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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Sep 24. 2023

삶의 의미를 찾아-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아이를 키우며 행복감만 느끼는 부모가 있을까?

내가 만난 부모들은 아이가 전교 1등이어도 전국 1등이 아니어서 걱정, 아이가 친구가 많아서 공부 안 한다고 걱정, 아이가 친구가 너무 적어서 혼자여서 걱정이었다.


나 역시 세모의 ADHD 진단으로, 하늘을 원망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살다 열심히 연구해 온 원고를 모두 빼앗긴 채, 가족과 헤어졌으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만 남아 극한의 굶주림과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매일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낸 그가 깨달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왜 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아이의 ADHD가 가끔은 너무 버겁다. 약효가 없는 저녁 시간은 결코 평온할 수 없고, 매달 직장을 조퇴하고 아이와 정신과 대기실에 앉아있는 생활을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시련'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이의 ADHD는 사라지지 않을 텐데, 어떨 땐 '내'가 사라지면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라는 이유로 잠든 아이 옆에서 조용히 베갯잇을 적시던 밤이 하루하루 늘어갈수록,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상담센터에서 나는 조금씩 다시 설 힘을 얻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가진 것이라곤 오직 생명뿐이었던 순간에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살아야 할 이유들을 찾아 모았다. "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막사 바닥에 앉아서 수프 그릇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점호장으로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구름과, 하늘에서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했다.


또한, 그 고통의 현장에서도 한 구석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왠지 모를 말도 안 되는 공감이 느껴졌다. 홀로코스트에 비할 바겠냐마는 육아의 전장에서 항상 열망하던 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만의 공간은 어디일까? 바로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식탁이 아닐까. 나만의 공간이 없다며 한탄할 것이 없었다. 홀로코스트 현장에서도 프랭클 박사는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내가 홀로 편안할 수 있는 곳. 내가 마음으로 정한 그곳이 나의 공간인 것이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스피노자, <윤리학>

아이의 ADHD,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왜 나는 아이의 ADHD가 힘겹고 지치게 만든다고 생각할까. 글을 쓰는 지금도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이 아이는 변한 것이 없다. 어릴 때부터 육아 난이도는 다른 순한 아이들에 비해 100배는 힘들었던 것 같다.


다만, 날 힘겹게 하던 그것이 '나' 때문이 아니라, 세모에게 있던 ADHD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나의 고통은 멈췄다. ADHD가 무엇인지 알게 됐고, ADHD를 갖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도 오직 한 가지 자유는 존재했다고 말한다. 바로 "자기 행동의 선택권" 그리고 "시련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 권리".  여기에 답이 있다. 아이는 통제할 수 없다. 아이의 미래는 더욱 통제 불가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주어진 자유.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다. 아이의 ADHD를 절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바꾸고자 하는 태도. 그것은 내가 선택할 자유가 있으며,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우리 모두 그래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난 이 부분에서 내가 계속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 바로 내가 세상에 초대한 두 생명, 나의 아이들이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당신이 만약 지뢰밭 길을 걷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살아내라. 거기서 살아내면 그 고통과 시련은 당신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 진리를 얻어내 더욱 당신을 강하게 만들길 바란다.


삶의 의미, 그래서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빅터 프랭클 박사는 삶의 의미를 3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하자. 매일 감사할 일들을 쓰거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사진 찍어 기록하거나. 그 무엇이 되었든, 시작하자.


2) 어떤 일을 경험하자. 여행이나 취미, 그것이 무엇이 됐든. 그리고 한 존재를 깊이 사랑해야 한다. 박사는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이 존재는 무조건 자신이 1번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남편과 아이들이 그다음이 될 것이다.


3) 피할 수 없는 시련, 지금은 아이의 ADHD가 나에겐 시련이고 고뇌다. 난 이미 나의 태도를 결정했다.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1가지를 하기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삶을 나아가는 방법을 몸소 보여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삶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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