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게. 고마워, 날 행복하게 해 줘서.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제한된 러닝타임 때문에 내용이 많이 잘려 나간 부분이 아닐까. 원작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크게 치고 가는 부분은 바로 후반부이다. 라일랜드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로키를 구하러 가는 결심을 하는 대목인데, 이것이 너무 간단하게 묘사된 점이 정말로 아쉬웠다.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아득한 우주에서 만난 로키는 그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마침내 임무를 달성하고 각자 서로의 별로 향하면서도 라일랜드는 그를 못내 그리워한다. 지구로 향하면서도 틈틈이 로키의 위치를 추적하며 말이다.
로키를 구하러 가야겠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고, 우주선의 방향을 돌리기 전까지도 그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또한 로키를 구하러 가는 그의 여정이 주는 그 무게감이란. 이 여정이 이어지는 배경은 동네 시골 마을도,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심지어 한국에서 미국까지의 거리도 아니다. 빛의 속도로도 몇 년이 걸리는 광년의 단위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된 둘의 재회는 실로 감동적이다.
그 밖에도 중간중간 현실적인 이유로 가위질당한 흔적들이 꽤 보인다. 하지만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를 감상한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굳이 읽지 않아도 흡족하게 감상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것은 나처럼 책을 읽은 사람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더 깊은 울림을 준 이유는 바로 라일랜드라는 주인공의 성격적인 부분이 크게 한몫했다. 그는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실수도 잦고, 결함도 있고, 요즘 말로 '회피형'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결국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위험을 감수해 낼 정도로 성장하는 스토리라니.
만약 그가 완벽하고 이상적인, 마치 영웅적이고 고결한 면모를 갖춘 사람이었다면 후반부에서 로키를 구하러 가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그만큼 감동할 수 있었을까? 그 누구도 아니고, 라일랜드 그레이스였기에 이는 더욱더 가슴을 찡하게 한다.
또한 둘의 단단한 우정이 아니었다면, 이 둘은 결국 어느 한쪽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탐정 만화 주인공의 대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는 굳이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로키가 라일랜드를 구했던 것도, 반대로 라일랜드가 로키를 구한 것도 어쩌면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작가 앤디 위어는 인류에 대한 애정과 낙관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다른 작품 <마션>, <아르테미스>를 모두 읽어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런 작가의 따스한 시각과 관점이 가장 오롯이 잘 투영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몇 마디를 인용해 보고자 한다.
"I am an optimistic person, and I have a very high opinion of humanity."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고, 인류를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People come together when there is a time of crisis and help each other. And that's fundamentally who we are as a people."
(사람들은 위기의 상황이 생기면 함께 뭉치고 서로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으로서 우리의 진정한 본질적인 모습이죠.)
20대의 치기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30대에 접하며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의 원리랄까 역학이랄까, 그런 것이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게 결국 이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고.) 부정적인 의도나 영향력으로는 절대 그 반대를 궁극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이 점차 굳어지는 차에 비슷한 관점을 제시하는 앤디 위어의 이 책이 정말이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총 세 부분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첫 번째, 이렇게 아름답고도 유쾌한 우정을 쌓은 그 둘이 결국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과학자와 엔지니어라는 찰떡 같은 궁합을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조금씩 착잡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두 번째, 라일랜드가 죽음을 각오하고 마침내 로키를 구하러 가는 결심을 굳혔을 때. 한층 성장한 그의 마음가짐이 대견하게 느껴지면서도 또 한없이 감동적이었다. 라일랜드 너 짜식, 대단해.라고 말이다.
세 번째, 로키의 행성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라일랜드가 지구를 구했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을 때. 한때 놓쳤다고 생각했던 삶의 희망을 다시금 부여잡으려 할 때. 특히 이 대목에서는 밀려드는 감정을 정말이지 어찌할지 몰라서, 책을 잠시 덮고 한참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앤디 위어는 실로 뛰어난 작가이다. 어쩜 이런 식으로 감정의 빌드업을 차곡차곡 쌓아 터뜨릴 생각을 했을까.
지난 일주일 동안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으면서, 그리고 또 영화로 감상하며 너무나도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어떤 작품을 감상하며 한없이 깊이 빠져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경험을 했다. 실없이 깔깔거리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기도, 또 북받쳐 오는 감정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참고로 나는 일 년에 우는 적이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감정의 진폭을 느끼게 해 준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원작자 앤디 위어에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앤디 위어에게 보낼 이메일을 쓰러 가야겠다. 읽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