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가을 날, 야외 웨딩 촬영을 위해 플라워 디렉팅 작업에 참여한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웨딩 촬영은 보통 촬영팀, 메이크업팀, 플라워팀 등 각기 분야를 나누어 구성한 팀들끼리 협업하여 진행하게 됩니다. 그중 플라워팀은 촬영에 필요한 꽃 전시물이나 소품들을 만들어 배치하는 일을 담당하는데요, 공간을 채워야 하는 만큼 많은 양의 꽃과 작업시간이 소요되므로 다른 어떤 팀보다도 일찍 현장에 도착하여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꽃은 미리 만들어놓고 준비하는 데 제약이 있다 보니, 현장에서 제작해야 하는 것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 날씨에 모자와 팔토시를 착용한 채 몇 시간을 야외에서 꽃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꽃을 담은 여러 개의 물통을 왔다 갔다 실어 나르고, 플라워폼과 꽃을 장식한 조형물을 장소에 세팅하고, 생각한 디자인에 맞게 꽃들을 자르고 꽂고 묶는 작업들을 계속하는 거죠.
꽃 세팅이 완료되면 비로소 촬영이 시작됩니다. 촬영하는 동안은, 바삐 해야 할 일은 없지만 꽃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 주고 촬영에 지장이 갈만한 상태인 경우, 다른 꽃으로 대체하거나 조형물 배치를 변경해 줍니다. 그렇게 장시간 촬영이 마무리되면, 배치했던 꽃 구조물이나 소품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 역시 플라워팀의 일입니다. 저도 아내를 도와 잠깐 해보았지만, 뒷정리는 꽃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힘이 듭니다. 물을 머금은 플로럴 폼을 정리하는 것부터, 꽃을 고정하기 위해 설치한 각종 소품들까지 물리적으로 힘이 필요한 일이 많은 거죠. 촬영팀과 메이크업팀 분들 모두 정리가 끝난 후에도 이 마무리 철수 작업은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각자의 업무 영역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고 이에 대한 인건비 등 각종 비용 또한 정해져 있으니, 다른 팀 스태프분들의 도움이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촬영 뒤풀이로 촬영팀과 메이크업팀이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내를 포함한 플로리스트 분들은 철수 작업을 진행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왜 저녁 먹으러 안 오시냐는 촬영 작가님의 전화에, 그저 웃으며 '저녁은 알아서 먹을게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네요. 그럼에도 사실, 경제적 보상은 촬영, 메이크업 분야에 비해 크지 않습니다. 아니, 꽃과 부자재 원가를 생각하면 턱 없이 작다고 해도 될 만큼 업계에서 매겨지는 대가가 적다고 하니, 이런 종류의 일을 정말 좋아하지 않고서야 계속 참여하기 어렵겠다는 것이 아내의 솔직한 소회였습니다.
아내는 웨딩 작업 참여 후에 공허함이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꽃'은 아직 조연일 수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네요. 웨딩 촬영뿐만 아니라, 브랜드 론칭 등 각종 행사 촬영에서의 과정이나 대우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물론, 촬영에 있어서 촬영작가님들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작업까지 그 가치를 먼저 인정받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꽃'이라는 분야에 대해 단순히 '꽃을 사서 꾸미는 것' 외에 사회와 대중이 인지하는 영역에 한계가 있음에 대한 서글픔이기도 하겠습니다.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피사체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배가 되게 하고 공간에 어울리는 무드로 표현하는 데는 뛰어난 감각과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꽃이 가진 색감, 라인, 화형, 높낮이를 조절하여 꽃들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은, 다양한 식재료로 맛을 만들어내는 요식업이나 다양한 소재로 옷을 만들어내는 의류업과 다르지 않죠. 꽃다발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와 촬영 등을 위해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도 많이 하지만, 플라워 디렉터나 디자이너라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함이 있다기보다는 '꽃을 잘하는 선생님'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어떤 걸까요. 아내나 아내의 동료 플로리스트들은 언제까지 꽃을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한다고 합니다. 좁혀지지 않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좀처럼 버티기 힘든 탓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 커피를 문화현상으로 만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처럼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을 불세출의 누군가가 등장할 수도, 코로나와 같은 거대한 사회적 변화로 인해 꽃일에 대한 사회의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 될까요.
저의 가장 큰 바람 중 하나는 제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일찍 찾는 건 인생에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의 비전이나 미래가 없어 보인다면, 그건 행운일까요 아님 불행일까요.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고 정답 또한 없는 문제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라면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뒤에 따라올 보상이나 경제적 성취가 담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만둘 수 없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일을 찾아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고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불행을 피할 만큼의 운과 지혜마저 제게 허락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은 그 길을 먼저 가는 아내의 우산 정도는 되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