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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Feb 17. 2024

ADHD 아이를 키우면 온몸이 따가운 이유

따가움이 따스워지려면

세모의 ADHD를 모르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점점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두려웠다. 이제 막 걷고 뛰기 시작한 3살, 4살의 세모는 귀여운 아기가 아니었다. 팽팽이 당긴 고무줄을 잡고 있는 것처럼, 놓아버리면 어디로 튀어나갈지 몰라 두려운 듯, 세모의 팔을 항상 잡고 있었다. 그 팔을 놓아버리면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달려가는 아이였으니까.


아이와 문화센터를 가도 세모가 무슨 경험을 하는지 보지 않았다. 내 눈은 둘러앉은 아가들을 스캔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그 날은 인디언 옷을 입고 인디언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쟤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잘 듣네?'

'저 여자아이는 딸이라 그런가?

조용히 엄마 무릎에 잘 앉아있네?'

세모는 인디언 옷을 입고 뒤쪽의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을 연신 쳐다보며 씩 웃고 있었다. 이야기 따윈 관심도 없었다. 나는 그런 세모의 웃음을 보지 못했다.

"세모야, 선생님 말씀하시잖아. 저기 앉아야 해."

저항하는 아이의 팔을 들어 올려 억지로 선생님 곁에 함께 앉혔다.


내 아이는 언제나 주류에 역행하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즐겁게 공놀이를 하며 놀 때도 세모는 신기한 돌멩이들을 찾아보겠다며 여기저기 눈을 땅에 박고 찾으러 다녔다.

"세모야, 친구가 부르잖아. 저기 가서 같이 놀아야지."

난 세모가 푹 빠진 돌멩이들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친구들을 기다리게 하고, 열외 되는 듯한 아이가 민망했다.



언제나 이렇게 같은 패턴이었다.

아이는 계속 내가 기대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산만하게 돌아다니고 나는 다시 내가 원하는 곳에 아이를 데려오고 붙잡고 제지하는 일상.

게다가 세모와 함께 나가면 온몸이 따가웠다. '타인'이 있는 곳은 어디든 두려웠다. ‘타인'의 시선 때문.


세모와 함께 집 밖을 나서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바짝 긴장했다.

이번엔 또 무슨 행동을 할까?

이번엔 또 이웃들한테 어떤 말도 안 되는 말을 던질까?


내 안의 모든 신경은 타인의 눈빛, 타인의 시선, 타인의 표정에 향해있었다. 엘리베이터뿐만 아니라 대부분 모든 일에 있어 나의 마음은 온통 나를 둘러싼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다.


'하하 여러분 우리 세모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시죠?'

스스로 눈치를 봤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에 온몸이 따가웠다.


그들이 웃어주면 안심했고,

그들이 찡그리면 아이를 또 원망했다.

내 하루를 모두 그들의 표정에 맡겼다.


세모의 ADHD 진단을 받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지나온 몇 년의 시간들이 지났다. 아이의 과잉행동과 충동성을 맨 몸으로 버텨온 시절의 사진들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사진 안엔

너무나도 환하게 웃는 나의 아이, 세모가 있었다.


내가 내 하루를 모두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맡겨버릴 때, 내 아이 세모의 하루를 보지 못했다.

아이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아이가 얼마나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을 펼치고 있는지.


선생님의 이야기보다 자신이 입고 있는 인디언 옷이 얼마나 멋진지 봐야 했던 아이의 마음을, 친구와의 공놀이보다 자연 속 가만히 놓여있는 모두 다르게 생긴 돌멩이들이 신기했던 아이의 마음을, 나는 보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을 온몸으로 따갑게 버텨내는 동안 말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 온몸이 따가운 이유는

내 시선을, 내 마음을 그들의 시선에

맡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봐야 한다.
내 아이의 시간을.
내 아이의 하루를.
내 아이의 행복을.

그제야 비로소
당신은 온몸이 따갑지 않을 수 있다.
아이와 마주 보며 웃는 웃음에
온몸이 따스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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