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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Aug 11. 2023

날씨만큼 주관적인 게 있을까?

”휴, 다행이다. 태풍이 생각보다 약하네. “


태풍이 다가온다는 뉴스가 며칠 전부터 들려왔다.

태풍 경로 사진을 봤다. 경남부터 ‘강’이라는 글자와 함께 서울로 가서 ‘약’이 되는 경로였다.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가끔 뉴스를 볼 때면, 서울공화국이라는 것을 느낀다. 지방의 피해보다 서울의 피해가 클 때는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온다. 반면, 지방의 피해가 클 땐 상대적으로 적다.


아이의 어린이집에서는 태풍이 오니 휴원을 결정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첫째의 학원들도 모두 휴원한다는 문자도 받았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책들에 사람들이 말한다.

“이래놓고 맨날 약하게 오던데.”


태풍이 무난히 지나가면 또 말한다.

“거봐, 생각보다 약했잖아.”


태풍은 바람의 강도에 따라 강, 약으로 나누고, 비는 강우량에 따라 호우주의, 호우경보를 정한다.


이렇게 보면 날씨는 마치 객관적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날씨처럼 주관적인 것도 없다.


나에게 아무 일도 없으면 약한 태풍,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강한 태풍.


별 것도 아닌 비바람에 ‘태풍‘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름까지 지어 태풍 카눈이라고 부른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당신이 오늘 무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겐 오늘은 가족을 잃은 날이었다.

그게 내가 아니었을 뿐.

누군가에겐 오늘

매일의 삶을 지켜준 지붕이 무너진 날이었다.

우리 집이 아니었을 뿐.


그들은 태풍 카눈을 어떤 날씨로 기억할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543551?sid=102



12월의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소복이 눈이 쌓이고 있었다.

눈을 밟는 소리, 느낌을 상상해 보며 거리를 나섰다.


그날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복이 쌓이는,

그런 따뜻한 눈이었다.


장을 보고 들어가는 길,

눈길에 미끄러진 차를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미동이 없던 누군가를 보았다.


사고였다.

끔찍한.


매년 눈이 내릴 때면 난 그날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겐 폭설이었을,

지독했을 눈.


날씨만큼 주관적인 게 있을까?
‘다행이다.’라는 말만큼
이기적인 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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