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울지 않았다

퇴사한다고 꼭 울어야 하는 건 아니지 그치

by 사샤

그래, 뭔가 퇴사한다고 하면 우는 게 보통의 모습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퇴사할 수밖에 없는 여러 (대개는 욕 나오는) 이유와 그동안의 스트레스, 그래도 즐거웠던 추억 등을 떠올리며 퇴사자 스스로 울 수도 있겠다. 그런 퇴사자를 보며 동료들이 따라 우는 상황도 있겠지.


그러나 오늘의 ‘퇴사 파티’는 그렇지 않았다. 퇴사자와 퇴사자를 떠나보내는 동료들 모두 울지 않았다. 퇴사자가 알고 보니 그의 최애 아이돌과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고, 이 사실이 팬들에게 발각됐고, 그로 인해 해외로 도피해서 신부 수업을 받게 됐다는 컨셉으로 치러진 오늘의 퇴사 파티는 하하 호호 웃음꽃이 만발했을 뿐이었다. (물론 이 컨셉은 당연하게도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다 ㅎㅎ 다만 다양한 직무의 동료들이 놀라운 재능들을 발휘해 각종 영상과 소품 등을 준비했으므로 ‘혹시 진짠가?’ 싶기도 했다는)


가지 마요 아니 가세요 아니 가지 마요 나만 두고 (출처: 네이트)


오늘 동기는 마지막 출근을 했다. 이직할 곳이 정해졌다고 했다. 회사가 내부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린 지 오래됐으므로, 그가 맡은 직무에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반복됐으니까, 또 그가 원하는 환경이 갖춰진 회사로 이직하게 됐다고 하니, 동기로서 매우 매우 축하할 일이다. 문제는 동기 이전에 이미 세 명의 동료가 잇따라 퇴사했다는 사실. 그야말로 줄퇴사다. 오늘 아침에는 또 다른 동료가 윗사람으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겪어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같은 직군 선배로 내가 좋아하는 동료인데, 그 사연을 들으니 욕이 너무 나온다) 언제든 퇴사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우선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는 이내 여지없이 흔들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는 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힘들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사내 부조리와 그로 인해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깊어지는 슬픔, 동시에 생겨나는 외로움 속에서도 내 길을 가야 한다.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이 상황들을 흘려보내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예상대로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여차하면 사표를 던지려는 이들이 보인다. 기회만 있으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려는 기운들이 느껴진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다수 동료들에게 이 회사는 더는 자부심과 애정을 느끼기 어려운 일터로 변해가고 있다. 그저 기자가 안 맞는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선 회사만 바꿔도 많은 것들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회사라는 곳을 벗어나 나 스스로 1인 저널리스트로 독립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지금보다 업이 주는 즐거움을 (물론 힘듦까지도) 듬뿍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 연재, 책 출간이라는 새로운 목표(출간 작가되기!), 글쓰기라는 두 번째 꿈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로지 이 회사에 소속된 기자 일밖에 없다고 믿었다면 얼마나 좌절스럽고 혼란스러웠을까.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웠을까. 변화의 에너지가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그 에너지에 나를 맡기고 있는 현재에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업무가 거의 없는 날이다. 일이야 찾으면 뭐든 있겠지만 노력 대비 성과가 너무 많이 떨어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뭐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집중력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 글일지언정 이 브런치 글을 어떻게든 써낸 나 자신을 칭찬한다.


지금 시각, 이 글을 써서 발행까지 하는 이유는 ‘그 어떤 가벼운 주제일지라도 어느 정도 길이로, 완성된 형태의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내가 정해놓은 완벽함의 기준을 깨기 위해서다. 그래, 아무튼 이렇게 오늘도 강박 하나를 깼고 그 다음은......


역시 퇴근이다. 퇴근해서 남편과 영화를 볼 거다. 동생이 스태프로 참여한 소중한 영화를 볼 거다. 그리고 잠시금 회사는 잊어야지. 주말 동안 내 정체성은 기자가 아닌 작가다. (고로 일요일에 만나요 여러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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