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야기
7살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말했다. “바람은 바람끼리, 풀은 풀끼리 말하고 산데이~” 엄마는 내게 다정함으로 세상을 가르쳐주었고, 나는 꽤나 늦게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그저 엄마만은 아니었다.
어릴 적, 대구의 마당 있는 집. 엄마는 빨래를 하고 있었고, 나는 과자를 손에 쥔 채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세 계단만 오르면 우리 가족이 살던 방이 있었고, 그 방 안엔 갈색 장롱과 낡은 의자가 늘 같은 자리에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심심하지 않을까?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나: 엄마, 사람은 사람끼리 말하는데, 장롱이랑 의자는? 쟤들은 말 못하나?
엄마는 빨래하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엄마: 아니, 수영아, 사람 말고도 다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르는데 장농은 장농끼리, 의자는 의자끼리,그리고 바람은 바람끼리, 풀은 또 풀들하고 그렇게 서로 말하고 산데이~. 말안하고 살면 너무 외롭지~. 그렇게 다들 끼리끼리 얘기하고 산다 아이가~
우와, 그렇구나. 장농이나 의자도 안 심심하겠다.
사람만이 말하고 사는 세상이 아니라, 각자 그렇게, 주변의 모든 것들이 서로간에 이야기함으로써 심심하지 않게, 외롭지 않게 사는 세상. 난 세상이 좀 더 따듯하고 또 신기하게 보였다. 마당에 있던 세 개의 계단을 올라 방안으로 살금살금 걸어들어가 장농과 의자 근처로 갔다. 그것들은 내게 대화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배우면서, 나는 엄마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때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왠지 더 '위대하거나 멋진' 말인 것 같다고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고 인상적이라 그 날의 날씨, 그 집 마당의 구조, 우리 가족들이 살던 방의 가구모양, 의자 모양 모두 다 고스란히 기억해 낼 수 있다.
지식을 가르치지 않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건네준 나의 엄마. 금붕어 한 마리가 죽으면 아파트 1층의 화단에 묻고서는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노. 엄마가 밥을 잘 줬었는데 고마 하늘나라로 갔네…”라며 하루 종일 자책하던 사람.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날의 공기까지 기억나는 인상적인 장면은 더 있다. 내가 대학생 때였을까? 군대 간 내 첫사랑과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하고서 밥도 안 먹고 모든 걸 놔버리고 내 방에 누워 있었을 때였다. 저녁 장을 보고오겠다며 나갔다온 엄마의 인기척 소리가 들리고 곧 압력밥솥에서 나는 칙칙 소리. 그리고 내 방과 주방 사이의 창문 사이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좋아하는 예쁜 그릇에 밥이랑 국 담았는데 밥 한번 먹어볼래?
세상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풀죽어 있으면,
엄마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그렇지?
일어나서 밥먹자, 우와, 우리 수영이가 좋아하는 예쁜 그릇에 밥 담았어~
엄마가 수영이 줄려고 밥도 맛있게 했는데~"
나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던 예쁜 그릇에 담겨진 그 밥의 온기를 기억한다.
어제 간만에 대구에 가서 엄마를 뵈었다. 머리는 많이 빠지셨고, 주름은 깊어졌다. 엄마는 또 내 걱정이다. "①더위에 고생하지는 않은지 ②일은 많지 않은지 ③집에 반찬은 있는지' 라며 거의 1주일 단위로 내게 묻는 질문 3종 셋트를 어김없이 하셨고^^. 나 역시 언제나 똑같은 대답 ①덥지 뭐 ②일은 할만하지 뭐 ③ 밥은 잘 먹고 다녀, 로 대화는 이어졌고.
엄마는, 엄마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인데,
내 어린 시절에 장농과 의자에게조차 다정한 사람이었는데,
이 다정한 사람, 우리 엄마에게, 정작 다정한 존재들은 얼마나 있을까?
그녀가 베푼 다정함만큼, 누군가에게서 다정함을 되돌려 받고 계실까?
'최수영의 엄마'가 아니라, '그녀 김일순'의 삶은 어떤 풍경일까?
친구는 있을까?
자식도 남편도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고 계실까?
아주 오래전 본 노희경의 <유행가가 되리>라는 드라마에 대한 기억이 있다. 드라마 속에서 나같은 딸을 둔 엄마는 아마 지금의 내 엄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였던 것 같다. 감수성 어린 소녀와 다를 바 없이 자동차 정비소의 멋진 미남을 훔쳐보고, 손을 잡는 상상을 하고, 사랑고백을 받는 상상을 하는 '가슴이 분홍색일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즉, 그녀는 '소녀'이기도 햇고, '여자'였고, 또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과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엄마도 그러지 않을까? 혼자 TV를 보며 조용히 누군가를 상상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고 계시진 않을까.
돌아오는 KTX 열차 안에서 엄마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했다. 그녀는 '바람은 바람끼리, 풀은 풀끼리 대화한다'는 잊을 수 없는 말을 내게 남겼던 사람이었다. 금붕어의 죽음에 슬퍼하던, 너무도 감성적인 사람이었고, 이별의 아픔에 허우적대던 내게 가장 다정한 방법으로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야 진심으로 다짐한다. 엄마를 단지 ‘엄마’로만 기억하지 않겠다고. ‘그녀, 김일순’이라는 이름으로 대하겠다고. 한 사람의 마음, 한 사람의 얼굴로 더 자주, 더 오래 바라보겠다고.
삶의 무게 속에서도 다정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람. 이제는 그 다정함이, 그녀에게 돌아가기를. 앞으로 나는, 엄마라는 이름 너머의 그녀에게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그러하듯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자주, 사랑과 다정함을 건네주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대하다는 미사여구로 그저 '엄마'라는 이름에 가두지 않고
단 하나의 이름을 가진 사람—
그녀의 이름, 김일순을 더 자주, 더 오래 불러드리고자 한다.
P.S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엄마는 그저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저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