

지금도 꾸이년 지역처럼 바닷가의

어촌마을 어부들에 고기잡이 배로 사용 중이다.

실제로 타보니 겉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내부는 꽤 넓고 안정감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올드타운이었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즐길거리가

한 곳에서 가능한 올드타운은

모든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곳이다.

수세기동안 이어진 시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물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과 바람을 싣고

투본강 위를 별빛처럼 흐르는 소원배들은

옛것에 대한 그리움 같다.

올드타운에 어둠이 짙어질수록 주변의

소란스러움도 커져갔다.

소원배를 타기 위해

저마다 가슴 한편 소원등불을 켜고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가 즐거워 보인다.

"우리도 소원배 탈까? "

" 그럼 안 타려고 했어 "

내 물음에 아내는 당연한 걸 묻냐면서도 반색을 한다.

어둠 속 강물 위에 소원등불을 밝히는 아내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두 손을 합장하고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그 간절함이 무엇이든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게

나의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있다면

그래서 소원을 들어준다면

저 많은 소원들 중에 내 차례는 언제쯤에 올까.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계획된 여행이 아니었기에

미리 여행지에 관한 정보나 일정이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날그날 여건에 따라 방문지를 결정하고 움직였다.

이번 여행에서 꾸이년이 그랬듯 호이안 역시

최종 목적지인 다낭을 향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선택한 곳이었다.

때로는 아는 것이 없기에 별 기대조차 하지 않는

길을 나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무모함 일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대에 대한 만족이거나 실망이거나 하는

수학적인 확률은 반반이다.

운이 좋게도 호이안에 머무는 모든 날들이

하나 같이 좋았다.

경험상 살아가는 삶에 수학적인 확률은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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