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로부터 들은 동료 플로리스트 분의 얘기입니다. 그녀는 최근 잡지 촬영 시 활용되는 꽃 구조물이나 소품을 만드는 역할로 섭외되어, 해외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수임료는 비행기, 호텔 비용 등 지원되지 않는 여타 제반 비용을 감안하면 없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적었습니다. 그녀의 업계에서의 위치나 경력을 고려했을 때 언뜻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도 시장에서의 '꽃일'이 차지하는 위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레퍼런스와 경험을 쌓을 겸 수락했다고 합니다.
촬영은 2박 3일 간 진행되었습니다. 도착 후 첫날은 촬영 준비 및 세팅이 진행되고, 두 번째 날부터 메인 촬영이 이어지는 일정이었죠. 꽃의 경우, 카메라나 조명장비와는 달리 미리 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현지에서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한국에서 미리 찾아놨던 현지 꽃 시장을 방문하여, 촬영 컨셉에 맞는 꽃들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죠.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아무리 인터넷으로 최근 정보를 찾는다 한들 해외 시장이나 상점의 디테일한 상황들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역시나, 본인이 생각했던 꽃들이나 소재들을 찾을 수가 없었고, 원래 계획했던 장소들 외에 현지 사람들을 통해 어찌어찌 알게 된 다른 시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장을 보고 있던 중, 갑자기 현지 스태프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선생님, 어디세요? 내일 촬영 시작하면 쉴 시간도 없으실 텐데, 오늘 푹 쉬셔야죠. 여기 다른 스태프들이랑 다 같이 호텔 수영장에 있으니 어서 오세요.'
스태프의 말에 잠시 망연자실했지만, '준비해야 할 것들이 좀 많아 같이 쉴 수 없을 것 같으니 신경 쓰지 마시고 푹 쉬세요.'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루종일을 돌아다녀 사입한 꽃들을, 숙소에 가지고 와 컨디셔닝을 하기 시작했는데, 촬영 예산 상 추가 지원 인력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벽이 다 되어서야 준비가 끝이 납니다.
다음날 오전, 촬영을 위해서는 장소 세팅이 먼저 필요하므로 그녀는 스태프들 중 가장 일찍 일어나 플라워 센터피스(플로럴폼이나 기타 구조물에 꽃을 꽂아 만드는 장식품)와 소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촬영 시간이 늦어지는 건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말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정신없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촬영 동안, 꽃의 배치나 상태를 체크하며 촬영 상황에 맞게 수정하는 일이 진행되고 저녁이 다돼서야 촬영이 종료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마저도 쉴 수 없었습니다. 배치했던 꽃 구조물이나 소품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 역시나 그녀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내를 도와 잠깐 해보았지만, 뒷정리는 꽃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힘이 듭니다. 물을 머금은 플로럴 폼을 정리하는 것부터, 꽃을 고정하기 위해 설치한 각종 소품들까지 물리적으로 힘이 필요한 일이 많습니다. 주변 스태프 분들이 조금 도와주시기는 했지만, 꽃과 관련된 모든 일의 시작과 마무리는 본인 책임이었으므로 다른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처지였으니, 촬영 마무리 또한 정말 고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촬영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참 생각이 많아졌다고 하네요.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받아가는 보상 또한 거의 없었으니 본인의 일에 대한 현타(?)가 올 만도 합니다.
아내는 본인이 존경하는 꽃 선생님이자 동료인 그녀의 촬영 후기를 듣고 나서 공허함이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꽃'은 아직 조연일 수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네요. 해외 촬영뿐만 아니라, 국내 웨딩 촬영에서의 과정이나 대우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물론, 촬영에 있어서 촬영작가님들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작업까지 그 가치를 먼저 인정받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꽃'이라는 분야에 대해 단순히 '꽃을 사서 꾸미는 것' 외에 사회와 대중이 인지하는 영역에 한계가 있음에 대한 서글픔이기도 하겠습니다.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피사체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배가 되게 하고 공간에 어울리는 무드로 표현하는 데는 뛰어난 감각과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꽃이 가진 색감, 라인, 화형, 높낮이를 조절하여 꽃들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은, 다양한 식재료로 맛을 만들어내는 요식업이나 다양한 소재로 옷을 만들어내는 의류업과 다르지 않죠. 꽃다발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와 촬영 등을 위해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도 많이 있지만, 플라워 디렉터나 디자이너라는 사회가 인정한 직함보다는 '꽃을 잘하는 사장님'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어떤 걸까요. 아내나 아내의 동료 플로리스트들은 언제까지 꽃을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한다고 합니다. 좁혀지지 않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좀처럼 버티기 힘든 탓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 커피를 문화현상으로 만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처럼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을 불세출의 누군가가 등장할 수도, 코로나와 같은 거대한 사회적 변화로 인해 꽃일에 대한 사회의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 될까요.
저의 가장 큰 바람 중 하나는 제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일찍 찾는 건 인생에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의 비전이나 미래가 없어 보인다면, 그건 행운일까요 아님 불행일까요.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고 정답 또한 없는 문제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라면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뒤에 따라올 보상이나 경제적 성취가 담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만둘 수 없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일을 찾아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고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불행을 피할 만큼의 운과 지혜마저 제게 허락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은 그 길을 먼저 가는 아내의 우산 정도는 되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