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다.

우리가 소를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by Neo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상식과 정치, 역사에 대해 해박합니다, 궁금하거나 의문점이 있으면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네 과장(네이버)을 찾거나 Googling을 한다면 쉽게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이런 서치 엔진보다는 유튜브를 좀 더 자주 찾는 거 같습니다. 일단 문자보다는 영상이 편할 뿐만 아니라 글이 표현 못하는 영상, 그래프 등으로 좀 더 이해가 쉽게 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해박한 지식과 도구를 가진 현대의 우리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합니다. 당신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을 곧바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까요?


"어느 어느 회사의 과장입니다."

"누구누구의 엄마 됩니다."

"어디 어디에 살고 있는 누구의 아들 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다 보니 자신 주위의 객체를 언급하면서 관계로 표현하는 게 가장 쉬운 자신의 소개가 됩니다, 결국 우리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모른다면 자신 자신을 활용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활용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 대부분은 인생을 잘 살아나가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해남의 미황사,. 공사 중이지만 그 웅장함은 여전하다.


이런 의미에서 불가에서는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본질은 못 보고 외부로 만 진실을 찾아 헤매는 의미로 쓰입니다. 결국 우리처럼 해박한 정치, 역사, 과학상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정작 본인을 모르는 우리를 의미하는 거겠죠.


소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곧 "깨달은 부처"이고, 소를 타고서 계속 소를 찾는 사람이 "무지한 중생"인 우리들입니다. 이러한 무지 때문에 인생은 고달프고, 지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면 소를 찾아서 소를 타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남 달마산 도솔암에서의 봄의 경치


실상사의 도법 스님은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 번째 "성찰", 두 번째 "대화"


첫 번째 성찰은 조용히 앉아서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겁니다, 명상이 좋은 방식이 될 듯합니다, 외부로 향하는 사유를 내부에 잡아 두고서 자기 자신의 본질을 관조하여 자신이 소를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두 번째는 대화로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내가 소를 찾고 있는데 소를 못 봤소?" 하고 말입니다. 상대방의 "당신, 지금 소를 타고 있지 않소."라는 대답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대화를 통해 진리에 다다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대화 상대를 찾기가 힘들듯 합니다. 부부 사이에 물어보면 "당신 미쳤어?"라는 대답이 올 듯하고 친구에게 물어보면 "요즘 회사에 문제 있니?" 하는 대답이 나올 듯합니다. 살상사의 도법스님 정도의 수양을 깊게 하신 분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지름길인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르겠습니다. 범인이 대체 이해 못하는 선문답으로 대답하실지도 모릅니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소를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인생을 여유롭게 의미 있게 활용했으면 합니다.


※ 위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스님과 영국의 생물학자인 데니스 노블의 대화를 엮은 책 "오랜된 질문"에서 발췌 했습니다.


해남 대흥사, 절 뒤로 대륜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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