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꽃

by 사부작

이제 3월입니다. 2026년의 두 달이 벌써 이렇게 지나갔다니, 매번 느끼지만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아침의 찬 공기가 누그러지고 햇살의 따스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이 계절에는, 겨울에 보지 못했던 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가에 피는 개나리부터, 작약처럼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꽃들이 꽃시장에 출하되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가게를 시작한 뒤로는 어느새 계절의 변화를 꽃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계절의 꽃들 중 아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꽃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라넌큘러스(Ranunculus)는 수백 장의 꽃잎이 겹겹이 쌓여있어 개화하는 동안 그 아름다움을 오래 누릴 수 있는 꽃 중 하나입니다. 매력이라는 꽃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꽃이죠. 다른 꽃들처럼 줄기와 꽃잎이 볼품없는 모습으로 마르며 죽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후두둑 떨어지며 생명을 다하는 모습 또한 여타 꽃들이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입니다. 라넌큘러스는 4월을 끝으로 개화 시기가 끝이 납니다. 가장 추운 겨울로부터 시작해, 가장 만개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후 한 동안 볼 수 없는 꽃이라 더 애정이 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라넌큘러스 꽃다발]


아네모네(Anemone)는 아내가 꽃집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름은 물론이고 비슷한 생김새의 꽃은 본 적도 없을 만큼 제게 생소한 꽃이었습니다. 아네모네는 검은 수술과 대비되는 꽃잎의 색감 조화와, 오므린 잎이 활짝 폈을 때의 아름다운 화형이 돋보이는 꽃입니다. 여린 줄기에 대비해 생각보다 꽃송이가 커 약해보이기도 하지만, 물이 빨리 내리는 꽃은 아닙니다. 아네모네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화이트, 블랙의 색채 대비를 통해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고 우아한 느낌은 아니지만, 신비로운 매력이 있어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꽃입니다.


[아네모네 꽃다발]

설유화는 이름 그대로 '눈이 내린 나무, 꽃'이라는 뜻을 가진 꽃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눈이 내린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요, 설유화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며 나뭇가지에서 작은 하얀 꽃들이 촘촘하게 피어나는 게 특징입니다. 봄이 되면 교외나 공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멀리서 보면 가지 위에 잔 눈이 내린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설유화는 메인 재료로 쓰이기보다는 꽃다발의 소재로써 많이 활용되는데요, 나뭇가지가 일직선을 곧게 뻗지 않고 다양한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어 꽃다발의 자연스러운 라인감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고 합니다. 이 시기 아내의 꽃다발에 단골 소재로써 정말 많이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설유화가 주요 소재로 쓰인 꽃다발]


작약은 꽃의 왕이라고도 불릴 만큼 화려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입니다. 이 꽃은 사실 4월은 돼야 본격적으로 제철을 맞이하는 꽃인데, 대중들이 좋아하는 꽃인 만큼 꽃 시장에는 벌써부터 작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개화하지 않은 작약은 단단한 공 같은 모습인데요, 물이 오르고 개화하기 시작하면 그 어떤 꽃보다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가끔은 몇 송이 만으로도 공간을 채울 수 있겠다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작약의 봉오리 겉에는 끈적한 당분이 묻어 있어 잘 썩는 경우도 많고 꽃잎이 붙어서 피지 못할 때도 있는데요, 그만큼 사입 후 컨디셔닝에 손이 많이 가는 꽃이기도 합니다. 가정의 달이면 저도 여러 날 작약의 봉오리를 물티슈로 열심히 닦고는 하는데, 그때는 그리 힘들어도 봄이 되면 꼭 생각나는 꽃입니다.


[작약 꽃다발]


프리틸라리아(Fritillaria)는 어쩌면 아네모네(Anemone) 보다 더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 있는 꽃일 것 같은데요, 줄기 끝에 매달린 작은 종 모양의 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 꽃잎에는 자주색의 체크무늬 패턴이 새겨져 있어, 처음에는 좀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연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잘 짜인 기하학적 패턴과 아래로 늘어진 종 모양의 꽃송이가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꽃입니다. 삐죽 솟아오른 줄기와 대비되게 꽃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고객분들이 종종 시들었다고 오해하시는 경우도 발생하는데요, 그에 비해 가격은 비싼 수입 꽃이기도 해서 아내가 사입할 때 자주 망설이는 꽃입니다.


[프리틸라리아를 활용한 부케]



옆에서 아내가 꽃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고객분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꽃들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기념일마다 사는 꽃들이 딱 정해져 있고 1인당 녹지 규모가 크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니, 볼 수 있는 꽃들이 더 제한적이죠. 저 또한 아내가 꽃집을 시작하기 전, 세상에 이토록 많은 종류의 꽃들이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다양한 꽃들을 알게 된다고 해서 경제적인 수준이나 실질적인 이득이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다양한 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는 건 조금이나마 삶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꽃이 생기고, 계절마다 변하는 꽃들을 느끼는 그 작은 일들이, 어쩌면 삶을 풍요로워지게 하는 큰 요소이지 않을까요.




일요일 연재
이전 20화플로리스트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