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암 정약전 선생과 홍어장수 문순득
여행은 자신의 일상을 잠시 떠나는 일탈입니다. 그것도 법적으로 허용된 일탈입니다,
회색의 도시 건물과 사무실에 마주치는 모니터와 그 화면에 나오는 정보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온전한 자기만의 의지에 의해서 일상을 벗어나 일기를 써내려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행은 새로운 만남입니다, 조금은 내성적인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은 만남입니다,
생경한 자연을 만나고,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가끔은 과거의 역사적 인물과 만나 나만의 대화를 해보고 빙의도 해봅니다, 신중하게 만나도 되고, 순간의 만남으로 갈무리해도 됩니다. 만남은 온전히 여행자의 자유이며 의지입니다. 그래서 여행은 의무가 없어서 좋습니다
여행지에서 지역이나 과거의 인물을 스쳐 만나기도 하지만, 가끔은 깊은 교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스쳐간 과거의 인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관련 내용을 찾다 보면 생각지 않은 깊은 만남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만남은 여행자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여행은 우연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먼 과거에 형성되고 변화되어 온 자연을 우연히도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조우하는 과정입니다, 우연이 의도하지는 않지만 여행을 통해서 필연이 되고, 이 필연은 여행객을 통해서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는 칸트를, 네덜란드에서는 고호를, 모스크바에서는 차이코프스키를 여행으로 우연히 만나고 그들의 사상을, 그들의 그림과 인생을, 그들의 음악을 만나고 만남은 그것은 우리를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그러한 우연을 만나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육체적 피곤을 감수하고라도 여행을 즐기나 봅니다.
우이도 여행 중에 만난 인물은 조선 후기 실학자 손암 정약전과 홍어장수 문순득입니다.
정약전은 순조 1년 천주교 관련 관련 신유박해(사옥)로 동생 정약용과 함께 유배되었으며 흑산도와 우이도(과거 소흑산도로 불림)를 오가며 16년간 유배 생활을 하고 우이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배생활 동안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어류학서인 [자산어보], 여행기인 [표류 시말]이 대표적입니다.
[자산어보]는 어류학서이자 해양생물 백과사전입니다.
당시 현지에 수자원 정보와 활용 방법에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정신적 사상과 의식을 중시하던 유교 사회여서 더욱더 실용적인 목적은 많이 무시된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개인 경험이나 구전에 위한 단순 정보로 어업활동을 하는 현지 어민을 보고 정약전 선생은 안타까움에 체계적 정보를 정리하여 현지 섬 어민의 궁핍한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했습니다.
정약전은 유배 중에도 불구하고 학자로서의 강점(요즘 말로는 먹물 근성으로)을 살려 바다에서 접한 정보를 분류하고, 꼼꼼히 기록합니다. 학문서가 아닌 실질적인 어민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물고기와 해양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모양, 습성, 고기잡이 도구와 방법 등을 상세히 기술하였습니다. 기록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실제 흑산도의 어부 장창대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라 하니 실학자가 저술한 살아 있는 실용서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은 이준 감독의 흑백영화 자산어보에 표현되어 있으니 한번 보시길 권장합니다. (사실 영화 촬영지는 우이도가 아닌 육지에 좀 더 가까운 도초도입니다.)
[표해시말]는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우이도 출신 한 홍어장수의 여행기입니다.
한 홍어장수가 풍랑을 만나 3년 2개월을 외지에서 떠돌게 됩니다. 풍랑으로 일본의 오키나와에 머물다 돌아오는 도중 다시 풍랑을 만나 필리핀에 도착 , 마카오, 중국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글은 못쓰나 기억력이 좋은 이 홍어장수는 자기 여행의 경험을 마침 같은 섬에 살고 있는 유배된 학자에게 며칠을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 학자는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글로 기록하여 남깁니다.
그 홍어 장수는 우이도 출신의 문순득이고, 학자는 우이도에 유배된 손암 정약전 선생입니다,
이 책은 그 당시 방문한 지역의 풍습과 언어를 기록하고 있어 연구가치에도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책들의 특성을 보면, 정약전은 학자로서의 호기심은 왕성했던 것 같고, 특히 실학자로서 실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기록하여 당대의 사람들과 후손에게 전달할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배지에서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접하고 그 시대의 정보의 귀천을 떠나 연구하고 기록한 것을 보면 학자로서의 존경을 갖게 만듭니다.
만약 이 분이 폐쇄적인 조선시대가 아닌 동시대의 서구에서 태어났다면 남아메리카 및 갈라파고스 군도 등에서 자연 생태를 관찰하여 [종의 기원]를 저술한 찰스 다윈을 필적하는 학자로 이름을 날렸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런 인재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활용하지 못하고 유배시킬 수밖에 없는 조선 후기의 낙후된 정치체제는 결국 일본에 의한 지배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이도 진리마을에 들어서면 손암 정약전이 살았던 터와 문순득의 생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손암 선생이 산책을 즐겼다는 띠밭 언덕과 띠밭 넘어의 해변을 거닐며 과거의 정약전과의 대화는 우이도의 여행객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기도 합니다.
*우이도의 홍어 장수인 문순득은 여러 식솔을 거느리고 장사를 하였으며 그 식솔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표류하면서 타국의 생활을 수완 있게 한 것을 보면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인물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