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비나 Feb 10. 2024

ADHD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는 날

명절을 현명하게 살아내는 방법

세모의 ADHD를 알자마자 나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써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며 엄마에게 속상한 나의 마음을 다 털어놓았다. 항상 본질 육아를 실천하셨던 엄마라 수화기 너머 전해오는 엄마의 작은 위로를, 말씀하시지 않아도 다 느낄 수 있었다.


'네가 고생하겠구나. 그래도 잘 자랄 거야.'

엄마의 목소리와 아무렇지 않을 거라는 안심시켜 주는 말들에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이 여정에서 엄마에게 기댈 수 있겠구나.'


시댁에는 알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참고로 나의 시댁은 소설 속에 나올 법한 유토피아 시부모님들이시다. 남편과의 결혼을 망설일 때, 시부모님을 뵙고 바로 결혼을 결정할 정도로 존경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알리지 않았냐고?


그분들의 반응과 질문들을 '내'가 감당하기 두려워서.

그분들의 얕은 ADHD에 대한 지식이 '나'를 상처 줄까 두려워서.


부모님처럼 존경하는 분들이지만 '나'의 부모는 아니기에 당신들이 키운 아들과 나를 비교하며 이 몹쓸 ADHD가 어디에서 왔냐며 곱씹으실까 봐. 그리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어르신들께서 세모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만 하실까 봐 말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만큼은 ADHD가 아닌, 따뜻하고 생명 그 자체로 존귀한 손주이길 바랐다.



세모의 ADHD를 알고 6번의 명절을 보냈다.

시댁에 가려고 짐을 싸기 시작할 때부터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아침에 약은 어떻게 몰래 먹여야 하지?'

'약을 먹이지 말까?'

'안 먹이면 또 애가 왜 이렇게 산만하냐고 하면

어쩌지?'

'약 먹이면 또 밥을 왜 이렇게 안 먹냐고

물어볼 텐데 어쩌지?'


이 걱정의 근원은 사실 시부모님이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고 '평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이면엔 '나는 시부모님께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운다는 소리는 들어야'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려면 시댁을 들어설 때, 내 아이가 나의 '트로피'처럼 황금색으로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한 아이의 단점들은 싹싹 지우고 보여드리고 싶었던 오만한 마음이었다.


ADHD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갈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엄마가 색안경을 낄 필요가 있다. 우리의 소중한 명절을 망치지 않기 위해.


바로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 간의 관계"만을 바라보는 색안경을 써야 한다. '시'자가 붙음으로써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관계이지만 아이에게는 둘도 없는 조부모다. 나에게는 어려운 분들이지만 아이에게는 무조건적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존재들일 수 있다.


그 색안경을 끼면, 시부모님이 우리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말말들에 덜 상처받을 수 있다.

'그래, 세모에게는 너무 잘해주시니까.'


/

물론, 모든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이 손주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 만약, 시부모님이든 친정 부모님이든 아이의 치부를 건드리는, "너는 몇 등 하니?" "너는 뭘 잘하니?" "세모랑 동글이 와서 키 재보자." 등 아이를 비교하는 말이나 질문 폭격을 날린다면?


'내 아이 절대 지켜' 모드로 가야 한다.

"어머님, 그런 걸 질문하시면 어떻게 해요?

아이 기죽게."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를 지키는 방법은 '내 아이 으쓱 모드'로 가는 것이다. 내 아이 예뻐 죽겠다는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할 사람은 없다.


"어머님, 우리 세모는 얼마나 튼튼한지 집에서 막 덤블링도 잘하고요. 제가 해주는 반찬은 매일 다 먹어요. 엄마 도와준다고 세탁기 돌려줄 때도 있고요. 학교도 매일 성실히 가고요. 학교 매일 가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우리 세모 너무 착하고 멋져요."


옆에서 엿듣는 아이의 어깨가 스윽 올라가는 걸 느낄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실천해보자.


시댁이 불편한 이유,
사실 내 아이가 트로피여야 하는데
트로피가 아니어서
불안하고 불편했던 건 아닌지.
우리가 아이의 ADHD를 결핍이라 여겨서
시댁이 불편했던 건 아닌지.

기억하자.
아이는 아이 존재 자체로 반짝인다.
열심히 자랑하자.
내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부록- 추석 잔소리 메뉴판

까치까치 설날에도 유용하길.

출처: 사연을 읽어주는 여자



이전 15화 ADHD 아이에게 '이 말'을 하지 않았더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