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순간
심장아. 너도 알겠지만, 지난주에 말이야.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도수치료 해주시다 나한테 이렇게 물어보셨잖아. 혹시 요즘 일 안 하시냐고.
내가 그때 너무 깜짝 놀랐어. 하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법도 하지. 도수치료한 지 일주일만 지나도 그새 굳어갔던 목과 어깨가 적어도 보름은 평화롭게 이완돼 있었으니까. 굽은 등도 교정한 대로 계속 펴지고 있었잖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상태, 바로 일을 안 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직관적으로 알게 되신 것 같아. 나는 분명 휴직 중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목이랑 어깨, 등이 선생님한테 “저 요즘 쉬어요”라고 말이라도 했나 봐. 때로는 내가 일부러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다가왔어.
너도 그랬지? 심장 너, 나한테 줄곧 말을 걸어왔잖아. 목, 어깨, 등이 그랬던 것처럼. 나, 실은 알았어. 종종 네가 달리고 있음을 느꼈어. 네가 달리는 것 같으면 머릿속으로 ‘가만히 있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지’라고 생각하며 어쩔 줄 몰라하곤 했어.
네가 도저히 잠잠해지지 않는 날에는 약을 먹기도 했지.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하얀 알약을 반으로 쪼개서(일명 ‘필요시’ 약이니 시험 삼아 절반씩 먹어보라고 하셨잖아. 기억하지?)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서둘러 넘겼어. 불안 증상이 심할 경우 복용하라고 처방받은 신경안정제였던 걸로 기억해.
미안해. 내가 요 근래 심리 상담도 받고 번아웃으로 힘들어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우연히 만나보니까 있잖아. 심장이 쿵쾅쿵쾅 두근거리는 게 새삼 느껴져서 심장내과를 갔었다는 분들도 있더라. 보통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오나 본데 나도 혹시나 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정말 아파서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심장내과는커녕 심장, 네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미안해. 서운했을 것 같아. 그저 일 년에 한 번씩 회사에서 시켜주는 건강검진 때마다 너에 대해 별 말 없으니 괜찮은 줄로만 알았어.
아니, 난 오히려 네게 화가 난 날도 많았어. 별안간 달리기 경주를 하는 너 때문에 몸과 마음 모두의 평온이 깨지는 순간을 견디기 힘들었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건데 뭐가 불안해서 그래. 심장, 너 왜 이래’ 같은 생각만 들었어.
심장아. 나는 운동을 싫어하지만 꾸역꾸역 운동을 해왔잖아. 전문 헬스 트레이너에게 일대일로 운동도 배워보고 복싱도 했고, 필라테스, 수영, 자전거 타기, 걷기까지. 다양한 운동을 거쳐왔지. 몸에 안 좋다는 음식도 되도록 피하고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언제나 추구해 왔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믿어서 그랬던 건데, 그동안 내가 노력한 만큼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뛰곤 하는 너를 내가 오늘도 느끼고 있으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살았던 걸까. 모든 순간에 열심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나야말로 쓸데없이 육상 선수 흉내 내며 뛰어왔던 건 아닐까. 나, 육상 선수 아닌데. 100 미터 달리기 기록까지 말할 것도 없이 진짜 잘 뛰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심장, 너마저도 엉겁결에 뛸 수밖에 없었을까.
이제 잠깐은 멈춰도 돼. 당연히 아주 멈추라는 소리가 아니야, 심장! 천천히 네가 두근대는 순간을, 네가 춤을 추다 바닥에 잠시 머물러야 하는 찰나를 음미하길 바라. 내가 도와줄게. 너는 나 때문에 쉬지 못했으니까 나의 몸과 마음을 총동원해(물론 이마저도 조금씩 쉬어가면서. 알지?) 너의 쉼터를 만들어줄게.
그리고 너에 대해 더 알아갈게. 심장내과든 어디든 널 데리고 가서, 가능한 방법을 다 써서 네가 진정 왜 뛰어왔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알아낼 거야.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값으로. 네가 한 발자국씩 지그시 밟아갈 수 있는 방법, 최대한 너와 내 취향을 동시에 저격하는 그 방법을 찾을 거야.
심장, 너는 나를 존재하게 하는 행복한 삶의 현장 그 자체야. 그러니까 너는 곧 나야. 그래서 내겐 네가 정말 소중해. 우리 같이 즐겁게, 천천히, 춤추면서 걸어가자. 심장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사샤입니다.
지난 에세이 <발에게>를 올리고 나서 그전에 썼던 <심장에게>를 어서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저 자신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본 순간이었어요. 이 글을 쓰면서, 또 생각날 때마다 이 글을 반복해 읽으면서 진심으로 위로받았습니다. 다른 누가 아닌 제가, 바로 저 자신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줬습니다.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위로만큼 강력한 위로는 없더라고요.
이 글은 재작년 8월, 휴직 중에 썼고 그 뒤 퇴고한 글입니다. 2년 가까이 심장에게 조금은 무심하지 않았나 싶네요. (미안하다 심장아) 다만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헬스장 트레드밀 위에서 러닝을 조금 해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강 둔치에서 5km 러닝을 성공했습니다! 길러진 심폐지구력만큼이나 심장 내면에 존재하는 마음의 근육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아주 조금씩, 느끼고 있답니다.
최근 새로운 경험을 몇 가지 하게 됐는데요. 그 경험들을 계기로 든 생각이, 제가 여성인 데도 자궁에게 진심으로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더라고요. 자궁에게 편지 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궁 님 조금만 기다리시와요. 이번 주는 업무가 참 바빠서요. 에세이가 아니라 기사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잖아요. 똑똑똑. 자궁 님 계시는 방문 앞을 조만간 두드리겠사옵니다.
오늘 비가 쏟아졌다 그쳤다를 계속 반복하네요. 다들 컨디션 관리 잘하시고요. 18일 일요일에 <나는 기자가 참 안 맞다> 시리즈로 돌아오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