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다.

서로에게 다정하고 관심 많던 20대의 저에게 결코 지고 싶지 않아서

by KeepWhatMovesMe

오늘, 당신은 주변 사람에게 “요즘 어때?”라고 먼저 물어본 적이 있나요?

키아누 리브스의 말처럼, 우리를 진짜 추억해주는 건 “내가 아닌 남겨진 그들”일지 모릅니다.

사소한 관심과 솔직한 애정 표현이, 한 사람의 하루를 기적처럼 따뜻하게 바꿀 수 있다는 걸 믿어요.


오늘은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미국에 있는 J선배와 대화한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이상하게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화면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글이 잘 써지거든요.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J 선배, 혹시 이 동영상 봤어요?

https://youtube.com/shorts/hhdndxYlrHA?si=hX9Lp2wjkRYxiJxB

키아누 리브스가 2019년도에 CBS의 한 토크쇼에 나와 사회자와 나눈 이야기인데
인터넷에서 꽤 회자가 됐어요


사회자: 죽으면 사람들은(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키아누 리브스: 글쎄, 음, 우리가 죽으면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워할 거라는 건 알아요


저 질문을 제가 받았다면, 제가 하는 말의 시작은 아마도 '나..' 였을 거에요. 세상에 아름답고 멋진 것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된 아쉬움을 이야기했을 것 같아요. '나'에 매몰되어 있죠.
그런데 키아누의 대답은 놀라워요.

'떠나는 나'가 아니라, '남겨진 그들'을 먼저 떠올렸어요. 그들이 아파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결국은 우리를 잊지 않고, 우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하며, 우리의 연결을 이야기해요.


선배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무엇이 선배를 기쁘게 하고, 혹은 어떤 것이 선배를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나요?


저는 요즘 이성VS감성(감정), 절제V표현, 나VS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지금의 회사를 다니면서는 '이성'과 '절제'를 더 강화해온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리더가 되면서는 오히려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더 나은 판단을 위해서는 '이성'과 '숫자'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것이 맞고(다른 것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강요받고), 어떤 누군가에게 쉽사리 좋음과 싫음을 표현했다가는 이상한 오해에 휩싸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감정 표현에 있어서 '절제'를 미덕으로 삼기도 했고요. 회사라는 세상에 '나'의 세상을 괜히 보여줬다가 '나의 다름'이 인구에 회자도는 것이 싫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제 MBTI인 'INTJ'를 방패삼아 살았다고 요약되기도 하네요.


신뢰와 애정은 솔직히 표현되어야 하고, 그것은 절제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있다

지금은 이 조직을 떠나셨지만 작년까지 제가 있던 조직의 수장으로 계셨던 부사장 직급의 분이 있었어요. W님. 제가 참으로 좋아하고 존경했던 분인데,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었던 분이었어요. 우리 회사같이 극단의 이성만이 존중받는 이곳에서 특이한 분이셨죠. 격정적으로 화도 내고, 질책도 많이 하고, 때로 쓰라리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분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의 감정 표현은 너무나 솔직했습니다. 뒷끝도 없었죠. 따가운 질책만큼 뜨거운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내가 그 사람의 관심과 애정 속에 있구나를 확연히 느낄 수 있도록 솔직히 표현해주셨어요. 그것이 가져오는 역효과가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리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은 제가 담당하는 조직에 어떤 문제가 생겼고 그로 인해서 제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자리였는데, 긴장한 채 그분과 대면하는 자리에서 그 분의 첫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수영님 좋아하는 거 알죠?, 저는 수영님을 100% 믿습니다'라는 말로 그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어떤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던 터라, 누군가로부터 믿음과 신뢰가 너무 절실하던 차에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터져나올 뻔 했지만 모든 것이 상쇄되는 느낌이더라구요. 그때도 느꼈어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솔직히 표현되어야 하고, 그것은 절제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요.


인간의 선함은 여유에서, 무심함은 바쁨에서

선배, 적어도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다정하고 관계지향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나'에게만 빠져 있는 사람으로는 절대 살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죠. 어제 본 동영상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그러더라구요. 인간의 선함은 여유에서 나온다고. 결국 거꾸로 이야기하면 '무심함'은 '바쁨'에서 나온다는거잖아요.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선배, 저는 이런 깨달음 때문에 5월에는 의식적으로라도 더 많이 애정하고 더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결과가 참으로 뽀송뽀송하고 온기가 있어요.

첫째,

선배도 받았겠지만, 제가 예전에 쓴 블로그에서 우연히 2007년에 쓴 글을 찾았잖아요.


이 글을 우연히 찾고 나서 저 글을 후배 M에게 보냈더니 M이 이렇게 답이 왔어요.

"우리 주변에 있는 저런 반짝이는 사람들 덕분에, 제가 좀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런 순간을 기억해주는 선배도 너무 소중한 존재에요"

이 말 너무 다정하고 예쁘죠?


둘째,

그리고 선배, 이번에 우리 친언니가 선배에게 미국 중고등학교 교재 관련하여 부탁할 일이 있다고, 저를 통해서 선배에게 연락했을 때, 선배가 해준 다정한 말을 언니 통해서 들었어요

선배가 저희 언니에게 전하면서 "내가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수영이의 언니~ 안녕하세요!' 라고 시작되는 답장을 받았다고 언니가 제게 전해주었어요.
과장 없이 한 일주일 동안 들었던 여러가지 말들 중에서 가장 기분이 좋았어요.


셋째,

다정함과, 솔직한 애정 표현의 힘은 더 있어요. 제가 요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는데 저의 PT 선생님이 몸소 보여주고 계시죠. "안녕하세요, 회원님"으로 시작하는게 보통인 이 세계에서 이 선생님은 약간의 허스키한 목소리임에도 저를 만나면 항상 최대한의 하이톤으로 "수영님~~~" 이라고 부르고, "오늘은 뭐했어요?" "내일은 뭐하실거에요"라고 진심어린 관심을 보여줍니다. 저랑 워낙 취향이 잘 맞기도 하지만, 어제 운동이 끝나고 마지막 인사는 "수영님! 저는 수영님과의 운동 시간이 항상 너무 기다려지고 즐거워요" 라고 얘기하더라구요 (참고로 여자선생님입니다~) 어찌 이 시간이 즐겁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고보니 생각나네요, 바이올린을 배우던, 운동을 배우던, 그게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잘 전수해주는 것 그 이상으로, 그 사람이 가진 본래의 매력과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던 다정한 사람이었음을 말이죠


회사 후배와 점심을 먹으며 그저 안부를 물었을 뿐이에요

선배,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 회사에서도 회사 후배 K에게 먼저 밥을 먹자고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일본 라멘집에 데려가서 대화를 시작했어요. "요즘 K님의 세상은 어때? 일도 일이지만, K님의 일상은 어때?'로 시작하는 대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일과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요즘 우리가 함께 개입되어 있던 어떤 프로젝트의 어려움에 대해서 함께 공감했답니다.

그리고 저도 솔직하게 요즘 저의 고민을 이야기했답니다. 평소에 제 어려움을 잘 이야기하지는 않은데, 그냥 얘기했어요. 지금 내 인생에서 어떤 순간보다 즐거운 것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일에 있어서는 나도 작년과 달라진 환경에서 오는 상황 때문에 약간의 흥미가 감소한 상태여서 이것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솔직한 얘기여서일까요?

퇴근하면서 후배 K에게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수영님이 너무 바쁘신 것 같아서,
제가 지금 맡고 있는 이 과제의 어려움을 따로 말씀 드리지 않았는데요.
오늘 라멘 먹으면서, 이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공감해주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진짜로 저는 오늘 너무 좋았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그리고 수영님이 항상 일만 하실 줄 알았는데,
일 말고 다른 즐겁게 새로 시작한 일을 말씀해주셔서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좋아할 것 같은 음식점을 찾고, 내가 아닌 그(녀)가 주어인 문장으로 너의 일상을 물어봐주고, 너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있다고 해준 것 뿐인데 이렇게나 큰 다정한 메시지를 받았어요. 너무나 충만한 느낌이었습니다.


작은 다정함의 실천이 결국 존재의 기쁨을 느끼게 하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한번 더 결심했어요. 적어도 제가 아끼는 사람에게,


첫째,

'내'가 주어가 아니라, '너'가 주어인 의문문으로 그 사람의 일상과 안위를 묻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둘째,

우리가 서로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임을 표현함에 있어서
'저는 표현을 잘 못해요' '저는 성향이 그래요' 이런 말을 방패 삼아 '무심함에조차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며 살겠다고 .


그리하여, 저는 그리고 솔직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구요.

저는 20대의 다정하고 감성 풍부하며 서로에게 관심 많던 저에게 결코 지고 싶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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