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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괴롭히던 아이, 정신과에서 만나다.

그랬구나, 너도 어려움이 있었구나.

by 이사비나

동네 축구장의 정글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정글 속에 마치 영화 속 타잔이 겨루던 표범 한 마리 같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등장하면 모든 아이들이 긴장 상태. 또 어떻게 화를 낼까, 또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이 축구장을 통제할까. 모두가 경직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 분위기는 내가 매일 아이와 함께 축구장에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그 정글 속 나는 항상 유일한 어른이다. 그 아이의 이름이 육각이란 걸 알게 된 이유는 어느 날 세모의 외투가 축구장 쓰레기통에 들어있던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이모, 그거 아까 육각이가 세모 점퍼 쓰레기통에 심심하다면서 넣는 거 봤어요.”

“육각이 어딨니~?“



그 외투는 버렸고 육각이에게 작은 사과를 받으면서 마무리 지었던 일이다. 세모와 육각이는 두 살 차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 육각이의 명성은 같은 학군에서 근무하는 중등 교사인 나에게까지 들렸다.


“선생님, 그 육각이 학교에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유명하잖아요.”

(비록 중학교 교사지만 동네에 친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몇 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육각이와 있었다. 육각이를 쭉 지켜보면서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선입견을 가졌다. 섣부른 10년 경력 교사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육각이는 엄석대 같은 이미지의 친구였다. 동생들이 골키퍼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도 끝까지 골키퍼를 시킨다. 그러면서 본인은 공격수를 맡아 두 살 어린 동생들이 무서워서 막을 수 없는 킥을 날린다.


솔직히 세모가 육각이와 마주쳐서 같이 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지난 진료에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에 아빠와 앉아있는 육각이를 보았다. 세모와 육각이는 바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 순간 나는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머리가 아팠다.

가장 먼저 걱정한 건 우습게도 내 아이의 정신과 병력이었다.


“세모야, 육각이 형이 무슨 말을 해도 엄마 진료 따라온 거라고 해. 그리고 형한테도 왜 왔냐고 물어보지 마. 약속해. 비밀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자책감이 들었다. 왜 우리는 당당할 수 없는 걸까. 아이에게마저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못하는 이 현실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아빠와 약을 타러 나가는 육각이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아이를 괴롭혀서 조금은 멀리 하길 바랐던 그 아이가 어쩌면 세모와 같은 ADHD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물론 다른 진단명일 수도 있겠지만.)


‘진단률이 10퍼센트 가까이 된다는데 정말이구나. 이젠 병원에서 다들 마주칠 수 있겠구나.’


내 아이를 괴롭히던 그 아이마저도 마음 조절에, 행동 조절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도 이제 왜 본인은 관계가 힘든 것인지, 학교에서 왜 계속 유명인으로 남아야하는지 알았을까? 어떤 치료 방법이든 간에 부디 잘 적응하길, 부디 효과가 있길 기도했다. 육각이도 도움을 받기로 결정하기까지 부모님의 끝없는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이제는 나도 육각이에 대한 가드를 내리고 육각이에게도 늘 고팠을 따뜻한 친절과 따뜻한 눈 맞춤을 주겠다 다짐했다.


육각이도 세모도
조금은 자신의 모난 면을 깎아내고
둥글둥글 해지는 때가 오길.
앞으로 병원에서 만날
수많은 ADHD 아이들과 부모님이
서로 당당히 인사를 나눌 날도 오길.
소망해 본다.


*사진 출처- 유토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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