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고치(石の繭)

웰메이드 경찰 수사 드라마, 살인분석반 시리즈 3부작의 첫 장.

by 김한샘

[돌의 고치 -살인분석반-(石の繭 -殺人分析班-), 채널 WOWOW에서 2015년 방영, 국내에서는 티빙 및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


어렸을 적부터 트릴로지(Trilogy), 즉 3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고전으로는 스타워즈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까지. 3부작이 주는 그 안정감과 완결성 때문일까, 트릴로지는 늘 웰메이드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아주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수사 드라마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바로 <경시청 살인분석반(警視庁 殺人分析班)> 시리즈. 아, 물론 이 역시 3부작이다.


원작 소설이 있지만 한국어 번역본은 아직 없다. <살인분석반>은 수사물, 탐정물 장르에서는 매우 드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키사라기 토우코'. 그녀는 아버지를 이어 2대째 경찰이 되었다. 3부작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본다면 첫 장은 신입 경찰관의 좌충우돌 수사 1과 적응기, 두 번째는 지난 사건의 트라우마 극복 및 성장, 세 번째는 어엿한 베테랑 수사관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이다. 여태의 드라마와는 남다른 차별성을 지닌, 이 <살인분석반> 시리즈를 강력하게 추천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다채로운 캐릭터들. 주인공 원톱 드라마가 아니다.

물론 주연인 키사라기의 비중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으레 보던 주인공 원톱 체제가 아니다. 경시청 조직 전체를 다루며, 팀플레이를 중시한다. '수사는 혼자 할 수 없다',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을 배치한다'라는 대사도 작중에서 다루어진다. 어느 정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 잘 나누어져 있다. 이 점은 시리즈가 하나씩 진행될수록 더욱 돋보인다.


특히 키사라기의 수사 파트너인,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가 연기한 '타카노 히데아키' 주임은 이 드라마에서 가히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최근 그를 주연으로 한 스핀오프까지 나왔으니 말이다.토마토 주스를 좋아하고, 각종 증거를 사진으로 남기는 습관 등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존재가 굉장히 돋보이고 또 빛난다.


2.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을 차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일본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점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많다. 이 시리즈는 여성을 그런 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불필요한 묘사도 없고 설정도 없다.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


3. 러브라인이 없고, 덕분에 진행의 흐름이 빠르다.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는 꽤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5부작 안에 모든 스토리를 압축해서 담아내야 했기에 진행이 굉장히 빠르다. 그 흔한 러브라인조차도 없다. 오로지 사건 수사라는 단 하나의 주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 외에도 영상미라던가, 소위 말해 '쪼는 맛'이 살아있는 긴장감, 몰입을 돕는 준수한 퀄리티의 OST 등 칭찬하고 싶은 요소가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




<살인분석반> 시리즈 전체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체 유기 사건 등 흉악한 범죄를 다룬다. 첫 번째 작품 <돌의 고치>의 범인은 피해자를 고문 및 잔인하게 살해 후, 그 사체 위에 콘크리트의 일종인 모르타르를 부어 굳히는 충격적인 행각을 벌였다. 이렇게 굳혀진 사체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잘 아는 폼페이의 희생자들을 연상시키는, 말 그대로 '돌로 만들어진 고치와 같은'의 모양이 되었다.


범인은 자신을 천문학과 점성술로 유명한 '프톨레마이오스'에서 따온 '톨레미'로 자칭한다. 그는 경시청 수사본부에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하고, 사건 해결에 대한 힌트 아닌 힌트를 제공하는 등 경찰을 대상으로 대담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지능적이고 용의주도한 이 범인과 맞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경시청 수사 1과 형사들의 노력과 활약을 그린 것이 이 드라마의 주 내용이다.


이하는 스포일러 주의.



Screenshot 2025-09-24 at 4.45.44 PM.png
91fsecefk7L._AC_SL1500_.jpg
출처: Amazon Japan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바로 17년 전에 일어난 한 유괴 사건이다. 피해자는 야기누마 타카아키의 아들 마사토, 그리고 그의 부인. 범인이 제시한 몸값은 6천만 엔.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형사 '키사라기 이사오', 즉 키사라기 토우코의 아버지가 수상함을 감지하고 추가 조사를 하다 공범의 칼에 찔려 큰 부상을 당한다. 그 때문에 몸값 전달에 실패했고, 며칠 후 아들은 빈 집에서 발견되었지만 부인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사실 이 사건은 야기누마 타카아키 본인의 자작극이었다. 빚을 갚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지인과 함께 이를 공모했는데, 원래는 아들인 마사토 만을 유괴하려 했지만 하필 그 장소에 자신의 부인이 나타났다는 이유로 함께 납치했다. 또한 그는 아내가 공범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방조했다. 돈 때문에 자신의 가정마저 파괴하는,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나를 보여주는 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돈이란 것은 절대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마저 썩힐 것이다.


또한 이는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불운이 겹쳐 어떻게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지,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마저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유괴 후 감금 당했고,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으며, 풀려나고 난 후에도 사건의 공범 중 하나였던 자신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야기누마 마사토의 인생은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슬픔과 분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경찰을 대신해 자신이 직접 그 범인들을 심판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톨레미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톨레미와 키사라기의 관계는 참으로 소름 끼친다. 17년 전 자신의 아버지가 담당했던 사건의 어린 피해자가 바로 이 사건의 범인인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 아닌 과오로 그의 딸인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모든 계획을 감행했다는 것. 또한 톨레미의 그 모든 수상쩍기도 했고 대담했던 행동들이 전부 처음부터 키사라기를 노렸다는 것 역시 놀라웠다. 수사 첫날 특수본부에 전화를 건 것도, 위험을 무릅쓰고 경시청에 찾아와 사진을 두고 간 것도 전부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91P3Vb8Hz7L._AC_SL1500_.jpg 출처: Amazon Japan


추리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답게 곳곳에 여러 복선들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초반에 있었던 아주 강력한 복선 하나는 굉장히 짧게 언급되기도 했고, 극 초반의 내용이라 쉽사리 주목하지 못한다는 점을 노린 듯했다. 바로 첫 번째 피해자가 심장이 좋지 않았다는 것. 이것은 마지막 화에 심장 제세동기(AED)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이 점을 작중 타카노 주임 형사는 계속해서 신경 쓰고 있었다. 피해자의 상반신만 알몸이었던 데다, 가슴 부위의 모르타르를 굳이 일부분 떼어낸 것. 이 기묘한 위화감의 원인은 바로, 피해자의 가슴에 남겨진 심장 제세동기의 흔적인 화상 자국에 주목할지도 모르는 경찰의 수사 방향에 혼선을 주려한 범인의 의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 내내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다뤄지는 곳이 있다. 영업이 끝나면 수사 1과 형사들의 아지트처럼 변신하곤 했던 'OB's Cafe'. 톨레미는 그곳의 아르바이트 직원 중 하나였는데, 그는 정보를 캐내기 위해 경찰들이 자주 가는 그 가게에 몰래 잠입했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에서 키사라기를 만나게 된 것 역시 모골이 송연한 반전이었다. 실제로 범인이 그곳에서 일하는 장면은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기에 더욱이.


그 밖에도 동료들로부터 집에 전화 좀 자주 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메일로만 어머니와 연락하던 키사라기의 행동이 마지막 화에 있을 결정적인 사건의 원인이 된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복선과 서사들이 드라마 전체에 촘촘하게 깔려있다. 이러한 소소한 점들에 주목하며 보다 보면 정말이지,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돌의 고치>를 넋 놓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건지, 이후 <살인분석반> 시리즈는 2편인 <수정의 고동>, 마지막 편인 <나비의 역학>이 추가되어 총 3부작으로 마무리된다. 제작진의 인터뷰 및 캐릭터의 묘사나 연출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나머지 두 작품들도 추후에 계속해서 다루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첨언하자면, 이 시리즈는 반드시 순서대로 볼 것을 권장한다. <돌의 고치>, <수정의 고동>, <나비의 역학> 이 순이다.




댓글과 좋아요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밴쿠버에서의 세 가지 소소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