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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Sep 02. 2024

캐나다에서 ADHD 이웃을 만날 확률

"나랑 내 아이는 ADHD가 있어." 옆집 아저씨 찰리의 고백

"우리 나중에 캐나다에서 1년 해외살이 해보자."

"그래? 그럼 아이가 초등 저학년 때 휴직하고 같이 가보지 뭐."


우리의 결심은 첫째의 ADHD 진단 후, 몇 년 미뤄졌었다. 세모의 ADHD 진단으로 인해, 한국에서 약물 치료를 시작하고 적응하기까지 대략 1~2년 더 걸렸기 때문이다. 약물 치료 적응이 끝나고, 우리 이제 가볼까? 하며 진행한 캐나다 1년 살이.


캐나다에서는 학원이 없다는 이야기에 솔깃한 세모는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들떠있었다. 13시간의 밤 비행기를 타고 내린 캐나다 공항. 사뭇 달라진 공기의 냄새, 여기저기서 들리는 영어들, 그리고 네 명의 가족들을 맞이하는 입국 심사관.


'진짜 왔네. 캐나다.'



시차적응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아침에 일어나 기분 좋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가 발견한 옆집 아저씨 찰리(가명).

"Good morning! Welcome! Where are you guys from?"

"We came from South Korea a few days ago."

"Wait. All the way from South Korea?"

"Yes."

"That's insane! Welcome to Canada!"


캐나다에서는 본토 캐나다인을 만나기가 어렵다. 이민자의 나라라서 백인이어도 가족들끼리 쓰는 언어는 영어가 아닌 경우가 많기도 했다. 그런데 찰리는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본토 캐나다인이었다.


찰리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그중 둘째인 아들 윌과 세모가 거의 매일 집 앞에서 놀기 시작했다. 이렇게 친구가 바로 생길 수 있다고? 세모와 잘 노는 윌을 보면서 우리가 참 이웃 복이 있구나 감사했다.


우리가 정말 딱 3번 만난 날, 찰리는 내게 말했다.

"윌은 말 더듬 증상이 있어서 언어 치료를 받고 있어요."

"아 그래요? 잘 못 느꼈는데 그렇군요? 많이 좋아졌나요?"

"치료가 많이 도움이 됐어요. 제가 ADHD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영향인지 윌도 언어치료가 필요하더라고요. 아, 참. 윌도 ADHD에요."


이게 3번 만난 사이에 말할 수 있는 대화인가? 나는 찰리의 나이도, 직업도, 그의 부인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딱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약 10,000km 떨어진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던 stranger일 뿐이었다. 찰리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며 세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할까? 말까?

세모의 ADHD를 오픈할 때는 심호흡을 10번을 해야 했다. 사전에 남편의 동의도 얻어야 했다. 이 아이의 ADHD가 치부는 아니지만 세모 본인의 진단명을 부모로서 여기저기 오픈하며 말하고 다니는 것이 옳지 않다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ADHD인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기에, 더욱 내 깊숙한 곳에 있는 이 비밀을 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세모도 ADHD 진단을 받았어.

보통 이 말을 한국에서 지인에게 내뱉었을 때는 가시 돋친 응어리가 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듯 눈물이 같이 흐르곤 했다. 그만큼 묵직한 고백이다. 이번엔 찰리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내 온몸은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Oh, yeah? It's common.
그래요? 뭐 흔한걸요.

그러고 나서 또 일상의 대화를 시작하는 찰리. 3번 만난 캐나다에서의 옆집에 ADHD인이 2명이나 산다는 것도 기가 막힌데, 한국에서 선생님께 세모의 ADHD를 고백하기까지 1년이나 걸린 내가 캐나다에 온 지 1주일 만에 세모의 ADHD를 잘 모르는 이방인에게 오픈하다니.


그냥 일상의 대화로 넘기기엔 나에겐 캐나다에서 ADHD인으로 살아가는 찰리의 삶과 그의 아들 윌을 키우는 찰리 부부의 마음, 학교의 시스템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 마구 떠올랐다. 수많은 질문 중, 어느 것을 먼저 골라야 할지 몰라 신나게 일상을 이야기하는 찰리의 이야기는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사실, 세모의 ADHD를 이렇게 편하게 말한 적이 없어요. 한국에서는 선생님께도 말하기 어려워해요."

"왜? 그냥 학습 장애(learning disability) 중 하나잖아요. 그럼 아이는 어떻게 학교에서 도움을 받죠?"

"ADHD 학생들을 위한 도움은... 없어요."

"흥미롭네요. ADHD를 그렇게 생각한다니."


3번 만난 이방인 찰리에게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엄청난 질문 보따리를 풀어낼 수 없었다. 그에겐 아이와 자신의 ADHD가 "오늘 감기가 걸려서 약을 먹어야 했어"와 같이 심플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내 질문들은 "어떤 종류의 감기였어? 무슨 약을 먹었어? 너는 그 감기가 삶을 망칠까 걱정되지 않아?"라고 물어보는 격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질문들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윌과 공을 차며 신나게 노는 세모를 바라보았다. 선선한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아, 내가 캐나다에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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