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음악에 이다지도 끌리는 걸까? & 나를 찾아가는 질문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인가요?
전 종교가 없지만, '음악'이 제 종교일 수도 있겠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왜 어떤 노래는 내 마음을 이렇게도 흔드는지, 그 해답을 찾아가는 내 취향 분석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종교를 물어봐주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았을 때를 위해, 늘 두 가지 대답을 마음속에 준비해둔다. 하나는 이것이다. “저는 종교가 없어요.” 당연하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그저 믿으라'라는 말만 있지 내게 증거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적어도 종교는 나에게 그러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직접 말해본 적은 없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대답은 이거다. '제겐 음악이 종교입니다' 종교의 본질이, 시간 속에서 버텨온 영속성과, 고통 속에서의 구원의 실현, 그리고 내 삶 전체에 함께하는 동반자로서의 특징이 본질이라면 그 모든 속성은 실은 '종교'가 아니라 '음악'이 내게 보여준 것들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음악을 더 많이, 깊이 좋아하며 살아오면서 늘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왜 이 음악을 좋아하는가?’ ‘왜 이 노래에서 이다지도 가슴이 뛰는 걸까?’ 그걸 단순히 ‘취향이에요’라고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음악과, 그 음악을 듣는 나 자신을 끝까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에야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 아주 경이로운 책을 만났다. 버클리 음대의 심리음향학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수전 로저스의 책, 《당신의 음악 취향은》이라는 책이다. (원제: This Is What It Sounds Like)
책 표지만 보면 인기 있는 노래의 법칙이라도 알려줄 것 같지만, 진짜 핵심은 이 한 문장 안에 있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멈춰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단순히 ‘잘나가는 노래의 비밀’을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으로 안내하는 책이었다. 책 곳곳에는 수백 곡의 대중음악이 인용되어 있다. 나는 그 노래들을 하나하나 뮤직 스트리밍 앱에서 찾아 들으며, 지난 한 달을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청취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음악에서 무엇을 듣고, 무엇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무엇을 선호하는지를 설명하는 개인의 고유한 청취 경향성'이 그것이다. 작가인 Susan Rogers는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단순히 “좋다” “별로다”가 아니라,
각자가 음악에서 다르게 듣고, 다르게 느끼는 청취 성향이 있다고 보았다. 이걸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경험적 근거로 분석한 것이 ‘청취 프로필’이다.
✔ 멜로디 – 선율의 아름다움이나 흐름에 반응하는 것
✔ 가사 – 단어, 이야기, 메시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 리듬 – 그루브, 템포, 비트 중심으로 반응하는 것
✔ 음색(톤 컬러) – 사운드의 질감이나 색채를 중시하는 것
✔ 참신성(Novelty) – 익숙하지 않은 시도나 신선한 구조에 반응하는 것
✔ 사실성(Realism) – 실제 감정처럼 들리는 연주나 보컬에 감동하는 것
✔ 진정성(Authenticity) – 위선이 없는, 진심이 느껴지는 음악을 중시하는 것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음악적 취향의 패턴’을 갖고 있고, 이 패턴은 우리가 무엇에 귀 기울이고, 무엇에서 감동받으며, 왜 특정 음악에 빠지는지를 설명해준다. 저자인 Susan Rogers는 바로 이 청취 패턴의 조합이 각자의 “청취 프로필”이라고 보았고, 그건 성격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지도라고 말한다.
그저 '멋지다' '너무 내 취향인데'라는 짧은 감탄사로 기억되지 않고 음악 각각이 어떤 요소로 인해 나와 조우했는지 분석하는 과정은 너무나 행복한 과정이었다. 내 음악 프로필이지만, 이것과 공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다.
나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에 끌리는 편이다.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멜로디보다, 감정의 여운을 남기는 선율을 선호하는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내가 특히 '엘가'나 '포레'의 음악 중에서 합창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유려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특히 반응하는 나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추천곡)
에드워드 엘가의 ‘The Snow’
https://youtu.be/zTLlnOf-Ftk?si=ZlkNmW4kdOtbzEyt
직설적인 가사의 효용을 알지만, 시적인 표현, 은유, 애틋함, 사랑과 상실의 미묘한 감정선이 담긴 가사에 깊이 공감하는 편이다. 아울러 사회적으로는 소리내서 말할 수 없는 내적인 자기 고백이 담긴 노래를 좋하한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이런 스스로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극복하는 가사를 좋아한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므로 그러하다. 그래 그렇다. 결국 가장 나를 나답게 하는 곡과 사랑에 빠진다.
(추천곡)
책에서도 언급된 곡인데 Beach boys “In my room”
https://youtu.be/-b5WsEDZvsE?si=FRjJMyt-zhRNmwR2
There's a world where I can go and tell my secrets to
내가 가서 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세상이 있어
In my room, in my room
내 방에서, 내 방에서
In this world I lock out all my worries and my fears
이 세상에선,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닫아걸 수 있어
In my room, in my room
내 방에서, 내 방에서
Do my dreaming and my scheming
내 꿈을 꾸고, 내 계획을 세우는 곳
Lie awake and pray
잠들지 못하고 누워 기도하기도 하고
Do my crying and my sighing
울고, 한숨 쉬는 곳
Laugh at yesterday
어제의 일들을 웃어넘기기도 해
Now it's dark and I'm alone
이제는 어둡고, 나 혼자지만
But I won't be afraid
두렵진 않아
In my room, in my room
내 방에서는, 내 방에서는
댄스 비트를 좋아하기 보다는, 속도감 있고 상승감이 있는 리듬에 끌린다. 이 부분은 특히 나의 고유한 음악적 선호지점이기도 한데 몽환적인 곡 속에서도 은근히 흐르는 리듬이 있을 때 더 몰입된다.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에서도 리듬이 살아있는 곡을 선호한다.
(추천곡)
Tame Impala “New Person, Same Old Mistakes” (Lihanna가 리메이크한 곡도 역시 좋긴 하지만 그래도 원곡을 듣자)
https://youtu.be/dK6Gvee-ri4?si=D2HKS9dadi6YB40k
내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소 중 하나. 허스키하거나 중성적인 보컬 톤, 안개처럼 퍼지는 신스 사운드, 빛바랜 듯한 기타의 잔향 등 특정한 질감이 있는 사운드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보컬은 중성적인 목소리다.
Air의 보컬 ‘장브누아 뒹켈’의 여성적 목소리
Cigarettes After Sex의 Greg Gonzalez 목소리(남성이지만 여성인가 싶은 목소리)
Fleetwood Mac의 스티비 닉스의 허스키한 목소리(아름답고 여성적인 목소리일 것 같지만 허스키해서 반전에서 오는 묘한 매력이 있는 목소리
(추천곡)
Cigarettes After Sex - K (Live)
https://youtu.be/dJFJfmYVZkg?si=bsoxsPqz4AwwDzxE
과장되거나 장중한 전개보다는 과장 없는 표현, 솔직한 감정,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이 담긴 음악에 깊이 반응하는 편이다.
(추천곡)
GD가 부른 포맨의 ‘Baby Baby”
https://youtu.be/-vvuhMmVBjM?si=JKSo0KehFoNP5Wr8
노래방 같은 곳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상 힙한 그. 그리고 그의 눈짓과 손짓만으로도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구애는 세상 쉬울 것 같은 우리의 GD.
하지만 노래방에서 ‘니가 너무 예쁘잖아, 니가 너무 고맙잖아’라고 부르는 이 모습은 스타 이전에 사랑이 고픈 그저 30대의 아름다운 젊음을 떠올리게 한다. 테크닉은 중요하지 않다. 진정성이다.
나 역시도, 구체적인 감정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한 노래에 공감한다. 완전히 픽션보다는 “이건 실제로 누가 겪었을 것 같아”라는 감각이 내게 중요하다. 위에서 설명한 <가사>라는 특성과 <진정성>과도 좀 겹치는 부분이 있긴 한데, 내가 직접 겪었던 그 감정을 돌이켜 주는 음악을 좋아한다.
(추천곡)
Fleetwood Mac "Silver Springs”
https://youtu.be/eDwi-8n054s?si=hrajWrglPWjjzMiv
Fleetwood Mac의 전설적인 여성보컬인 스티비 닉스(Stevie Nicks)는 역시나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과 10대 시절부터 음악적 동료이자 연인이었다. 밴드에 합류한 직후, 그들의 사랑과 이별, 감정의 복잡한 소용돌이는 밴드의 음악적 원천이 되었는데, 이 노래는 스티비 닉스가 린지와의 이별 후에도 완전히 놓지 못한 감정, 그리고 그가 언젠가는 자신을 놓친 것을 후회할 거라는 감정적 확신을 노래한 곡이다.
행복했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You could be my silver spring / Blue-green colors flashing" "넌 내 실버 스프링이 될 수도 있었어 / 파란빛과 초록빛이 반짝이는 곳"
이별 후 그녀는 결코 그가 행복했으면 한다고 거짓으로 말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못 잊을 거라고, 그리고 너를 괴롭힐 것이라고 말한다.
"Time cast a spell on you, but you won’t forget me""시간이 널 마법에 걸리게 했겠지만, 그래도 넌 날 잊지 못할 거야"
"I'll follow you down 'til the sound of my voice will haunt you""내 목소리가 널 따라가며 널 괴롭히게 될 거야”
익숙한 것보다는 새롭고 독특한 결에 당연히 끌린다. 특히 나는 일렉트로닉과 레트로, 드림팝의 접점을 탐색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비슷한 분위기의 곡들 중에서도 “이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오면, 결국 '이건 내 음악'이 된다.
(추천곡)
Tame Impala “Let it happen”
https://youtu.be/odeHP8N4LKc?si=iZlj1vp5iuD-QMwT
싸이키델릭 록, 일렉트로닉, 신스팝, 디스코까지 결합되었으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아주 매끈하게 들린다. 장르적으로 실험을 했는데도, 정서적으로는 일관된 느낌이 있다. 특히 흘러가는 대로 두자(Let it happen)'라는 가사 테마는, 마치 이곡의 통제되지 않는 흐름과도 묘한 일치를 느끼게 한다.
내가 듣는 것이 결국 나라고 했던가.
이 책을 통해서 분석해보면, 나는
아름다운 멜로디 / 내밀한 자기고백적 가사 / 속도감있고 상승감 있는 리듬 / 허스키하고 중성적인 보컬 톤에 빛바랜 듯한 기타의 잔향 / 진솔한 고백 / 이질적이고 상반된 경향의 장르간 결합에서 오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
결국 나는 이런 음악들에 마음이 움직이고 나답다고 느낀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그러하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늘상 마음이 쉽게 오르락거리고 / (실은) 내밀한 성향으로 늘상 세상 앞에서 긴장하고 /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속도와 에너지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며 / 늘상 이질적이고 상반된 경향의 복합적인 것에서 오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가슴이 뛰고 이를 해석하고자 하는 사람.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서..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음악과 사랑에 빠진다고 했는데...
매 순간 나를 찾아와
때로는 나를 추동시키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꺼내어 위로해준 음악—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그 음악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