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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부작

아내의 꽃가게는 일주일 중 하루를 쉽니다. 다른 업장들 또한 하루를 쉬는 곳이 대부분이고, 쉬는 날이 없는 곳도 많습니다. 고객분들 중 많은 비중이, 주말이나 공휴일에 여유 시간이 생기니, 사장님 입장에서 주말/연휴에 장사를 하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평일에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적잖게 계시니 평일 영업은 당연한 거고요. 요즘 같은 연말 연휴에는, 평소보다 일찍 영업을 준비하고 마감은 더 늦어지는 일이 많아, 하루를 이틀처럼 보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의 영업 여부가 매월 벌어들이는 수입과 직결되므로,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 때문에 '일'과 '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도 더 쉬운 게 아닐까 합니다.




아내의 가게 영업시간은 휴무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평일에는 11:00~18:00, 주말에는 11:00~15:00입니다. 해당 시간대에 고객분들의 문의나 상품 픽업 등을 응대하고, 예정되어 있는 상품 제작들도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은 '영업시간'일뿐, 실제 '근로시간'과는 많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영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고객분들이 가게에서 보는 꽃은 배송을 통해서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도매 꽃 시장에 방문하여 직접 장을 보는 방식으로 들여온 것들입니다. 가게 규모가 커서 사입하는 물량이 많거나 가게로부터 시장이 너무 멀어 배송비를 부담하고 꽃을 사입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소매 꽃집들은 그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녀의 동료 플로리스트들만 하더라도 일산, 이천, 천안 등지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데, 강남 고속터미널에 있는 도매 꽃 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닙니다. 일주일에 세네 번만 오고 가고 하더라도 대략 8-10시간을 거리 위에서 보내는 셈이고, 시장에서 꽃을 고르고 구매하는 1-2시간을 감안하면, 일주일에 장을 보는 시간만 10시간이 훌쩍 넘습니다.


꽃을 사입하기에 앞서 주문 요청사항이 있는 경우 고객과의 상담도 진행하고는 하는데, 고객의 문의는 영업시간을 가리지 않습니다. 저녁 시간은 물론이고 밤 12시에 DM으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휴무일, 공휴일도 예외는 아니죠. 고객분 입장에서 그날 그 시간에 꼭 연락을 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고, 평소에는 바빠서 연락이 가능한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문의가 가능한 시간을 영업시간으로 제한하는 것도 초보 사장님 입장에서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게 응대하다 보면 쉬는 날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일에 할애하게 됩니다. 마음 편히 휴식을 한 것도, 충실히 일에 임한 것도 아닌 하루가 그렇게 또 쌓이는 거죠.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일과 삶의 조화(work and life harmony)를 강조하는데, 일로부터 얻는 만족감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만족스러운 삶이 일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면서 서로 선순환을 만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분명 그의 말은 이상적인 형태의 삶의 방식 중 하나이고, 성과를 만들어내기에도 적합해 보입니다. 다만, 그것이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진 상태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에너지를 얻어야 할 원천인 개인의 삶에 일이 희석된다면, 오히려 일을 지속할 힘과 열정이 채워지지 못한 채 본인의 삶조차 고갈시켜 버릴지도 모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갈 때 가장 중요한 건 빠르게 가는 것도, 타인이 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닐 겁니다. 1cm라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나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게, 인생이란 게임에서 지켜야 할 몇 안 되는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꾸준함의 원천이 개인의 온전한 ’ 쉼‘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듯 무엇이 제대로 쉬는 것인가에 대한 막막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일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것,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을 만들어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들을 위한 시간을 삶 속에 마련해 두는 것이 ‘쉼’의 시작이지 않을까 합니다. 시급한 일이 아니라면 그러한 '쉼' 때문에 내일로 일을 미뤄두는 건 괜찮습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좀 더 채워진 나로 일을 대하기 위한 예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에 진심일수록,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렇지만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아직 당신만의 OFF 스위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포기하지 않고 꼭 찾아내셨으면 합니다.



자영업자들에게 참 바쁜 시기인 연말입니다. 한 해가 지나가는 순간까지 소망하는 무언가를 위해,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그들에게 응원과 감사를 보냅니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짧은 시간일지라도, 수고한 당신을 위해 잠시 스위치를 OFF 해두시길.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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