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뱃살

뱃살 강박 잠금해제, 역사적인 그 최초의 순간

by 사샤

5박 6일을 독일 베를린에서 보내고 지난 6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왔다. 신혼여행 이후 1년여 만의 여행이었다.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거기서 또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 ‘첼암제’로 향했다. 유튜브 영상 2배속 버전이었던 창밖의 알프스는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선명한 색감의 초오록 산과 파아란 하늘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초록색과 파란색이었다. 눈을 비벼 다시 바라봤다. 사방으로 펼쳐진 알프스 산세가 보였다. 칼끝으로 산 끝과 양옆을 거칠게 잘라낸 모양이었다.


뾰족한 산 꼭대기와 꼭대기, 그 사이는 하얗디 하아얀 흰색이었다. 분명 보고만 있는데도 질감이 느껴지는 만년설이었다. 마치 겨울 왕국, 그 아래로 산에 뿌리내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눈 속으로 훅, 들어왔다. 수천 가지 초록색이었다. 아, 가능한 일이었구나. 볼 수 있는 거였구나. 이런 색을, 이런 세상을. 찰나의 순간 몽골인 시력이 됐다. 나무들이 모여 이룬 초록색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알프스 세상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고 알프스 세상이 내 안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물아일체(物我一體)!


IMG_6005.JPG 눈으로 봤던 게 10 퍼센트도 채 담기지 못했다 카메라의 한계를 절감 (출처 : 내 필카)


알프스 산과 가까운 첼암제에는 이 풍경을 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노천 수영장이 있다고 했다. 황홀경 속에서 웃옷을 벗었다. 래시가드 상의를 벗으니 브라 톱 수영복만 드러났다. 32살 인생 최초, 최대치의 노출을 범하고 있었다. 만년설 저리 가라, 조용히 소리치는 하아얀 속살이 나타났다. 고기 굽듯 속살을 구우려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브라 톱 아랫선부터 반바지 윗선까지, 기억도 안 나는 유년의 어느 날을 지나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내 뱃살. 주위로 피부색이 다른 뱃살들이 보였다. 이게 별 일이냐고, 왜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냐고 서로 다른 뱃살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앉으나 서나 불룩, 두 겹으로 튀어나와 있는 생김새가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말 그대로 삼겹살 같아서 그랬다고 속으로 대답했다.


아름다운 것들의 공통점은 자연스러움이었다. 한 치의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산과 나무와 눈, 하늘. 그리고 함께 내 뱃살마저 자연스러워졌다. ‘아름답다’가 실은 ‘나답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이야기대로 아름다운 알프스 세상에서 내 뱃살은 나다워졌다.


알프스도 내 뱃살도 자연 그 자체로 존재하며 가슴 한쪽이 뻥, 하고 뚫렸다. 이게 바로 해방감이라는 건가. 체온보다 따뜻한 수온이 느껴졌다. 물살을 가를 때마다 엄마 품에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를 맛본 뱃살을 물의 어머니가 어루만지고 있었다. 머리까지 푹, 물속에 담그며 와락, 엄마 품으로 들어갔다. 이제 해방이야, 읊조리며 물 위로 튀어 오를 때 다시 한번 세상과 물아일체 됐다.


IMG_5841.JPG 첼암제 노천 수영장에서 바라본 알프스. 이 사진을 찍는 순간 내 뱃살은 해방돼 있었다 (출처 : 나 아니면 남편 휴대폰)


다만 물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브라 톱이 지켜준 피부는 있었다. 나머지 상체는 벌겋게, 시간이 더 지나니 거의 다 구워진 삼겹살마냥 거멓게 익어 있었다. 이것이 해방감, 아름다움을 쟁취한 대가인 걸까. 그 대가라면 버얼겋고 거머언 팔뚝쯤이야. 올여름 동안 기쁘게 품고 갈 거다.


2시간이 2분처럼 훌쩍 지나 있었다. 첼암제에서 잘츠부르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뱃살이 만끽한 자유를 첼암제에 놓고 가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웠던, 나다웠던 순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첼암제를 떠난 뒤 지금까지 내 뱃살은 안타깝게도 다시 봉인돼 있다.




즐거웠던 5월 연휴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만 싶은 사샤입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버렸습니다. 월요일 같은 수요일, 다들 무사히 보내고 계신가요.


피곤한 평일 하루 보내셨을 여러분을 위해 뱃살 글 하나 공개합니다. 지난해 늦봄~초여름에 남편과 다녀온 독일, 오스트리아 여행의 한 순간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생각해 보니 다시 여름이 오고 있군요. 봉인돼 있는 뱃살에게 다시 한 번 해방감을 선사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의 뱃살은 해방감을 충분히 맛보고 있나요? 혹 (저처럼) 봉인돼 있나요? 이번 여름, 어떤 결정을 내리실 건가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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