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와 경계를 넘어 음악이 가진 변화의 에너지
음악은 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젊은 연주자들이 고전을 패기와 찬란함으로 다시 해석하는 순간, 저 역시 내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습니다.
오래된 클래식이 우리에게 전하는 변화와 영감,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너, 요즘에 옛날 노래 많이 듣는다?" 라는 친구의 말에 "옛날 노래가 아니라, 그건 시간을 건너 온 음악이야" 라고 자주 말해요. 시간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잖아요. 영원할 것 같았던 것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만들고, 그 어떤 절대적인 것도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몇 백년을 견디어왔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요.
최근에 특히, 젊은 20~30대 연주자들이 새롭게 해석해내는 클래식 음악에 빠져 있어요. 그 중에서도 클래식의 사실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바로크 시대(1600~1750년, 비발디/바흐/헨델의 시대)의 음악이 이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면, 때로는 패기, 그리고 찬란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패기: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려는 굳센 기상이나 정신을 뜻하는 명사.
▷찬란함: 빛이 번쩍여서 눈부시게 아름다움
수백 년을 넘게 반복되며 연주되어온 고전이 이토록 패기 있게, 그리고 새로운 해석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 그 음악 안에 자신만의 색채를 더해 과거를 이어받되,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그들을 보며 저는 이상하게도 삶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클래식 연주는 결국 해석의 예술이거든요. 이미 세상을 떠난 작곡가가 남긴 악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연주의 결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그 연주를 듣고, 보고, 느끼면서 저는 자주 이런 다짐을 하곤 합니다.
나 역시, 내 인생과 세상을 그저 주어진 텍스트 그대로, 혹은 남이 해석해준 대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반드시 나만의 해석을 더해, 나만의 색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겠다고.
그래서 오늘은, 그런 양면성과 새로움을 가진 90년대생의 젊은 연주자 몇 명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이 아티스트는 리코더를 중심으로 한 고전 음악뿐만 아니라 현대 음악, 포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연주자입니다. 제가 이 연주자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 중 '시바 여왕의 도착(The Arrival of the Queen of Sheba)'을 연주한 바로 아래의 Youtube 동영상입니다. 또한 2019년 그녀가 발표한 <Baroque Journey>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고요.
https://youtu.be/_AJMrub11Lk?si=XzGP2CflClzCWsri
원래도 '시바 여왕의 도착'이 현악기로 시작되는 첫 부분부터 궁정의 화려함과 축제 분위기를 굉장히 잘 보여주는 곡이거든요. 생동감과 밝은 색채가 잘 느껴지는 곡입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리코더가 단지 부드럽고 소박한 악기가 아니라, 파워풀하면서도 청량한 소리를 가졌음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어요.
원래 '오보에'가 나오는 부분이 '리코더'로 대체되었는데, '오보에'는 이 곡 전체를 좀더 우아하게 만드는 '일조'한 느낌이었다면, 뤼시 호르슈와 또다른 여성이 함께 연주하는 2개의 리코더는 우아함 대신 패기와 청량함을 가져다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음 한음이 맑고 힘 있게 울리는 소리라서, 리코더라는 악기의 매력에 빠졌다고 할까? 몇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청량한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연주.
* 이 곡의 일반적인 연주를 들으려면 여기 참고
게다가 마치 음대 학생들이 교실에서 연주한 것을 그대로 찍은 것 같은 뮤직비디오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 오래된 헨델의 고전음악은 결코 고루한 음악회장이 아니라 이렇게 젊은 연주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고 발전되며 연주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참고로 최근에 낸 앨범 <Origins>(2022년)도 들어봤는데, 찰리 파커의 재즈,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도 리코더로 해석했는데, 진짜 패기있는 연주자라는 생각^^. 색다른 해석이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하프시코드야 말로 정말 바로크 시대 음악을 대표하는 고전 악기거든요. 고상하면서 우아한 악기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까요? 하얀 수염이 난 할아버지가 유럽의 어느 대성당에서 돋보기 안경을 끼고서 연주할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장 롱도라는 이 연주자는 이 영상에서 락 페스티발에서 막 건너온 것 같은 티셔츠를 입고 하프시코드를 연주해요. 아 물론~ 의상이 그러하다고 해서 음악조차 완전히 파격적이거나 그런 것을 추종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https://youtu.be/M33mfhQUJnM?si=mEg9xn0d39wqktWH
이 음악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인 '쿠프랭'의 '신비한 장벽'이라는 곡을 장 롱도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곡입니다. 이 곡은 일반적으로 피아노로 좀더 많이 연주되고 그 중에서도 좋은 곡이 많지만, 전 이 연주자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었을 때, 단번에 사로잡혔어요 고요함 속에도 울림이 있고, 몽환적이면서 사색적인 흐름이 있어서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하프시코드라는 이 고전 악기가 90년대생의 연주자를 만나서 모던함을 덧입었다고 할까요? 서정적이면도 절제미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장 롱도의 앨범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인 바흐, 장 필립 라모와 같은 작곡가의 음악을 그만의 현대적 감성으로 해석한 앨범들이 많습니다. 저는 바로크 음악을 들을 때는 항상 장 롱도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앨범은 없는지 가장 먼저 찾아보곤 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연주자는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흑인 음악가이기도 한 세쿠 카네 메이슨입니다. 2016년 BBC 영 뮤지션상을 수상했고 1978년 이 대회가 시작된 후 흑인 뮤지션으로는 최초로 우승했어요. 그리고 2018년 5월 19일 Harry 왕자와 Meghan Markle의 결혼식에서 첼로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이 연주자 역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인 바흐 음악을 연주한 것으로 소개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그의 정체성을 소개하기에는 다른 음악도 괜찮다 싶어요. 평화를 노래한 Bob Marley의 No Woman, No Cry를 그가 첼로로 연주한 곡입니다. 실제로 그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다음 글을 읽어보면 제가 왜 이 Bob Marley 음악을 추천했는지 이해하게 될 것 같아요.
https://youtu.be/_nVA-C_7064?si=QhPWO8uPXbn3WuNz
이 연주자는 현재 영국에서 각광받는 젊은 연주자이고 감성적이고 따뜻한 연주가 특징인데요. 저는 그의 섬세하고 따뜻한 연주도 좋았지만, 그의 행보가 좋았습니다. 영국의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흑인이라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일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예술을 통한 사회 기여, 교육에 대한 관심도 많고, 행동으로 보여주거든요. 그리고 용기 있어요. 저는 그의 행보를 응원하게 됩니다.
얼마전에 '룰 브리태니아' 논란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올바른 의견 표명에 대한, 국수주의자들의 잘못된 비난이었죠) ** '룰 브리타니아'에 관한 논란을 좀더 자세히 보려면 여기 참조
'룰 브리태니아'는 영국의 비공식적인 국가 상징곡인데 대영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곡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곡의 가사에 제국주의 및 인종차별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가 있어요. 이를테면 "Britons never, never, never will be slaves" 같은 부분.
사실 이 곡은 BBC의 연례 클래식 행사인 BBC Proms와도 관련이 깊어요.마지막 날 마지막 곡으로 그날 초청된 독창자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고, 실제 세쿠 카네 메이슨은 이 유명한 클래식 행사에서 각광받았던 사람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세쿠 카네 메이슨이 출연한 어떤 또다른 TV 쇼에서 질문을 받았어나봅니다. The Guardian지와의 인터뷰를 읽고 알게 됐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답니다. "페스티발 피날리에 '룰, 브리타니아!(Rule, Britannia!)'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 이 연주자는 조용하지만 망설임 없이 "아니요"라고 답했거든요. 이 일로 인해서 국수주의자 등이 SNS로 엄청나게 그를 향한 비난을 해댔었나 봅니다. 쾌 큰 사건이었던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그는 그의 길을 여전히 갑니다. <음악의 힘>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고,
예술 지원이 종료된 어떤 학교를 위해서, BBC 영 뮤지션 상금 3,000파운드를 학교의 첼로 레슨 운영에 기부하기도 했어요.
음악에 관한 그의 태도도 좋아요.
He relishes the fact that music is mutable, changing, liquid in his hands; the Elgar concerto, for example, is “never fixed in me … a restless, churning, growing thing”. He loves to draw and paint, he says, and takes a sketchbook with him on tour, using it “when other people would take out a book”. But when a drawing is done, it’s done, he says. Music is different. “I like the process of building something that you can’t see and you can’t preserve. And so, you have to constantly keep going further, further.” It is an act of love, of love that lasts a lifetime, and of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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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이 제 손 안에서 변하고, 변화하며, 유동적이라는 사실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엘가 협주곡은 내 안에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휘몰아치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투어에 스케치북을 챙겨 "다른 사람들이 책을 꺼낼 때"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림은 완성된 것이지만, 음악은 다릅니다. 저는 볼 수도 없고 보존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더 멀리, 더 멀리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행위, 평생 지속되는 사랑, 그리고 기쁨의 행위이다.
바흐와 헨델과 쿠프랭은 본인이 남긴 악보가, 3,4백년이 지나서도 이렇게나 다채롭게 해석되고 새롭게 재발견되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어쩌면 그들도 몰랐을 거에요. 하지만 그것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요?
한 번의 창조가 끝나고도,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빛을 얻고,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나게 되는 것.
가끔은 저 역시 엄청난 꿈을 꾸곤 해요. 내가 남긴 작은 무언가가, 언젠가 다른 누군가의 해석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