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꽂이하듯 각자의 매력을 뽐낼 수 있다면
30대 중반에도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이 있다.
가끔 SNS에서 예쁜 플라워샵에서 앞치마를 메고
꽃꽂이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들을 보곤 했다.
'꽃꽂이를 왜 돈 주고 하지? 어차피 시들어 버리는데...
게다가 돈 주고 왜 내가 꽃꽂이를 하지?
전문가가 해야 더 예쁠 텐데.'
뭐든 해보기 전에는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들께서 초대한 '꽃꽂이 원데이 클래스'에
가게 된 것이다.
나도 꽃바구니 들고 감성 사진 하나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꽃집에 들어섰다.
문 밖에서부터 코끝을 살짝 건드리는 꽃 향기들.
어두운 저녁, 거리에 따뜻한 조명이
각종 식물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꽃집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우선 꽃 종류를 설명해 드릴게요.
"이 아이는, 폼 플라워(Form Flower)에요. 개성적이고 형태가 특이해 시선을 단번에 끌 수 있죠. 가장 포인트를 줄 수 있는 꽃입니다."
"다음은 매스 플라워(Mass Flower)입니다. '덩어리 꽃'이에요. 많은 꽃잎들이 겹겹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꽃이고요. 낮게 꽃아서 안정감을 주는 게 좋아요. 폼 플라워 다음으로 큰 포인트 꽃들이에요.
"이 아이들은 라인 플라워(Line Flower)고요. 말 그대로 선을 표현하는 기다란 모양의 꽃들입니다. 꽃꽂이할 때 형태나 전체적인 라인을 잡아줘요."
"마지막으로, 필러 플라워(Filler Flower)입니다. 이 아이들은 작은 꽃들인데 공간을 채워줘요. 옆의 공간을 채움으로써 메인 꽃들을 돋보이게 해 주죠. 매스 플라워 사이사이를 채워주시면 됩니다."
꽃 설명을 듣는데 플로리스트님의 설명에서
묻어 나오는 꽃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렇지. 살아있는 것들은 저렇게 대해야 하는 거였지.
꽃을 설명하실 때 '이 아이'라고
말해주시는 것이 좋았다.
정말 꽃 하나하나 '성격'이 있는 것만 같았다.
난 꽃바구니를 선물할 때, 항상 포인트가 되는
'폼 플라워와 매스 플라워'를 중요시했다.
꽃바구니의 이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 꽃바구니의 주인공은 나야, 나!'하고
말하는 폼 플라워와 매스 플라워.
어딜 가든 빛이 나는 사람들 같다.
어떤 모임을 가든 눈에 띄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이 폼 플라워와 매스 플라워를 잘 보이게 하려고 줄기를 길게 해서 꽃 바구니의 정 가운데 꽂았더니, 꽃 바구니가 왠지 모르게 불균형해 보였다.
그걸 들고 가면 꽃들이 머리가 무거워
뚝 부러질 것만 같았다.
플로리스트분께서 무거운 폼 플라워의 줄기를
짧게 뚝 잘라서 '낮게' 꽂아주셨다.
그 자리가 매스 플라워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자리였다. 어쩌면 ‘겸손’해야 그들이 더 빛날 수 있는
인생의 진리같은 것일까.
그 뒤에 '라인 플라워'들을 꽂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라인 플라워는 줄기가 너무 견고하고
굳세어서 잘못 만지면 뚝 부러졌다.
고집 센 어떤 이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 견고한 고집을 꺾으려고 도전하는 순간,
늘 탈이 났던 기억이 났다.
"선생님, 그 라인 플라워는 줄기가 뚝 부러질 수 있어요. 그래서 조심해서 꽂아주세요."
"아, 조심해서 다루면 되는 거군요."
그 고집쟁이는 그 모습 그대로 조심히 다뤄
제일 빛날 수 있는 위치에 쏙 꽂아주었다.
특히 유칼립투스는 만질 때마다
손에 끈적끈적한 것들이 묻어 나왔는데
향이 솔솔 나서 자기만의 존재감을
이렇게 보여주는구나 싶었다.
'필러 플라워'들을 마지막으로 꽂으며
빈 공간을 채워갔다.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그저 채워주는 일만 하는 작은 꽃들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필러 플라워들이 없는 꽃바구니는
어딘가 듬성듬성 구멍이 난 것 같았다.
필러 플라워들을 사이사이에 채우고 나서야
모든 꽃들이 더 빛이 났다.
당신은 어떤 꽃인가요?
어딜 가든 주목받는 '매스 플라워'인가요?
가늘고 곧은 '라인 플라워'인가요?
작지만 없어선 안 될,
다른 이들을 더 빛나게 하는
'필러 플라워'인가요?
무슨 꽃이든, 살아있는 것들은 다 소중하네요. 무슨 꽃이든, 각자 가장 빛나는 자리가 있네요.
당신은 어디에서 가장 빛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