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무엇을 강렬히 좋아하고 있나요?

엘비스 프레슬리를 사랑한 할머니 & 그리고 내 이야기를 시작한 나

by KeepWhatMovesMe


당신은 지금, 무엇을 그렇게 좋아하고 있나요?


누군가를 미치게 좋아하면 삶이 달라진다. 엘비스를 사랑했던 할머니를 만나고, 나는 '강렬히 좋아하는 것'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 깨달았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그렇게 좋아하고 있나요?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의 '최프로님' 또는 '파트장님'만이 내 전부가 아니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에는 여기까지 오게 되긴 했는데, 결국 그것이 가능하게 된 계기는 이 믿음 때문이었다. "많이 좋아한다면 가능해. 내가 하고 싶은 그 이야기. 정말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나는 결국은 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내 삶을 통털어서 이 믿음은 한번도 틀린 적 없으니, 이번에도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시작이었다.


사실 난 누구보다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왜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에만 치중했었을까? 좀 더 일찍 창작에 욕심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향유는 진짜 제대로 했다. 엄청난 책을 읽고나서는 나의 뇌와 심장도 이렇게나 빨리 뛸 수 있는 거였나 싶었다. '나 살아있다고(I'm alive)'. 내 신체가 먼저 반응했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쏟아내는 첫번째 문장은 늘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 써냈지?"를 기본형으로 하고 그다음은 사실상 거의 같은 뜻의 사소한 변형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하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책이?" 음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에서 위대한 컨텐츠를 접하고나서의 반응은 거의 십년째 똑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수백건의 컨텐츠 앞에서 수백번 쏟아냈을 이 문장 '도대체 어떻게 이런게 나온거지"은 이제와서 생각하니 좀 부끄러웠다. '어떻게'라는 아주 중요한 부사가 들어갔지만 한번도 '어떻게'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저 문장은 내게, 창작자가 이렇게나 멋진 창작물을 생산해내기까지의 '어떻게(How-to)'를 진지하게 알고 싶다는 문장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걸 써냈지?'는 그냥 아무 뜻 없는 감탄사였고, 실은 '대단하다'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창작자들이 그렇게 하기까지의 지난한 노력, 치밀한 전략, 자신만의 노하우에 한두번은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그저 '대단하다'' 천재인가?'가 나의 1차적 반응이었다.


결국은 강렬히 쓰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다 때가 있는 거다라고 자위하련다. 이 정도의 자기위안은 괜찮지 싶다. 사실 일찍부터 '어떻게'에 제대로 집중했다 하더라도, '쓰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좋아하는 게 있어야 하고), 쌓인 게 있어야 한다. 정말 강력히 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생산과 창작은 그때부터 새벽의 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관점이 분명하고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하면, 폴더를 옮기고 폴더를 합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자극이 된 책이기도 한 서민규 님(브런치 작가이기도 했다)의 <컨텐츠 가드닝>에서는 그저 소비만 하던 사람이 생산해 내는 사람으로 변화하기가지 필요한 7가지 습관이 잘 개념화되어 있다. '생각습관-기록습관-정리습관-통제습관-실행습관-개선습관-생산습관'이 그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어떤 무언가를 강렬히 좋아하면 그것을 생산해내기 위한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전에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즉, 이것은 습관을 만들기 전에, 쓰고 싶은 강렬한 대상의 존재에 관한 얘기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제대로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리다.

사실 나 역시도 선망만 하고, 보다 적극적인 생산에의 기웃거림이 적었다고 자아비판을 했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자아도취를 약간 하자면, 나는 선망을 아주 제대로 했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많았고,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좋아하면 아주 집요하게 좋아했다. 하루키를 좋아하면 하루키가 국내에 발간한 모든 책을 사서 내 서재의 오른쪽 한 켠에 '하루키 특별관'을 만들었다. <1Q84>에 나오는 아름다운 표현을 모두 필사하겠다며 엑셀에 시트를 만들어 주말마다 그것을 적으며 황홀해했다. <노동의 종말><육식의 종말> 그리고 명저<유러피안 드림>을 쓴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도 내 서재에 특별관을 허여받았다. 한때 그에게 너무 빠져서 그의 책에 나오는 모든 개념을 시대별로 또는 문화권별로 정리하여 거대한 표로 만들겠다며 덤벼든 적도 있었다. 모두 누군가를 아주 제대로 좋아했으니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렬히 좋아하면, 왠만하면 축적하게 된다. 엘비스 할머니처럼!!!

대학 때 기회가 닿아서 미국에 6개월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마지막 2개월은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라는 해변도시에 있었다. 돈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그 천혜의 자연환경을 제대로 못 누린 게 지금도 너무나 아쉬운 그 아름다웠던 도시. 그리고 그 도시는 또 하나를 더 남겼는데 그것은 '엘비스를 사랑하는 어느 할머니'였다.


20250723_220901.png 홈스테이 주인 할머니의 사랑, 엘비스 프레슬리

내 일본친구가 거주하고 있었던 홈스테이집의 주인할머니는 10대부터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라고 했다. 그 일본친구가 거주하던 2층의 방은 할머니가 몇 십년 동안 수집한 엘비스에 관한 소장품들로 가득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엘비스 벽지를 시작으로 엘비스 커튼, 엘비스 이불, 엘비스 침대커버까지 모든 것이 엘비스에 관한 것이었다. 심지어 욕실의 변기커버와 욕조에까지 `능글능글한' 엘비스의 미소가 찍혀 있는 바람에 욕실에 들어간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엘비스에게 모든 걸 `보여주어야만(?)' 입욕이 허락되었다! 정말 그 방은 한 마디로 `할머니에 의한, 엘비스를 위한, 엘비스의 방' 이었다. 심지어 주차장 표지판에는 'Don't Park here except Elvis's car(엘비스의 차가 아니라면 주차는 불가합니다)라는 센스 터지는 문구가 박혀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뉴옥에 사는 할머니의 따님이 방문했는데 뉴옥에 있는 엘비스 샵에서 발견한 것이라며 엘비스의 구렛나루가 선명한 여행용 캐리어를 할머니에게 선물했다. 김정운 작가님의 세계관에 따르면 할머니는 엘비스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편집한 것을 넘어서서, 아예 엘비스가 없는 이 세상에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했던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 제일 중요한 것, 할머니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살면서 내가 본 세상의 모든 할머니 중에서 말이다. 그저 소비만 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좋아하고 축척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여유와 행복이었다.


쿠리오소가 되면 된다.

스페인어로 호기심이라는 단어는 ‘쿠리오시다드’(curiosidad)'다. 17세기에 간행된 <코바루비아스 스페인어 어원 사전>에 따르면 '쿠리오소’(curioso)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쿠리오소’(curioso)는 무엇인가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으면서 성실하게 다루는 사람이다. 이 사전에서는 쿠리오소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호기심을 가진 것에 대해서 무엇이든 성실히 다룬다. 비록 그 탐구와 호기심과 열정의 대상이 대부분 잘 드러나지 않고 감춰진 것들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라 하러라도 이들은 필요이상으로 면밀히 다룬다.


쓸 수 있는 이유가 분명하고, 쓰고 싶은 존재가 분명하면 결국은 쓰게 되더라.
쓸 수 있는 이유는 절박할수록 좋고, 쓰고 싶은 것은 강렬할수록 좋다.
미치게 좋거나 미치게 분노하는 내 감정을 그냥 소비하거나 망각하려 하지 말고
그 강렬한 감정에 쿠리오소가 되면 된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 인생을 하나의 테마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매력적인 누군가들

- 음악에 관한 모든 것

-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좋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구조화하고 체계화하는 것

-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매일 발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내 감각을 Sensual하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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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현재, 나를 쿠리오소가 되게 하는 것들이고

내가 이곳에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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