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흩어지는 순간이 왔다면

"선생님, 엄마 아빠가 이혼한대요"

by 이사비나

"지영아, 급식 안 먹어? 어디 아프니?"

"선생님, 지금 상담할 수 있을까요?"

"그럼, 지금 애들 없으니까 상담해줄게. 무슨 일이야?"

"선생님, 엄마 아빠가 이혼한대요."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나의 교직 인생은 항상 이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매년 새로운, 스무명이 넘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 방문객은 아직 어리고 어딘가 모가 나기 시작한 사춘기의 모습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온다.


이들의 일생은 많아봤자 16년의 생인데도 30이 넘은 나의 일생보다 무거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 나"라는 완전한 가족이 흩어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랄까. 사춘기들을 만난지 10년이 되니 아이들의 기분 변화는 기가 막히게 눈치 챈다. 학교 생활의 전부인 급식을 먹지 않는 것이 1번 증상이다. 지영이 역시 밥을 먹지 않기 시작하면서 눈에 띄었다.


지영이의 이야기는 사실 낯설지 않았다. 어른인 나에겐 이혼이 아주 이해되지 않는 사건은 아니니까. 부부가 되고 나니 성장이 완료된 존재같던 엄마와 아빠가 사실 그저 유약한 인간의 불과하단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어른들이 자신이 10여년 전 내린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이 이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부부에게도 '평생'을 약속한 인연을 놓는 과정이니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부부라는 역할 중 50%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니 이해하게 됐다. 이혼이라는 것이 그냥 어느 날 ‘나 이제 이혼 할래’ 라고 즉흥적으로결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문제는 그 과정에 아이들이 소외될 때다.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한 적이 없다. 평생 함께 할 부모를 만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중도에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 부모를 만나기도 한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부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눈치도 보고, 때론 방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며 냉랭한 기운의 집을 감당해온다.


아이들은 온 몸으로 부모의 이혼을 느껴왔다.

지영이는 나에게 그날의 고통을 고백했다.

"선생님, 아빠가 갑자기 나갔어요. 며칠 째 집에 들어오지 않아요. 이혼하는 거 맞죠? 저랑 동생 이제 어떡해요?"

'이혼하는 것이 맞는지' 담임교사에게 물어야 하는 아이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지영이 뿐만이 아니었다.

"아빠가 안 들어온지 좀 됐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바빠서 멀리 가셨대요." 명주의 이야기다.

"엄마가 편지를 남기고 나가셨어요. 아빠 때문에 힘드신가봐요. 전 왜 안 데려가셨을까요?" 홍기의 이야기다.


아이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왜' 라는 질문이 가득했다. 지영이의 생활이 무너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바로 수화기를 들고 어머님 번호를 눌렀다. 남의 가정사에는 끼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수화기를 들었을 땐, 오직 누군가는 지영이만을 위해 얘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부부는 치열하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테니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를 챙길 겨를이 없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머님, 지영이 담임입니다. 지영이와 상담을 하는데 어머님과 아버님 이야기를 꺼내네요. 혹시 지영이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셨을까요? 지영이도 16살이면 이혼이 뭔지, 별거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입장에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나 때문인가' 자책감이에요. '나'를 두고도 '왜' 이혼까지 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되어요. 자신을 괴롭힙니다. 아이에게 차분히 설명해주세요."



너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흩어지는 순간이 왔다면,

기억해.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아마 원망도 하게 될 거야.

'아빠는 왜 그렇게밖에 못 해서 엄마를 괴롭혔을까.'

'엄마는 왜 아빠를 용서하지 못해서 나에게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을까.'


너무도 자연스러운 마음이야.

화가 나고 눈물이 나면 숨지마.

엄마와 아빠에게 가서 모든 마음을 뱉어내.

부부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셨지만 너의 엄마, 아빠이기를 멈추신 게 아니니까.


지금은 너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지.

당장 학교에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거야.

친구들이 엄마에 대한 불평 불만을 늘어놓을 때,

엄마, 아빠와 여행 간 이야기를 떠들 때면

불쑥 엄마와 아빠를 나란히 말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알 수 없는 찌릿한 마음이

너를 울릴 수도 있을 거야.


선생님이 말해줄게.

그 마음은 분명 점점 옅어져. 나아져.

그 시간이 오래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해야 해. 엄마, 아빠에게 말해도 돼.

수많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해도 돼.

넌 모든 답을 들을 자격이 있으니까.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의 모양이 있어.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신 친구.

엄마와 아빠가 마음으로 낳은 친구.

엄마, 아빠가 두명씩인 친구.

세상에는 정해진 가족의 모양은 없어.


지금의 시련은 분명 지나갈 거야.

그러니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오직 널 잘 돌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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