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묻다 _ 에필로그
어느 날 잊고 지내던 기억의 틈 사이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모든 것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다시 펜을 잡거나
낡은 카메라를 꺼내어 든 것도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닌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간절함이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의 여행은
매일 평균 16,000 걸음과
1,700장에 가까운 사진들을 촬영하는
과욕의 결과물을 낳았다.
여행의 피로감이 가기도 전에
사진들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동안
열흘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HDR 리터칭을 거치는 작업은
최대한 현장에 있는 듯한
사실적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각각 에피소드의 표지 사진으로 걸린
5장의 사진은
이번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들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냐짱비치의 넓은 해변을 홀로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이번 여행 에세이의 주제인
' 길에서 길을 묻다 ' 의
영감이 되어준 결정적 장면이 되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한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생각이 많은 나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아두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꾸이년의 골목길은
마치 벽화 속 그림 안으로 들어가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의 날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하게 정적인 느낌의 화려한 벽화의 이면에는
거친 바다가 터전인
어촌마을의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안녕과 만선을 기원하는
현실적 위안이 반영되어 있다는
연민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내가 좋아했던
호이안의 올드타운 밤거리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투본강의 소원배들이
많은 사람의 바람과 소망들을 담아
소원등불을 띄우기 위해
경쟁하듯 물 위를 질주하는 동안에
골목 안의 풍경은 고요했다.
백 년도 넘어 보이는 건물하나가
세월을 이겨내고 나이를 먹는데
굳이 소란스러울 필요가 있냐며
귀띔해 주는 것 같았다.
다낭의 미케비치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프레임 구도에 정성을 들였다.
야자수와 그늘, 바다와 해변, 책과 여인,
그리고 이동 수단인 오토바이까지
모든 것을 수채화 같은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내기 위해
몇 번이고 주변을 배회했었다.
마침내 찾은 해답은
나의 시선이 아니라 여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도였다.
고도 1,487m 인 바나힐 내에 있는
조그만 불교사원에서 바라본 풍경은
바나힐의 그 어떤 화려함보다 아름다웠다.
산들이 스스로의 높고 낮음을 자랑하지 않듯
자연은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끝없는 비교를 통해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그 사람 중에는 나도 예외일 수가 없다.
여행의 모든 시간을 함께한 아내는 나의 그림자였다.
사진 촬영을 위해 수없이 많은
걷기와 멈추기를 반복하는 동안
아내도 나를 따라 걷거나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나를 배려해 준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수많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편리함을 핑계로
여행에 관련된 지명이나 숙박과 교통등
세세한 정보의 많은 부분은 생략되었다.
사진으로 쓰인 에세이다 보니
내용의 글보다 첨부된 사진의 수가 많다.
욕심이라면 그림을 감상하듯
에세이를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