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의 감동이 아닌 마음에 닿는 떨림

똑똑한 것, 그리고 매료되는 것 그 이상의 삶을 살고 싶어서

by KeepWhatMovesMe
지식이 많고 똑똑한 사람은 제게도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그렇게 되고 싶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지식과 예술로부터 늘상 매혹되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것 이상이어야 함을 '절실히' 생각합니다. 지식과 정보가 아무리 많더라도, 아무리 많은 지식과 예술에 감화를 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건 그저 '내 안'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될 때 비로소 세상에 울림을 남긴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거든요. 이 글은 그런 당연하지만 중요한 생각에 관한 글입니다.


업무는 'Knowledgeable', 책/음악은 'Passionate'

올해 초, 나는 내 삶을 다섯 개의 영역으로 나누었고, 그 중 ‘업무’와 ‘책/음악’ 항목 옆에는 각기 다른 형용사를 붙여두었다. 즉, 업무는 'Knowledgeable', 책/음악은 'Passionate'. 저 단어들이 지닌 정서가 한 해 동안 내 안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나침반처럼 나를 이끌어줄 거라 믿으며. 하지만 일년의 반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나는 묻게 된다. 이 단어들이 나를 이끌었을까, 아니면 가두었을까. 혹시 그 형용사에 매몰된 채, 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리더 너무 똑똑하지. 그런데 뭐가 달라졌지?


얼마 전, A 리더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파트원 B와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30분 내내 보고했는데, 제 눈 한 번도 안 마주치셨어요. 계속 화면만 보시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그분한테 관심 없습니다”

회사에서 본 A 리더는 분명 똑똑했다. 아니, 똑똑해 보였다. 그런데 그 리더를 보면서 내가 가지는 의문은 이거다. 그 리더가 똑똑하기는 한데, 그래서 뭐가 달라졌지?

우리 회사 임원들은 숫자, 기술, 언어, 비즈니스 감각 중 최소 두 가지 이상은 특출나야 한다. 그는 드물게 네 가지 모두를 갖춘 인물이었다. 냉철했고, 명확했고, 상황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차가워요.” “인간에 관심이 없어요.” “항상 바쁘죠 뭐”

말은 논리적으로 완벽했지만,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고, 직원 모두가 모인 큰 행사장에서 건네는 메시지는 모두 옳은 말이었지만, 그래서 너무나 재미없었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가?' 한때는 이성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식이 풍부한 리더를 이상형처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객관식에 강한 리더가 아닌, 주관식에서 나만의 문장을 쓰는 리더가 되고 싶다. 자기만의 언어가 있는 사람 말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믿고 있는 논리를 솔직한 언어로 설파하며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리더. 그리고, 역시나 변하지 않는 가치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주는 리더'여야 함은 더 설명이 필요가 없다.


올해 내 업무 목표는 Knowledgeable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심에 두고 싶은 가치가 생겼다.

정보보다 관심을, 논리보다 울림을, 성과보다 변화의 온기를 남길 수 있는 사람. 그런 방식은 단지 ‘똑똑함’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있다. 그래서 나는 업무 체크리스트에 한 항목을 추가했다. 늘 가장 먼저 쓰던 Task Top 3 바로 아래, 2번째 항목 '파트원에게 먼저 말 걸기, 잡담하기, 신경 써주기'라고. 생각은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행동은 습관이 되어야 하니까.


그 아티스트가 멋졌다고? 그런데 뭐가 달라졌지?


얼마 전, 한 친구가 해외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고 와서 말했다. 무대 위에서 보여준 그 가수의 관객에 대한 배려와 인간성에 너무 매료되었다고. 그 친구의 들뜬 모습은 곧 나의 평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아티스트로부터 온 감동은 어디까지 갔어?' '그래서 그 감동은 그저 좋았다거나 그저 감동이었다,를 넘어서 너의 삶에는 어떤 변화를 남겼어?'

‘와, 멋지다’로 끝난다면, 그건 감상이다. 매혹이다. 그런데 매혹은 대개 자기 안에서만 반짝이다가 사라진다. 나 역시 그런 매혹에 쉽사리 빠져드는 사람이지만, 그 감동이 나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혼자만의 만족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내가 감동받은 순간들은, 내 삶의 방식으로 과연 번역되었을까? 정말로?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멜로디에 멈칫하고, 문장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날들. 그런데 문득 자문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읽고 듣고 기록하고 정리하는거지?' 물론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정신없는 소음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게 하루를 버티게 한 숨결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도 다시 묻게 된다. 이 벅참이 내 안에서만 맴도는 감정이라면, 그건 결국 자기만족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남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더욱 더 내 PC와 내 노션에 Database의 형태로 정리된 이 모든 것들을 어서 빨리 세상에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더 명확해진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음악과 문장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다르지 않게 '나라는 사람 자체'가 실제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메시지와, 에너지와 위로가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내가 진짜 바랐던 건, 그저 내 안의 강렬한 매혹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내 옆의 누군가,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에너지'와 '위로'가 전해지는 것일 게다.


그저 나 혼자의 지식을 쌓고 감동을 받음에 머무르지 않고, 일할 때도, 좋아하는 것을 누릴 때도—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결국은 나 하나만 충만한 삶이 아니라, 나로 인해 더 나아지는 하루를 함께하는 삶,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6월초부터 'Northern Star(북극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그 프로젝트가 실은 이런 바람을 실현하기 위한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요약하자면, '매료된 것들의 세상 내보내기 프로젝트'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의 목표가 실은 나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는 것이다. 지금은 여기까지 밖에 말할 수 없지만^^;;


여하튼 나는 그저 '나'에게 매몰되지 않겠다. 내가 사랑한 것들이, 내 가까이의 사람들부터 그리고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본질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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