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묻다 _ 다낭
최종 목적지인 다낭에 도착했다.
이번 숙소를 끝으로
더 이상의 숙소를 예약하는 일정이 없다는 건
어느덧 여행의 시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끝나지 않은 시간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감정은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생각보다 큰 규모의 다낭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벼운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지만
넓은 도시의 길을 걷는 것은 시간의 소비가 크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거리의 곳곳에서 한국인을 만나거나
한국어를 접하는 일이 어렵지 않아 신기하다.
번잡한 몇 번의 건널목을 건너고
소란스러운 골목길을 지나
한참만에 도착한 미케비치 해변은
궂은 날씨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위로 어둠과 함께 비가 내린다.
그렇게 쉽지 않은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여행 중에 가장 많은 날을 머물렀던 다낭에서
촬영한 사진의 컷수가 가장 적었다.
물질적 풍요가 주는 달달함이 가득한 도시의 일상들은
특별함이나 감동을 주지 못했다.
모든 것이 단순화된 도시의 길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수많은 장애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의 길이만큼 카메라를 부여잡은
손길은 느려졌다.
불편한 생각들이 많아지는 날에
로컬시장과 이름 모를 사원에 머물며 위안을 얻었다.
햇살이 좋은 날을 기다려 다시 미케비치를 찾았다.
한동안 흐린 날들이 많았던 탓에
사람들로 붐비는 해변은 오랜만에 활기가 넘친다.
" 저기 "
"뭐 하는 거지? "
나와 아내는 한 곳을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밧줄을 잡고
마치 바다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양쪽 무리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바다 물속에 잠겨있던 밧줄 끝으로
그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어부와 여행객들이 뒤섞여
그물을 당기는 손짓이 빨라지고
은빛 물고기가 첫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고기잡이 어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으로 잊지 못할
추억과 즐거움이 되었다.
포획한 결과물은 기대에 못 미쳐지만
누구도 실망하는 기색은 없다.
욕심 없어 보이는 어부의 얼굴에도 바다와 같은
푸른 미소가 번진다.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오행산을 방문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하는데
화산섬인 제주의 오름과는 많이 다르다.
제주도의 모든 산과 오름을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의 신화가 있듯이
이곳 오행산에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갇혀 있었다는 전설을 시작으로
오행산의 유래는 논누옥 바다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5개의 알을 낳고 그 알의 껍질이 모여서
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응우엔 왕조의 민망이라는 왕이 우주를 상징하는
철, 흙, 물, 나무, 불 5개의 원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오행산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어느 곳이든 샤머니즘적인 민간 신앙이나 종교적인 힘을 빌려
신화나 전설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신성스러움은 감히 인간이 창조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범주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암푸동굴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테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은
위험해 보일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쉬웠다.
아마도 천국으로 가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걸
상징적으로 표현해 준 것 같다.
다낭의 랜드마크처럼 등장하는
거인 손 모양의 골든브릿지를 가기 위해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바나힐로 향했다.
다낭시에서 40여분 정도 걸려 도착 후
세계에서 2번째로 길다는
케이블카를 타고 17분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해발 1950m 인 한라산에 비해 고작 463m 낮은
산정상에 어떻게 테마파크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처음 이런 계획을 실행한 사람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높은 고도로 인해 맑은 날이 드물다는데
골든브릿지의 디테일한 모습이 선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조그만 불교사원에서 바라본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풍경이었다.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약속의 시간이다.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전경을 마지막 사진으로
남겨두고 다낭공항으로 출발했다.
달리는 택시 안의 차창밖으로
익숙한 거리의 모습들이 스쳐지나고
빠르게 사라지는 사람들 사이로
다양한 색상의 조명 불빛들은
오늘도 경쟁하듯 어둠을 쫓아내고 있었다.
10여분 남짓한 짧은 거리의 다낭공항에 닿기까지
한 달이라는 긴 여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봄날의 따뜻함으로 낯선 이방인을 맞이해 준 냐짱
벽화들로 가득했던 꾸이년 어촌마을의 골목길
수백 년의 낡은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간직한
호이안의 올드타운
오행산에서 인생의 빛나는 날을 카메라도 담아내던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묻어나는 다낭
이 모든 시간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들어가기 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굿바이 베트남'
2시간이 넘게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어
불편한 대기 시간이 길었던 때문인지
턱없이 부족한 여행준비 기간에 비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숨 쉬는 것을 제외한 몸의 모든 기능들이
멈춰버린 듯한 짧은 시간이 지나고
곧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에 겨우 눈을 떴다.
입국장을 벗어나는
공항 밖에는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슬리퍼에 반바지 그리고 두꺼운 겨울외투 차림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시간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겨울바람에 코끝이 찡해진다.
마주 잡은 아내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한기에 잔뜩 움츠린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 준다.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