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대 없는 삶을 통해서 충만해질 수 있을까?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다'
요즘 내 일기장에 가장 자주 적히는 문장이야.
올해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매달 초가 되면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매달 말이 되면 거의 대부분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기는 하니까. 어찌보면 남들 눈에 '생산성 극대화'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어. 물론 나는, 꿈에 다가가기 위한 실험이나 노력을 이것저것 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야.
그래, 이렇게 꿈을 향해서 이것저것 실험을 하면 충만하고 행복해야 하잖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우는 만큼 허무함 같은 감정도 따라왔어. 당황했지. 8월 한 달 동안 내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어. 쇼펜하우어의 말을 발견했을 때 정말 충격이었거든. 내가 정말로 그렇게 살고 있었던 거야. 결핍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나면, 이제 권태로움이 등장하고, 그 권태로움을 이겨내려고 또다시 노력하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성취의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고통 또는 어려움'에 가까운 순간을 더 많이 겪고 있더라.
난 항상 이미 가진 것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마음이 가 있어. 눈이 늘 '미래'에 가 있는 거지. 평생동안 나를 보아 온 우리 언니가 내게 늘 자주 하는 말이야 '넌 너무 이상주의야'. 운동을 시작하면 완벽한 몸을 가진 누군가의 사진을 붙여놓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거든. 동경하는 누군가가 생기면 그 다음 나의 질문은 늘 같았어.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난 무엇을 해야하지?' 그때부터 나는 현재의 나와, 다가가고 싶은 대상과의 간극에만 집중해. 내 끝은 그 대상이어야 했거든.
이상주의
현실보다 이상(理想)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믿음과 추구
현실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성향
순수하고 고결한 가치들을 추구하려는 마음
나는 왜 이렇게 이상주의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이것도 어렸을 때 음악이 내게 다가왔던 방식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사춘기 내게 음악은 더 뛰어나고 독특한 세계를 탐미하는 사람들을 동경하게 해 주었어. 그냥 단순히 '좋다'가 아니었거든.
동경
-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하여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마음
- 단,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른, 저 멀리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
-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 그것이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좋을 것이라는 확신
- 간절함: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절실한 그리움
- 닿을 수 없음: 쉽게 가질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해지는 마음
- 60년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를 보면서 반항적이고 거친 그들이 해체 없이(믹 재거의 다리가 저렇게 가늘어질 때까지도(!!!)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는 스트레이트함과 일관성이 좋았어.
- 70년대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보면서 락음악 안에 다양한 스타일의 실험을 녹여내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면서 무대를 뛰어다니는 그에게 반했지. 주류 락음악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튀는 이국적 외모와 뻐드렁니도 그 어떤 제약이 되지 않는다는 게 경이로웠거든.
- 80년대 지저스 앤 메리체인(Jesus and Mary Chain)을 보면서는 거칠고 노이즈 가득한 사운드에도 달콤함과 서정성이 조화될 수 있음을 알았어. 양면적인 것이 가장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걸 이들을 통해 배웠지.
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신념과 세계관을 끝까지 밀어붙인 존재로 내게 다가왔어. 물론 일반론의 오류일 수도 있어. 어쩌면 운이 더 컸을 수도 있고, 어쩌다 만든 음악이 그 시대 대중과 불꽃이 튄 것일 수도 있을거야. 하지만 나는 그들의 뚜렷한 추구와 그 결과물에 무척 심취했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저런 일관되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동경이 심어진 것 같아.
그리고 음악은 현실과 달리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질서 잡힌 세계를 만들어 줘. 교향곡의 구조, 성가의 조화, 록의 절정... 이런 순간들이 "불완전한 현실에도 완벽은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해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하지만 슬프게도 내 삶은 늘 그렇지 않은 것 같고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자괴감 같은 것도 항상 느꼈던 것 같아. 정말 꿈도 크지? 저렇게나 엄청난 아티스트와 내 삶을 비교하다니 말이야. 그러니 항상 나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더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늘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
1991년 11월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던 버스 안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시작됐어. 그런데 오프닝 곡이 Killer Queen이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퀸의 노래지만 평소 국내 라디오에서는 거의 틀어주지 않는 곡이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 '뭔가 있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프레디 머큐리 사망 소식이었어.
버스에서 내려 집에 와서까지도 정말 많이 울었어. 엄마는 딸아이가 이름도 생소한 외국 가수 때문에 우는 걸 보고 어리둥절해했지. AIDS의 공포가 크던 시절이라 그의 죽음보다 병명이 더 크게 다뤄지고 있었어.
다음 날 학교에서도 온통 AIDS 얘기뿐이었어. 프레디가 어떤 위대한 아티스트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 "그저 문란한 성관계의 결과로 죽었을 뿐"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애도 있었지. 난 마치 프레디의 대변인이라도 된 양, 몇번의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하지만 보이지 않는 주먹을 꼭쥐고 조용히 말했어. "니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돼. 그 사람은 위대한 음악을 남긴 훌륭한 가수야."
그때 내가 울었던 건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던 것 같아. '위대한 것이 이렇게 쉽게 폄하될 수 있구나'라는 불의에 대한 분노였어. 왜 사람들은 그의 위대한 음악과 성취보다 가쉽에 치중해서 함부러 말을 하는 걸까?
그때부터인 것 같아.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아티스트의 뛰어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해석하고, 그걸 어떻게 느꼈는지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졌어.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 성향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 그다지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가 아닌 이상, 어제 뭘 했는지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며 밥 먹는 대화가 난 그렇게 재밌거나 의미있게 느껴지지 않아.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회사에 와서도 그렇더라구.
그런데 말이야, 요즘 들어 그 동경과 이상주의가 나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브런치에도 몇 번 썼지만, 난 이미 가진 것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늘 마음이 가 있거든.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늘 더 나은 상태를 상상하면서 그곳에 도달하려고 애써.
물론 이런 성향이 나쁜 건 아님을 나도 잘 알고 있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도 되고, 자기 성장을 멈추지 않는 힘도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기쁨을 충분히 느끼기보다 늘 '다음'에만 몰두하게 된다는 거야. 그러다 보니 평정심이 자꾸 흔들리고, 감정의 진폭도 커지고. 그러면 또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음악을 찾게 돼. 그래서 어쩌면 내가 음악을 통한 감각적 위로로 도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더 해야 한다'는 강박, 현실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늘 이상과 비교해서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조금 달라져야 할 때인 것 같아. 예전에는 이상주의가 '채워야 하는 동력'이었다면, 이제는 그걸 좀 더 가볍게 품으면서 평정심과 감사함으로 균형을 맞춰야 할 것 같아. '나는 완벽해야 한다'에서 '나는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의미 있다'로, '더 큰 걸 해야 한다'에서 '오늘의 작은 기쁨도 내 이상을 이루는 과정이다'로 말이야.
인생이란 결국 고통과 권태의 진자 사이를 오가는 일이라고 쇼펜하우어가 그랬어. 그 사이사이에 나는 고통을 잊기 위해 위로의 음악을 찾고,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격정의 음악을 찾아.
예전엔 그런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어. 내 삶이 왜 충만함과 기쁨으로 가득 차지 않는지 늘 의문이었거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질문 자체를 그만두려고 해.
인생은 특별한 무엇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그냥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삶의 한가운데 있을 뿐이야. 그 사이 틈새마다 스며드는 소소한 기쁨이나 피어나는 즐거움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권태를 비집고 힘들게 찾아와 준 선물인 거지. 그러니 감사해도 모자랄 일이고.
가장 절망적으로 들리는 이 말이 오히려 삶의 작은 기쁨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해석을 가져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매순간 이 말을 떠올리는 실험을 해볼려고 해.
인생에 거창한 의미나 희망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고통과 권태 뿐이라고 말하는, 인생에 대한 냉정한 선언 같은 저 말이 역설적으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정심'이나 '충만함'을 조금이라도 늘려가게 해 줄 지 지켜보는 실험을 말이야
항상 인생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다가 지친 내가,
가장 기대 없는 삶을 통해서 가장 충만한 삶이 살아지는지,
인생에서 어쩌면 처음 해보는 실험을 말이야.
///기억의 플레이리스트///
Queen의 Killer Queen을 듣자.
역시나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Freddie Mercury의 보컬과 피아노 연주.
다시 봤는데, 이런 뮤지션을 보고 동경하지 않을 수 없고 이상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https://youtu.be/VOgR4pcYl1k?si=z18mh1ED0bJdpPcG&t=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