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버텨!

by 사부작

'버텨'.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깊이 소망하는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든,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마주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든, 삶의 어느 단계에서는 지독히도 버텨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업이 아직 안정기에 들어서지 못한 자영업자분들의 하루하루 또한 그러한 순간들의 반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내가 가게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의 경제활동 인구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자영업이 힘든 길임을 미리 알고 업계에 뛰어든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 대한민국은 미국(6%), 일본(10%)에 비해 월등히 자영업자 비중이 높으며, OECD 국가 평균인 15%보다도 매우 높은 편입니다.




아내의 꽃집 옆에는 카페하나가 있습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늘 주위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친절한 여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입니다. 맛에 진심인 사장님은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케이크를 잘 모르긴 하지만, 사장님이 만드는 케이크는 누구라도 맛본다면 다시 생각나게 할 만한 수준의 맛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양질의 베이커리,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너무도 많은 요즘, 맛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데요, 어느 날 아내의 꽃집으로 사장님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바로 옆 카페인만큼 친한 사이인터라 그날도 카페 사장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꽃집에 들어선 사장님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 혼자만 생각하면 더 버틸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상황이 너무 어려워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을 거 같아요.’ 라며 어려움을 토로하더란 것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며, 대출이며 이미 한계까지 다다른 탓에 더 이상 기댈 수 있는 곳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막막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 앞에서, 사장님은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가끔은 가족, 친구에게도 말 못 할 얘기들이 있으니까요. 아내는 좀만 더 ’ 버티면 ‘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이 입 안에 맴돌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버티면 좋은 날이 오긴 하는 건지 아내 또한 모르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최근에 아내와 함께 방문한 이탈리아 식당 또한 여사장님 한 분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작고 아늑한 공간에 들어서면 바 형태의 좌석들 몇 개와 테이블 하나가 배치되어 있고, 한쪽에는 이탈리아 설탕 브랜드 패키지들이 우표 컬렉션처럼 가지런히 전시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주방은 완전히 오픈되어 셰프님의 동선 하나하나를 매우 자세히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바에 앉으면, 셰프님의 칼질부터 직접 면을 뽑는 것까지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영상을 시청하는 기분마저 듭니다. 이곳의 메뉴는 다른 곳들과 다릅니다. 봉골레며, 크림 파스타며 흔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찾아볼 수 없고 아라비아따, 오징어 구이, 올리브 절임 같은 정갈하고 소박한 메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맛도, 요리가 본래 태어났던 곳의 맛을 재현한 듯 화려하지는 않지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충만함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며, 사장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장님,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요! 다른 곳들과는 무언가 다른 거 같아요, 먹으면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원래 제가 고객 분들에게 대접해 드리고 싶었던 것도,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집에서 먹는 집밥이었거든요. 일상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런 음식들을 먹으며 살아가는데, 그것들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다, 아내가 옆에 높여져 있는 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책 제목은 '계속 버텨'였는데요, 아내 역시도 사업을 하며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말 중 하나가 '버티기'였기 때문에, 눈길이 갔던 것 같습니다. 책에 관심을 가지니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의지하는 말이에요.'라며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자기가 이 식당을 열었을 때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는데, 대중과 현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무너지는 순간들이 많다고 합니다. 방문한 고객분들 중 누군가는 봉골레는 없냐며 다른 메뉴들을 찾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은 식당이 더 잘되기 위해서는 조금은 대중적인 메뉴들이 필요하다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럴 때마다 사장님은 '계속 버티자'를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합니다. '계속 버텨'라는 문장이, 식당을 다녀온 후에도 한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자영업자 분들이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무게를 버티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모르는 이 길 위에서, 자기 마음속에 간직한 꿈 혹은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낼 거라고 말입니다. 삶은 너무도 잔인해서, 이렇게 버틴다고 해도 그 끝에 기다리던 행복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불운이 불쑥 찾아와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갈지도 모르죠. 문득, 제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버텨야 할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버티지 않고 무너졌으면 합니다. 땅에 떨어질까 꽉 붙들고 있던 동아줄을 놓아도, 추락이 아니라 착지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옆에 폭신한 매트가 되어줄,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더더욱이 말입니다. 기대라는 마음의 빚이 쌓이지 않도록, 자주자주 마음을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버티어냄이 의미가 있는 건 대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 한 인간의 고귀함이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니까요.

아내도, 당신도, 우리 모두 각자의 길을 걷다가 각자만의 결승선에 무사히 다다랐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마주칠 서로에게, 따뜻하게 미소 지어 주는 것도 잊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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