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

by 사부작

아내의 일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하는 행복한 일이지만, 때로는 고객의 차가운 말과 행동에 마음을 쉽게 다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모든 업이 그렇겠지만, 돈을 대가로 유/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래’라는 행위는 인간성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정성껏 꽃을 다듬고 가꾸는 손길 뒤에는, 무심코 던진 고객의 말과 행동에 베인 생채기도 남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하루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얘기하는 주제 중 하나가 고객분들로 인해 상처받거나 마음이 안 좋았던 순간들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고객분들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시긴 하나, 마음에 감정을 묻어두는 아내의 성향 상 몇몇 분들의 차가운 언행이 더 깊게 흔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고객분들과의 불편한 경험은 작게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서부터 꽃의 상태나 디자인과 관련된 불만으로 비롯됩니다. 밤 12시에 예약 문의를 하는데, 가벼운 인사도 없이 물어보고는 답변을 들은 후 답장도 없이 사라진다거나, 오후 2시에 꽃을 픽업하기로 했는데 오후 3시가 넘도록 연락이 안 된다거나 하는 등의 일들은 수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가끔은 꽃 상품을 픽업하러 오시고는 자기가 원했던 색깔이 아니라며 환불하거나, 사진으로 요구했던 디자인이 아니라며 실망했다는 리뷰를 남기기도 합니다. 이전 글들에서 적었지만, 꽃은 표준화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므로 같은 꽃이라도 도매시장에 들여오는 날짜가 다르면 미세하게 색감이나 크기 등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객분이 요구하는 꽃 디자인의 대부분은 과거의 특정 레퍼런스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 계절 상 다른 꽃들로 대체할 수밖에 없으니 똑같은 디자인의 꽃다발을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상담 시 미리 안내를 드리기도 하고, 주문 페이지 내 안내 문구도 기재되어 있지만 일부 고객분들에게는 닿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객분들이 더 이해하기 쉽도록 안내 문구를 작성하면 어땠을까, 상담 시 더 세심하게 고지하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고민도 해봅니다만 상행위를 갑과 을의 관계로 바라보는 분들에게는 그것 또한 소용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니 상품에 대해서 얼마든지 요구할 권리가 있다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는, 그들이 정한 상품의 교환가치 외에 다른 것들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판매자는 고객에게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재화인 만큼, 충분한 상품성을 담보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품을 어떻게 구성할지 그리고 이에 어떤 가치를 매길지에 대한 권리가 있습니다. 고객은 여러 선택지들 중에 한 가게 혹은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나, 선택하기 전 판매자가 제공하는 상품의 특성과 안내 사항을 살펴보고 선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와 권리의 범위는 사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거래행위는 단순히 상품과 돈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서,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구성원과 나 사이에 관계가 생김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므로 서로의 관점과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최소한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누군가의 시간이 소중함을 이해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말을 경청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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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누군가의 친절이 아닐까 합니다. 늦게 문의를 남기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분, 픽업 시간이 조금 늦는 것에 대해 미리 연락해 아내가 막연히 기다리지 않게 하는 배려가, 상처받은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된다고 하더군요. 꽃다발을 아름답게 만들어 제공하는 일이 꽃집으로써 해야 할 당연한 일임에도, 굳이 시간을 내어 '아름다운 꽃다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다발 너무 이뻐요! 부모님이 꽃다발 받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등의 멘트를 남겨주시는 것도 아내에게는 커다란 보람이자 힘을 얻는 순간인 듯합니다.


가끔은 아내가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신뢰나 애정이 생기지 않을 거 같다고, 마음의 문이 닫혀 열리지 않을 거 같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나 저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결국 '사람'을 통해 치유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가까운 미래에,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정교하게 학습한 AI가 고객과의 상담도 대신해 주고, 꽃다발을 대신 건네주는 날도 오겠지만 그럴수록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특별한 자리이니 조금 더 신경 써서 꽃다발을 만들었다는 사장님의 말 한마디로 기분 좋을 하루를 보낼 누군가도, 준비해 놓은 꽃다발에 환한 미소로 감사함을 얘기하는 고객분 덕에 따뜻함을 느끼는 누군가도 그때는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비록 오늘 누군가에게 마음을 데었을지라도, 결국 우리가 다시 살아갈 동력을 얻는 곳은 ‘사람’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내의 꽃집에 상처보다는 사람의 온기와 다정함이 오래 머물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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