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있는 하루 _ 칼럼
직장을 다니던 시절 하루는 홍보부에서 전화가 왔다. 신문사의 지인 기자로부터 칼럼 요청을 받았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나였다고 나를 추천했단다.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글을 써야 하는 부담보다 무엇을 써야 할지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 오랜 고민 끝에 사진에 관한 칼럼을 쓰기로 했다. 당시에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몇 번의 공모전에 출품한 사진들이 당선되기도 한 상황이었니 스스로에게 꽤나 만족스러운 주제였다. 지나고 보니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부족한 것은 사진에 대한 열정이다.
불혹을 갓 넘기고 갖게 된 취미 하나가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다. 어릴 적 특별한 날에 필름 카메라에 담았던 아련한 추억을 이제는 특별하지도 않은 날에 디지털카메라로 기록하는 것이 다를 뿐, 여전히 사진이 전해주는 과거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가끔은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 사진은 어떻게 찍은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매뉴얼에 따른 기술적인 부분이라 설명하기가 쉬운데 어떻게 해야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냐는 물음에는 사실 답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개인의 경험과 감성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감성을 공식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진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진의 결과물은 빼기 더하기 그리고 나누기라고 말한다.
사진 촬영하는 일이 더는 재미있거나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고 슬럼프에 빠져 있을 무렵 지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진을 담아낼 수 있어?' 그때 그는 '버릴수록 좋은 사진'이라고 선문답 같은 대답을 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에 의미를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진을 잘 찍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사진 촬영에 대한 기본적인 스킬과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지속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기다.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비슷하다. 욕심이 많으면 삶의 굴곡이 깊어지듯 사진에 욕심이 많으면 좋은 이야기의 사진을 담을 수 없다. 사진을 배우는 과정의 많은 부분을 기술적 방법에 할애하면서도 정작 사진을 찍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 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 이유다.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늘 한정되어 있다.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과욕이 부른 결과물은 잘 찍은 사진이 될 수도 좋은 사진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표준렌즈와 망원렌즈를 사용하다 보면 좁은 화각으로 인해서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버리게 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빼기다.
버리는 것에 익숙해질 때쯤 이제는 채워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단순한 이야기에 몇 개의 이야기를 더하기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광각렌즈를 사용하여 바라보는 뷰파인더의 넓은 화각은 언제나 의도하지 않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누기에 대한 부분이다. 아무리 잘 구성된 이야기라 하더라도 전체적인 구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사진이 전하려는 의미의 느낌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경험상 구도의 변화는 가장 빠르게 자신의 사진에 변화를 주는 방법의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사진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운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은 공감하고 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