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진심이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나는 매년 여름이면 조심스럽게, 긴장된 마음으로 계절을 맞이한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을 다해 준비해도 내 몸과 여름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 나는 그래서 생각한다. 지금의 이 계절은 내게 맞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매년 여름이 오면 나는 긴장한다.
이번엔 괜찮을까? 이번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누군가로부터 오는 연락에 다시는 다치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레 답하듯, 여름과의 관계도 매년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된다. Summer Phobia. 여름 공포증. 익숙해져야 할 이름인데도, 여전히 낯설고 겁이 난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의 10년 전부터 여름만 되면 어지러움, 기관지 질환, 무기력증으로 고생을 했다. 기본적으로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충만한 스타일이라서 이런 증상이 좀 낯설기도 했었는데, 최근에야 나는 이것이 단순한 불청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체질이 보내는 경고 신호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저혈압인데다가, 자율신경계가 예민한 성향의 사람인데, 여름은 신체적으로 내게 이런 영향을 끼친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실외의 뜨거운 공기와 실내 에어컨 바람의 극심한 온도차가 자율신경을 교란시킨다.
이 교란은 체온, 맥박, 호흡 같은 기본적인 리듬에 영향을 주고 면역력까지 약화시키며 작은 바이러스에도 쉽게 반응하게 만든다.
에어컨 바람은 인후와 코 점막을 건조하게 만들어 감기에 취약한 상태를 지속시키고,
저혈압의 경우, 더우면 혈관이 확장되어서 혈압이 더 낮아져 어지러움과 무기력증이 심화된다.
결국 여름은, 나에게 단순히 더운 계절이 아니라, 쌩쌩 달리던 자동차가 갑작스레 퍼지듯, 꽤 많은 것이 멈추어 서게 되는 낯선 시간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은 특히 힘들었다. 작년 여름에 너무 고생했기에 나는 올여름을 위해 한 해 동안 꾸준히 준비해왔다.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 명상까지. 하지만 6월 중순, 회사 에어컨이 가동되자마자 또다시 감기가 시작됐고, 일주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으니 또다시 조급증이 생긴다. 6월은 상반기의 마무리라 일이든 일상이든 6월까지 마무리하겠다고 세워둔 목표가 특히 많았다. 그리고 나는 6월말까지 그것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목표를 세워두었고 정말 그 목표를 달성하고 싶기 때문에, 그 집착이 되레 내 몸을 더 망가뜨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올해 이렇게 다짐했었다. ‘여름과의 화해, 2025’ 라고
카톡 프로필에 호기롭게 저 문구를 적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화해는 혼자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요즘 나는 ‘섭리'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섭리: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 또는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
나는 늘 남들이 '그건 안 돼'라고 하면, '아니, 난 해볼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자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진심'이면 반드시 닿을 거라 믿고, 내 '열정'은 어떤 것에서든 반드시 보답받으리라는 확신. 그런 내가,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계절은, 어떤 인연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화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여름을 좋아했다. 강렬한 햇살,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그 모든 게 좋았다. 하지만, 이제 그 여름은 내가 사랑했던 ‘열정’과 ‘소나기’의 계절이 아니다. ‘폭염’과 ‘열대야’가 이 계절의 정체성을 바꾸어놓았듯, 여름은 시간이 지나며 그것의 특정한 속성만이 지나치게 강화되었고 이제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여름이 아니다. 그렇다. 지금 이 여름은,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내가 화해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여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노력했어. 진심이었어. 그런데 이런 속성을 가진 여름과 나는, 애초부터 맞을 수 없었는지도 몰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좋아한다고, 진심을 다한다고, 꼭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어떠한 행동 패턴이 있다. 일이던지 사람과의 관계던지. 어떠한 숭고하고 아름다운 목표를 세우고(즉, 여름과 화해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즉, 여름과 화해를 하기 위해서 내게 하기로 한 노력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면), 하느님은 결국은 여름을 내편으로 만들어줄거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패턴(즉, 결과에 대한 강렬한 확신과 기대).
어쩌면, 나는 '섭리' 또는 '세상에 안되는 것도 있어' 또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는 식의 그런 말이 싫었었나보다. 하지만, 올여름 하느님은 다시 육체적 어려움을 주셨고, 그것을 통해 다시 내게 엄중하게 말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너의 노력은 충분했다고.
하지만 너랑 애초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음을 이제는 받아들이라고.
맞지 않는 것과 화해하려고 애쓰며 더 아프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