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함

by 사부작

최근 영화, '왕을 사는 남자'가 열풍입니다. 1400만 관객 수를 넘으며 역대 흥행 순위 5위(3/21 기준)에 올라 침울했던 한국 영화계에 봄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크게 흥하면 그만큼 시시비비도 많아진다고 하는데, 표절 논란에 휩싸여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표절을 주장하는 이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연극 작품과 설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요, 제작사 측에서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창작물인 만큼 일부 소재와 인물 관계가 비슷할 뿐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입니다. 창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법적 제재나 대중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만큼이나, 예술작품의 표절 문제는 단골 기사 소재가 된 것 같습니다.


꽃으로 표현한 창작물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아내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옆에서 보니, 다른 플로리스트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라한 작업물들이 SNS 계정에 게시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사진을 찍은 구도와 배경까지 똑같이 말입니다. 꽃 예술은 영화나 책처럼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창작물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저작물입니다. 물론, 사진으로 영원히 이미지를 남길 수 있긴 하지만 작가의 고유한 아이디어와 고민이 영상과 텍스트 그 자체로 표현되어 영구 보존되는 창작물은 아닙니다. 또한 단순히 꽃을 조합하는 것으로 꽃 상품의 창작성을 치부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아내를 포함한 대중들은 '꽃'에 대한 저작권의 존재여부에 대해 의식조차 못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작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한 인간의 고유한 생각과 표현 방식이 새로이 창조한 물건에 담겨있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작물의 영구적 보존 여부보다는, 순간의 '창작적 표현' 자체가 저작권 보호의 핵심이라는 거죠. 물론 단순히 꽃을 화병에 꽂았다고 해서 모두 저작권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겁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꽃 디자인이 아니라, 플로리스트만의 생각이 독특한 색감이나 화형의 배치, 변칙적인 소재의 선택 등으로 표현되어야만 그만의 고유한 창작물로써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한 고유성이 담긴 꽃 상품이라면 그것 안에는 플로리스트의 고민과 그동안 쌓아온 감각들이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이쁜 꽃들을 조합하다 보니 나온 디자인이 아니라 모두 의도된 배치와 색 조합을 통해 표현된 아름다움이라는 거죠. 다만, 이 역시 다른 창작물을 통해 받은 영감들이 축적된 결과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일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창조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통해 습득한 무유형의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편집하고 재정의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활용하는 일은 막을 수 없고, 그것은 어쩌면 영감의 원천을 막는 일이 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의 고유한 아이디어들을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 안에 켜켜이 쌓아 숙성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것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대중들에게 꺼내어 놓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 순간에는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도 있고 그것이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대중들은 항상 ‘진짜’에 열광하고, 무언가 복제품이 되어버린 순간 그 가치는 빠르게 줄어갑니다. 무엇보다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시장을 확대시키지 못합니다. 고유한 내 것을 만들어 나의 영역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고객들을 유입시키는 일이고 그것은 시장을 조금씩 넓혀 갑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것을 따라 만들어낸 것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존의 수요를 옮겨올 뿐입니다. 시장 안에서 제로섬 게임을 하게 되는 거죠.


IMG_5285.jpg


내 고유의 것을 만든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과 생각을 세상에 꺼내어놓는 일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는 공포, 내가 가진 능력의 밑천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일이고, 가끔은 그런 개인의 창발성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하는 거겠죠. 누군가의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혹에 저항해야 합니다. 계속 경계해야 합니다. 함께 이 생태계에서 공존하는 동료의 노력은 무시한 채 단 기간 생존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을 원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일요일 연재
이전 22화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