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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Oct 18. 2023

엄마 밥 먹던 때로 돌아갈래

요리가 제일 재미없는 나란 사람

"엄마, 나 된장찌개 끓여 줘. 양파랑 두부만 넣어 줘.

그리고 양파는 생 양파처럼 아삭하게 끓여 줘야 해."

"엄마, 나 저녁은 김치찌개."


아침 6시에 일어나 머리를 한참 정성스럽게 감고

교복을 입고 작은 식탁에 앉는 나.

내 앞에 놓인 수저와 김이 솔솔 나는, 두부 가득,

양파는 덜 익어서 아삭아삭한 된장찌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너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땐 몰랐다.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어려운 게

남의 밥 차리는 일이란 것을.

그 '남'이 아무리 자식이라도 말이다.



"선생님, 대체 언제 책을 읽으세요?

아기도 키우느라 바쁘신데..."

"하하하..."


그저 웃으며 넘기는 나의 대답의 의미는,

"책 읽을 시간은 많아요.

아이들 밥은 대충 한 그릇 음식으로 뚝딱 만들어주고,

집은 더러운 채로 좀 놔둔다면요."


엄마가 되고 새롭게 알게 된 나란 사람에 대한 사실.

나는 요리가 제일 재미없다.

레시피 보면 다 만들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엄마들이 신기했다.

난 레시피를 보면

더 요리가 하기 싫어지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요리가 괴로울 때도 있다.

난 무언가를 손으로 만지는 데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선이나 닭고기의 물컹한 식감을 만질 때면,

라텍스 장갑이 있어야 한다.

붉은 피가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요리해야 할 때는 입맛이 떨어진다.


그래도 두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비록 요리할 때 내 입맛은 떨어져도

아이들이 맛있게 잡고 물고 뜯어주는

등갈비를 삶기로 했다.

주말에 산 등갈비를 냉장고에 넣었다.

주말에 만들기로 했는데


아차, 외식을 해버렸다.


오늘까지 등갈비는 빨간 자태를 뽐내며,

스티로폼 침대와 투명 랩 이불을 덮고

그대로 추운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양심 상 이젠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학교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

'그걸 왜 사가지고... 요리를 하게 하니 이 바보야.'

집에 가자마자 요리할 생각에 기분이 다운됐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등갈비를 조물조물

말캉말캉한 고깃덩어리와 딱딱한 뼈가

나의 온 감각을 건드렸다.

월계수 잎을 5장 넣고, 생강 한 스푼,

다진 마늘 한 스푼을 넣고 후다닥 끓이기 시작했다.



나의 힘겨운 요리 스트레스가 빛을 발하는 순간.

아이들이 즐겁게 등갈비를 냠냠 쩝쩝 뜯어주었다.


'우리 엄마도 이런 기분으로 요리했을까?'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진다.

퇴근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가는 길에 자주 드는 생각,

우리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나 오늘 너무 피곤했어.

오늘은 된장찌개. 양파는 아삭하게 해 줘."

매일 먹던 엄마 밥이 이젠 친정가야 얻어먹을 수 있는 이벤트식이 된 것이 서글프다.


우리 엄마는 매일 나에게 밥을 차려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처럼 요리가 싫었을까?

흰밥에 김치가 맛있다며 꺼내먹던

엄마의 밥상이 기억난다.

식탁으로 그릇을 옮기기 귀찮아 싱크대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던 나의 모습과 겹쳐졌다.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내가 차려준 밥상을 그리워할까?

"엄마가 해준 게 제일 맛있어!"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엄마가 해준 그거 생각난다.' 하고

잠시 그리워지는 내 요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뒤에 숨겨진,

내가 정말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아마도 영원히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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