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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Oct 23. 2023

삶에 집착하게 하는 존재들

건강검진 날 내가 두려웠던 이유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끝냈다.

건강검진.

남편이 잊지 않고 예약해 준 덕분에

함께 손을 잡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20대에 만난 우리는 어느새 30대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다.

건강검진을 같이 받는 건 처음이었다.

검진복으로 갈아입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검진을 받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눈 시력검사를 시작하여 경추 CT, 위내시경까지 검사를 받고 나니,

'내 몸 구석구석 이렇게나 중요한 곳이 많았다고?' 

검사받을 때마다 자책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눈을 혹사했고,

운동을 안 하고 먹고 싶은 걸 다 먹었던

생활 습관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검진하고 나오면 소파에 앉아 대기하며

남편이 검진받는 뒷모습이 보인다.

내 남자친구가 어느새 남편이 되었고,

나의 아이들의 '아빠'가 된 그.

어느새 내 인생에 너무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는 건

언제나 무력감을 준다.

남편이 아프거나 아이들의 아빠가 없는 삶을

생각만 해도 두렵고 불안해진다.

이기적인 감정이다.

남편이 고통스러울 것보다

당신이 없는 '나의 삶'을 먼저 걱정했으니.


각종 암검사는 20대에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던

항목이었던 것 같다.

30 중반이 넘어가고 두 아이의 엄마로 받는

암 검사에 말도 안 되는, 그러나 일어날 수도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가 없는 아이들과 남편은 어떨까?'


아이들을 만나기 전엔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술을 잔뜩 마셔도, 밤늦게 잠도 자지 않고 놀아도

내 몸은 언제나 건강했다.

어른들의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이젠 이해하겠다.



엄마가 되면 두려운 것들이 많아진다.

그만큼 잃을 게 많아지기 때문이겠지.

나 자신마저도.

두 아이가 나를 돌보게 한다.

두 아이가 나를 삶에 더 집착하게 한다.

.


부모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8할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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