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그래서 우리는 언제 자라나요?

요즘 아이들이 빼앗긴 성장의 기회

by 이사비나

초등학교 5학년부터 남자 친구들, 여자 친구들 모두 불쑥 올라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엄마한테 "아, 왜!"

"아, 좀!" 이 두 단어를 남발하며 집을 나서기 시작한다. 부모들의 커뮤니티에서 도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에 중학교 수학을 끝내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수학을 해야 한다고. 아이들은 본인의 몸도 마음도 자라느라 바쁜 시기에 부모가 준비해 둔 학교 밖 커리큘럼에 헉헉대며 쫓아가 본다.


중학생이 되면, 몸은 어른처럼 자라는데 어른이 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빨리 빨리 국, 영, 수 과목을 미리 미리 배우라고 하는 어른들만 남아있다. 어떻게 자신의 몸을 아끼고 관리해야 하는지, 열심히 해도 잘 되지 않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타인은 어떻게 배려하고, 사회의 규칙은 왜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 어른이 되면 만나게 될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배우지 못한 채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가는 삶.

우리의 10대의 삶이다.


어른들은 대학에 가고 나면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군다. 대학 등록금은 얼마고, 고작 대학 4년을 졸업하고 나면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이 인생 프리패스인 것처럼 잘 포장해왔다.


'자립'

홀로 서기.


스무 살이 되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평온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렇게 부모는 아이들을 놓아줄 준비를 해야 한다. 요즘은 대학교 학생 관련 부서에 전화가 자주 온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20대의 대학생들의 부모님으로부터 오는 전화다.


"우리 아이 이번에 왜 A+가 아닌가요?"

"우리 아이가 졸업하려면 이제 무슨 과목, 몇 학점 수강해야 하나요?"


자녀의 자립에 실패한 부모들.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실패해보고 거기서 또 배우는 과정을 겪지 못한 아이들. 부모에게 살짝 기댄, 요상한 자세로 삐딱하게 성장한 '어른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부모가 이젠 혼자 걸어보라고 사회에 내놓는 순간 삐딱한 걸음 걸이 때문에 고꾸라지듯 넘어진다.

문제는? 일어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뭘 할지 정하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생기부가 중요하다면서 너희에게 진로를 정하라고 하지. 태어나서 16년 살아본 너희가 평생 할 지도 모르는 직업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고 보채는 어른들이 많을 거야. 그렇게 해야 너의 생기부가 좀더 대학의 전공을 위해 노력한 흔적을 많이 보여줄 수 있거든.


그런데 좀 막막하지?

중학교에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준비해야 한다고 수학 선행학습에 하루 3시간씩 학원 의자에 앉아있기도 하고, 친구와 노는 건 편의점 음식들을 함께 잠깐 나눠먹는 일. 그렇게 들어간 고등학교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없이 '공부'만 하라고 말야. 근데 이젠 꿈까지 정해야 한다니.


대체 너희는 언제 자라니?

선생님은 가끔 너희가 20대가 되어도 사춘기가 끝나지 않을까 걱정 돼. 실제로 20대에도 스스로 서지 못해서 휘청거리는 청년들을 많이 봐.


NEET족을 아니?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 학업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며 취업을 위한 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이 말야.


이런 니트족이 점점 많아지고 있대. 아마 어른들은 너희가 20살이 되고, 대학에 가면 이제 훨훨 날아가라고 놓아줘도 된다고 생각하나봐. 사실, 날개조차 자라지 않았는데 말이야. 우리 어른들이 갖지 못했던 것들을 너희에게 요구하면서 '자라날 시간'을 빼앗은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너희를 내던지듯 놓아버린 게 아닐지.


선생님의 세 살 딸 아이가 단추를 스스로 채우고 싶어할 때가 왔어. 우리처럼 착착 잘 채울까? 아니지.

내가 직접 채워주던 단추를 직접 채우고 싶은 '내가 할래!' 욕구가 시작된 거야.


이 작은 '자립'이 성공하기 위해선 조건이 있어.

첫째, 부모가 아주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해'.

둘째, 아이가 단추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발달이 되어 있는 '때'가 와야 해.

마지막, 부모가 단추 구멍을 좀더 잘 찾도록 옷깃을 살짝 잡아주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해.


이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반복되면,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 아이는 '나도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생기지. 스스로 잘 해내는 진정한 '자립'의 순간이 오지.


선생님은 너희들이 이 3가지 조건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생각해.


1. 일단, 우리들은 너희가 대학을 못 가고 사회에서 도태될까봐 불안해.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해 볼 수 있게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했어.

2. 너희의 뇌 발달이 준비된 그 적기를 알아보지도 못했지. 각자의 발달보다 '남보다 빨리 발달'하길 강요했어. 선행학습을 3년이나 빨리 시키면서. 거기서 오는 좌절감이 얼마나 클까? 이제 막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 때에 단추를 채우라고 하는 격이 아니었을까. 선행의 늪에 너희는 성취감보다 '수포자, 영포자, 언포자'. '포기하는 법'부터 배운다니.

3. 무엇보다 '약간의 도움'이 아닌, '뭐든 엄마가 해줄게' 모드로 인해 실패의 경험마저 주지 못했어. 옷깃만 살짝 잡아주면 될 일을, 모든 단추를 다 채워줘버린 것 같아.



그렇게 너희는 정말 자랄 시간이 없었어.
충분히 생각하고 경험할 기회도 없이
진로를 정하고,
실패의 경험도 없이
단번에 성공을 증명해야 하지.

만약 너희가 반복된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면,
좌절하지 않기를.
분명 그 경험조차 없는 아이들보다
더 많이 자라날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