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견디는 다섯 날의 기록

감정의 폭풍이 지나간 후, 천천히 찾아온 평온에 대하여

by KeepWhatMovesMe

상실의 한가운데서 나는 매일 아침 '오늘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를 묻곤 한다.

슬픔이 마음을 덮치지만, 그저 버텨내는 것으로 이 시간이 지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무너지는 감정에만 머물지 않고, 작고 소소한 일기로 내 마음을 붙들어 본다.

지금의 이 기록들이 언젠가 내게, 잃어버림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

(글이 좀 두서가 없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긴 해서....)


숨 천천히 들이마시기!

요며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


최근 나는 꽤나 큰 상실을 겪었고, 그 여파의 여전히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 다만 지난 시간이 폭풍같은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쓰러진 마음의 기둥도 세워야 하고, 젖은 바닥도 말려야 하는 시기, 라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내 머릿속은 오직 하나 — 이 시간을 어떻게 잘 견뎌낼 것인가. 아니, 그저 '견디고 버티는' 것이이서는 안 되지. 먼 훗날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그저 무너지고 슬프기만 했던 시간이 아니라,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부차적이라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시기로 나는 이 시간이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나 자신과 함께 해 볼 수 있을까? 그래, 나는 매일, 작고 소소한 일기를 나 자신에게 써보기로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길어지지 않길 바라면서 첫날은 1일차 기록만 적지만, 매일매일 2일차, 3일차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해보기로 한다. (그래, 이 예쁜 프로젝트를 나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1일차 ㅣ 첫 날치고 최악이 아니었음을 기억할 것


잠깐의 시원한 바람에 아주 잠깐 미소지었다.

전날 잠을 고작 한 시간밖에 자지 못한 나는, 아침 출근길이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출근 버스를 타러 가는 5분 남짓한 산책로. 이른 아침이라 늘 혼자다. 혼잣말을 해도, 울어도, 웃어도 괜찮은 나만의 산책로. 맞다. 오늘 같은 날은 울어도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멍하니 걷는데, 여름날의 그 출근길에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어, 벌써? 벌써 나한테 선선한 바람이라는 게 느껴진다고? 그러기에는 내 오늘의 몸과 마음은 최악인데?

전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바람을 들이마셨다. 잠깐이지만, 그런 기대가 스쳤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거지?


바다 어때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걷기 할래요?

바다에 가면 좀 나아지려나

‘하느님이 나를 위해 회사로 파견 보내신 S님’이라는 긴 애칭을 보유한 S. (나와 그녀의 카카오톡 채팅방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와 점심을 함께한 뒤, 짧은 산책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에, 지금의 나처럼 S님이 어려움을 겪는다면…내가 어떤 말을 건네주었으면 좋겠어?”

아끼는 S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수영님, 바다 어때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걷기, 어때요?” 나는 곧장 답했다. “어, 나, 가고 싶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바로 알아볼게요.”

그래서 나는 말했다. “S님이 Set up 해주면, 내가 바로 Follow up 할게.” MBTI도 똑같은 우리는 이렇게나 착착 맞는다.


'바다'는 왜 항상 위로가 되지? 피서지의 바다가 아니라 차라리 장대비처럼 내리는 장마철의 바다이길.

그래, 기억하자. 첫날치고 최악은 아니었음을.


2일차 ㅣ '월광'만큼 '열정'도 좋은 것이었는데...


음악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까? 베토벤을 통해서?


베토벤 소나타 중에 14번 '월광'을 이길 수 있는 음악이 있을까? 압도적으로 슬프면서도 찬란하게 아름다운 이 음악에 예전에 빠져있을 때, 나는 '월광' 말고 다른 소나타는 마치 1등 없는 5등 정도로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연주한 23번 '열정'의 2악장을 우연히 다시 듣다가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느꼈다. 나는 2악장에 뒤늦게 너무 빠져서 '이제는 어쩌면 내게 베토벤 소나타는 23번 2악장일지도 몰라'라고 되뇌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클래식 FM을 들으면서 출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23번 '열정' 2악장이 나왔다. 설마 폴리니의 연주인건가 싶어서 선곡표를 찾아보니 맞았다. 게다가 전악장이 다 나오는, 눈물나게 감사한 순간. '하느님 감사합니다' (요즘 나는 맘이 약해져 곳곳에서 하느님을 찾는다) 출근길에 창문에 기대서 생각했다. 왜 나는 매번 그렇게 깊은 확신에 휩싸였을까. ‘월광’도 아름답지만, ‘열정’ 역시 이토록 아름다운데. 나는 왜, 세상엔 ‘월광’밖에 없다고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걸까.


늘 그놈의 ‘확신’이 문제다. 하지만 곧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데, 어쩔 수 없잖아'라는 반발이 따라왔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또 '확신'이다. 그래도 자기혐오보다는 자기확신이 낫지 않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 아직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있구나'라는 자각이 됐다.


**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며 출근버스에서 내렸다.


3일차 ㅣ회복의 속도에 취하지 말 것


회복의 '속도'에 취하지 말 것

오늘은 연차였다. 그리고 믿기지 않을 만큼 생산적인 하루였다. 하기로 한 일은 모두 해냈고, 오히려 계획을 초과달성했으니까. 평소에는 출근 버스에 앉아 있을 시간대에 3km 슬로우 조깅을 했고, 점심에는 산책, 저녁엔 피트니스 센터에서 PT까지 받았다. ‘천국의 계단’도 20분. 조깅이든 유산소든, 평소 대비 90% 이상을 소화해냈으니 몸은 확실히 회복세다 (그다지 무덥지 않은 날씨 덕분이기도 하다). 육체적 컨디션이 회복되니 6월말을 목표로 세워둔 개인 프로젝트도 더 깊게, 더 많이 진척시킬 수 있었다.

운동이 나를 구원해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아마도 몇 주, 아니 몇 달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얽매여 있다가 해방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어찌할 수 없음'이 사라지자 훨씬 홀가분해졌다. 3일차 치고는 놀라울 정도의 컨디션.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나는 이 사실을 더 경계해야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작년 6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유례없는 사건’을 겪었던 그 시기를 떠올린다. 당시 충격의 크기와 강도에 비해, 회복 속도가 너무 빨라서 주변 사람들이 놀랐었다. 그때의 나는 ‘이 일은 절대 내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박에 가까운 결의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계획표를 만들고, 일부러 더 열심히 살았다.

결과적으로 회복은 빨랐지만, 그만큼 몸과 마음은 조용히 상처를 쌓아갔다. 당시 카카오톡 프로필이 '한바퀴 뛰기' 였는데 뭔가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미친 듯이 달리기를 했더니 내 다리는 결국 햄스트링과 족저근막염을 얻었고, 그리고 얼마 후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니 대상포진이 찾아왔다. 그때 느꼈다.

상처를 남길 일은 결국 상처를 남긴다.
‘나는 생각보다 잘 극복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국 나도 특별히 강건한 사람은 아니었다.

회복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시간도 필요하다. 매번 하는 다짐이지만 또 해본다 '너무 애쓰지 말자'고.


회복 탄력성은 이번에도 유효할까?

하지만 동시에 기억하는 건 있다. 내가 몇몇 교수님이나 전문가들에게 들었던 말. "수영님은 회복탄력성이 굉장히 높으시네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기엔 이렇다. 나는 절망과 불안의 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것 같다. 그래서 그 상태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결국 그 며칠간은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일까. 절망이 찾아오면 거의 동시에 회복을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에 옮기는 내가 있다. (다행히 하느님은 내게 '불안/긴장'도 주셨지만, '계획과 추진능력' 그리고 '실천력'을 주셨다)

그래서 이건 내가 특별히 잘나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너무 괴로우니, 뭐라도 하게 되더라'가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어쨌든, 그 훌륭한 전문가들의 진단을 이번에도 한 번 믿어보기로 한다. 나는 과연 이번에도 그 가설을 입증할 것인가.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

며칠간 나는 2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첫째, '해명', '오해 불식'과 같은 단어. 왜 나는 이번 상실에 있어서 이토록 이 단어에 치중하고 있을까? 그에 대한 내 오늘까지의 결론은 이렇다. (내일 바뀔 수도 있다) '해명할 만큼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나 보다 → 아니, 해명은 결국 '진실'을 전제해야 하는데 그 '진실'이 내게 더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어서였을까.

둘째, '소통'이라는 단어, '문제해결'이라는 단어. 그러한 단어는 꼭 '회사의 조직관리, 성과관리'에서만 중요한 단어인건가? 도대체 왜? 그에 대한 내 오늘까지의 결론은 이렇다. (내일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고, 왜 그래야하는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나보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지금의 이 상실조차 '그럴 수밖에 없던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시간에 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유를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당분간은 직면해볼 생각이다. 그 모든 것이 다 납득이 되고 아무런 추가적인 질문이 하나도 없을 때 내 마음도 평온해지겠지. 그러다 언젠가, '다 그렇게 될 운명이었어요. 이상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라고 편하게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

** 여하튼 오늘 하루도 염려보다 잘 지나갔다. 무더위가 조금은 천천히 오길. 아마 4일차에도 그렇게 덥지 않다면 훨씬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거다.


4일차 ㅣ정리하고 규정해야 할 시간

정리..의 시간이 왔다.

정리, 결정, 명확성에 대한 집착 VS 당연한 수순

6월말까지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오늘 하루종일 분주했는데 막상 내일이 정말로 한해의 절반을 보내주어야 하는 날임을 방금에서야 알았다. 매주 말에는 한주를, 매달 말에는 한달을, 그리고 매분기말에는 그 분기를 정리하고 기록하는데, 심지어 내일은 반기를 정리해야 하는 날이라니..


갑자기 궁금해서 '정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정리(整理)
1. (명사)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2. (명사)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3. (명사)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음.

흠....결국 이번 달에 1번과 3번을 한 건데....


오늘 뭔가를 찾을 일이 있어 나의 예전 글들이 잔뜩 포스팅된 네이버 블로그를 간만에 다시 찾았고, 4월초에 쓴 글이 메인에 걸려 있었다. 아래 문구는 내가 4월에 쓴 글인데, '결정 및 정리, 명확성'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내려놓자고 썼었구나.


그놈의 직업병으로 인한 '결정과 정리 및 명확성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내려놓고
관계에 있어서도 다름을 인정하게 된 것도 나의 현재의 모습이기도 해.

결국 이번의 일은 정리, 결정, 명확성에 대한 집착이었나, 아니면 당연한 수순이었나


내가 이 결정에 이르기까지 매순간 현명했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몇번의 선명한 순간이 기억이 나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시간들이다. (하지만 후회하려다가 그러지 않기로 한다. 감정적 폭발이 결국은 솔직함을 끌어내기도 한다, 라고 생각히기로 한다. 그저 매순간 '짧고 이성적이며 아름다운' 말들만으로는 감정을 솔직히 다 내보일 수 없으니까, 라고 나는 또 생각하기로 한다. 적어도 오늘은)


** 내일은 돌아보고 정리하는 날이다. 지난 한주를, 한달을, 3개월을 그리고 6개월을 돌아보기로 한다. '감정적'인 시간이 이제 거의 끝났고 이제 '이성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생각하는 것보니, 역시나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음을 다시 느낀다.


5일차 ㅣ 이제는 하느님의 시간표에 맡기는 것으로


하느님의 시간표

올해의 반이 지났다. 벌써? 시간은 어찌나 빠른지. 시간은 모든 건 무력화시킬까? 과연 그럴까? 이 글을 시작할 때, 폭풍같은 시간을 지나 이제는 쓰러진 마음의 기둥도 세워야 하고, 젖은 바닥도 말려야 하는 시기라고 이 시기를 규정했는데, 정말 조금은 평온함이라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처럼.

오늘 슬로우조깅을 할 수 있었고, 다음 주에 들을 음악을 찾느라 꽤 즐거운 검색의 시간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인스타에 @KeepWhatMovesMe 오픈한 것이 스스로에게 꽤나 큰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맘속에서는 여전한 아픔이 있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들에 대한 이해와 받아들임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하느님이 (아, 정말 또다시 찾게 되는 하느님^^;;)이 어떤 시간표를 가지고 있지 않으실까? 어떤 것을 시작되게 하기도 하고 마무리짓게도 하는 것에 관한 시간표. 그러니 그 시간표에 따르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것의 시작과 끝에 있어서 너는 매순간 최선을 다했는가?'

그것에 관한 내 대답은 이러하다.

'몇몇 선명하게 남아 있는 후회되는 부분이 있어 그것이 나를 너무도 과롭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순간 솔직했고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는데요' (적어도 오늘 기준에서)


그럼 이제 나머지는 정말로 하느님에게 맡기기로.

이제는 하느님에게 맡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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