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산후기
어릴때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 교회 예배드리고 집 앞 산에라도 올라갔었다. 전국에 있는 높은 산들(- 덕유산,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다른 산은 기억이 안남)을 다 다녔었다. 그때는 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다녔다. 그 덕분인지 누가 산에 가자하면 얼른 따라 나서게 된다.
그런데 이제 좀 나이가 드니까 주위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등산이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등산 사진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가고 싶고 간절함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혼자서 가는 산행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가깝기도 하고 교회 청년들과도 가본 적 있는 '아차산'을 가보기로 했다. 드디어 혼산을 하게 되었다.
평일이었지만 사람이 늘 많은 아차산이라 걱정안하고 갔는데 중간중간 길이 헷갈려서 살짝 길을 잃을 뻔 했다. 사잇길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면 그 또한 무섭더라. 정산에 가서는 좋았지만 사실 오가는 길이 살짝 무서웠다.
다시 아차산을 갈 수도 있었지만 선뜻 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못 다니다가 생일인데 뭔가 하고 싶은거 해야하지 않을까 해서 혼산을 다시 감행했다. 혼산으로도 무리 없고 길도 쉽고 모든 조건이 맞는 '민둥산'이 목표가 되었다. 차로 충분히 올라가면 3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차로 가지 않아도 편도 2시간 안으로 올라갈 수 있는 쉬운산이라고 했지만 길치인 나에게 좀 망설여졌다. 그래서 최대한 차로 올라가보자 했다. 비온 뒷날이어서 땅이 진흙길도 있고 외길에 운전이라 앞에 차가 내려오면 길을 비켜줘야하는 상황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해서 이제 조금만 오르면 인스타에서 보던 그 장면을 볼생각에 흥분했다.
처음 오르는 길은 표지판을 따라 오르기는 했으나 오르고 보니 경사진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종아리 당기고 숨이 턱까지 찼다. 운동 좀 하고 올걸. 준비 운동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온갖 후회가 밀려오며 한박자 쉬게 되었다. 이러다 죽겠다 하면서.
그 길을 벗어나니 풀밭길 사이 계단길이 보였다. 천국 가는 길 같이 예뼜다. 저기라면 갈 수 있겠다 다시 힘을 내보았다.
예쁜 길을 오르고 오르다 보니 저 멀리 산들이 보이고 높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곳의 특이한 지형이 드러났다. 꼭 백록담처럼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고여있다. 돌리네 지형이라고 한다.
돌리네 지형도 너무 예쁘고 신기했지만 사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이 너무 예뻤다.
혼자 한참을 낮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원도 정선 민둥산을 내려와서 동해로 이동하면서 한번 더 산 아래를 보게 된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길에 보이는 산아래 풍경은 또한 진풍경이었다. 구불구불 길을 달리다가 결국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산들이 뻗어있는 모습, 하늘, 그리고 가까운 구름이 보이니 아무 생각 없어지고 무념무상 바로 그 지점 인것 같았다.
그 다음날도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설악산 폭포를 보러 나섰다. 폭포를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가장 좋았던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산 사이 카메라를 당겨보면 바로 속초 아바이마을이 있는 바다가 보였다. 계단을 오르며 힘겨웠는데 쉬려고 돌아앉아 보이는 전경에 그만 탄성이 나왔다.
아... 내가 좋아하는건 정확히는 산이 아니라 산에 올라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산에 올라가면 시선이 바뀐다. 매일 바쁘게 지내고, 삶의 무게가 짓누를 때 찾아간 산이었다. 그런데 오를 수록 무게가 사라지고 내가 걱정하고 붙들고 있는 일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느껴진다. 아... 그래서 산을 오르고 싶었구나. 내려놓고 비워내고 싶어서. 또 다른 숨구멍을 찾았나보다.
등산을 함께할 메이트를 찾으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6개월에 한번은 등산을 가야겠다. 정신줄 놓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지 않기 위해서 의지적으로 비워내고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